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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장영준 기자] 1년간 '1박 2일'을 이끈 유호진 PD는 이미 스타다. 시청률 10% 중반을 유지하고 있는 주말 예능 프로그램에서 얼굴을 자주 노출시킨 탓이다. 사실상 '1박 2일' 제 7의 멤버나 다름 없다. 멤버들에게 일정과 목적지, 게임 방식 등을 설명하는 진행자의 역할을 맡은 이유로 방송 출연은 어쩔 수 없었다. 스스로도 어떻게든 자신의 얼굴을 편집하려 무던히 노력했지만, 이제는 그냥 마이크를 차고 카메라를 붙였다. 대사가 많기 때문이었다. 물론, 얼굴이 노출된 데 대한 부담이 적지 않았다.
"원래 첫 번째, 두 번째 방송 할 때는 마이크를 안 찼었어요. PD가 그렇게 말을 많이 하다는 것 자체가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시즌 초반에 큰 선택을 해야 했어요. 진행과 룰을 누구의 입을 빌려 말을 할 것인가의 문제요. 원래는 그걸 강호동 씨가 했었어요. 시즌2 때는 이수근 씨가 했었고요. 지금은 과연 누구에게 줄 것인가를 놓고 선택의 기로에 놓여 있었죠. 그런데 누군가에게 그런 역할을 맡겨버리면 자연인으로서의 몰입도가 떨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스로 중립적인 입장이 되는 거죠. 그래서 그냥 내가 말해버리고 멤버들에게는 상황만 겪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자,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는 말이 리얼 버라이어티에서는 어색해 보일 수 있으니까요."
'1박 2일'에서 누군가 MC를 맡는 다는 게 이처럼 어색하게 느껴진다는 건, 그만큼 이 프로그램이 오래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첫 방송을 시작한 것이 2007년이었으니 벌써 7년을 훌쩍 넘겼다. '1박 2일' 첫 방송 당시는 예능 프로그램이라면 으레 메인 MC가 있기 마련이었다. MBC '무한도전'에서는 유재석이 그 역할을 맡았다. 그런 시기에 만들어진 프로그램이다보니 '1박 2일'에서도 그런 형식으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비슷한 포맷의 프로그램들이 수없이 만들어졌고, 점차 외부에서 상황을 주입하는 형태로 변화했다. 멤버들은 듣기만 하면 됐다. 그러는 동안 '1박 2일'은 나름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제작진의 고민도 깊어졌다. 결국 유 PD는 의논 끝에 멤버들에게 상황만 주기로 결심했다.
"제가 갖고 있던 초반 '1박 2일'의 궁극적인 목표 중 하나가 바로 제가 말을 안 하는 거였어요. 그러면 프로그램이 자리를 잡은 것이라 생각할 수 있거든요. 저희 멤버들이 약간 예능의 초보자 같은 콘셉트로 시작했지만, 점점 상황도 능숙하게 소화하고 한편으로는 인터뷰나 진행도 능숙해져서 점차 제가 해야 할 많은 말들을 멤버들이 자연스럽게 가져갈 수 있다면 그게 프로그램이 자리를 잡아가는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궁극적으로는 제 분량이 없어지면 없어질수록 더 좋다고 생각해요. 분량이 없어질수록 프로그램이 자리를 잡아간다는 증거니까요. 저도 제 역할을 줄이려고 노력을 많이 했는데, 항상 갖다 오면 찍혀 있더라고요."
노출 빈도가 잦아지면서 조금씩 그를 알아보는 사람들도 생기기 시작했다. 유 PD 스스로도 자신이 이런 삶을 살게 될 줄 몰랐다고 했다. 주변에서도 '말도 안된다'는 반응 일색이었다.
"제가 (나)영석이 형을 불쌍하다고 생각했는데, 망했어요. 너무 부담스러워요. 제 친구들도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사실 제가 그 친구들이 회사에서 어떻게 일하는지, 평판은 어떤지 알 길이 없잖아요? 그런데 저는 못하면 안되는 거예요. 제 사생활이 파괴된거죠. 소개팅을 나간다고 했을 때, 솔직히 상대자가 회사에서 일을 잘 하는지 못하는지 아는 경우는 거의 없잖아요? 그런데 저는 일을 못해서 시청률이 떨어지면 소개팅 상대방이 '요즘 좀 안 좋은 것 같은데?'라고 할 거 아니예요. 정말 안 좋은 것 같아요. 그렇다고 제가 무슨 연예인도 아니고. 긍정적인 생각을 가졌다면 이 기회를 이용할 수도 있겠죠. 제가 새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더 주목받을 수도 있을테고. 그런데 유명해진 사람이 못하면 또 못 한다고 손가락질 할테죠. 유명해진다는 건 굉장히 마이너스 요소인 것 같아요."
지난 10일 서울 여의도 KBS 신관 웨딩홀에서 열린 '1박 2일' 1주년 기자간담회 당시 유 PD는 김종민을 '천재'라고 지칭해 눈길을 끌었다. 유 PD는 당시의 발언에 대해 "천재다. 일년간 같이 방송하면서 확신했다"고 말했다. 이유를 궁금해하자 그는 "퀴즈 같은 걸 일부러 틀리는 건 아니다. 진짜 몰라서 틀리는 거다. 하지만 예능 감각이 정말 뛰어나다. 스토리텔링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지루하고 어색할 때 '이건 웃길 것 같은데?'라는 감각으로 움직이는데 그게 정말 정확하다. 만약 퀴즈를 알고 틀리는 거라면 그거야 말로 유주얼 서스펙트가 아닌가"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프로그램의 중심을 잡고 있는 배우 차태현에 대해서도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차태현도 정말 감각이 뛰어나요. 어디서 웃길지를 알아요. 그런데 이 사람은 자기 힘으로 웃기는 사람은 아니예요. 먼저 나서지 않죠. 만약 그날 방송 분량이 없다고 판단되면 스스로 몸을 던지기도 하는데, 먼저 농담을 하고 그런 스타일은 아니예요. 실질적인 행동이나 말은 데프콘이나 김준호 씨가 해요. 축구로 치자면 그 두 사람이 골을 넣는 거죠. 그런데 그들이 잘해서 골을 넣은 게 아니듯 누가 차주느냐가 중요한데, 가만히 보면 차태현이 다 차주는 거예요. 우리가 어떤 기준을 설명해주면, 팀을 나눠야 하는데 그 중 어떻게 세명이 불쌍해지고 어떻게 다른 세명이 구제가 되는지 제일 먼저 캐치하는 게 바로 차태현이예요. 누가 그날 컨디션이 좋은지 바로 알아채죠. 가만히 보면 미드필더 같아요."
요즘 리얼 버라이어티의 성패 여부는 출연진의 합에 의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멤버들의 친한 정도가 재미를 배가시키기도, 반감시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유 PD는 '1박 2일'의 미래를 밝게 내다보고 있었다. 이제 조금씩 멤버들 사이에 합이 생기기 시작했고, 스태프들도 서로의 장단점을 알아가면서 각자의 영역이 재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단 살인적인 업무량에 스스로 지쳐 나가 떨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경계했다. 그런 위험만 극복한다면 '1박 2일'은 오래도록 사랑받을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다.
시즌1 당시 신입PD라는 캐릭터를 부여받고 멤버들에게 호된 몰래카메라 신고식을 치렀던 유 PD는 당시 음악 프로그램 연출에 대한 확실한 목표를 드러낸 바 있다. 지금도 이 생각은 변함이 없다.
"제가 음악에 대해서 박식한 수준은 아니예요. 그냥 어릴 때 음악을 좋아하는 학생일 뿐이었어요. 학창 시절 감수성이 예민하던 시기에 우리나라 음악이 황금기를 맞았어요. 그래서 지금도 수많은 드라마와 오디션 프로그램 등에서 리메이크 되고 불려지는 거예요. 그 노래들이 다 제가 사춘기 때 섭렵했던 곡들이죠. H.O.T의 시작을 봤고, 정통 발라드 가수인 신승훈 씨도 아직 활동 중이시잖아요? 정말 굉장한 시대였어요. '응답하라 1997' 속 그 시대가 정말 좋았어요. 그래서 어떤 고마움같은 걸 느껴요. 만약 그런 걸 다룰 수 있는 일이 주어진다면 정말 재밌게 하고 싶어요."
[KBS 2TV '해피선데이-1박2일' 유호진 PD. 사진 = KBS 제공]
장영준 digout@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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