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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강산 기자] 결론부터 말하자면 에스밀 로저스(한화 이글스)의 계약서에는 옵션조항 자체가 없었다.
즉 무리하게 등판할 이유가 없고, 옵션을 충족하지 못하도록 페널티를 줄 일도 없다. 냉정히 말해 로저스가 엔트리에서 빠지면 팀은 손해지만 본인이 손해를 볼 건 없다.
사건은 지난달 27일 창원 마산구장에서 열린 NC 다이노스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날 경기에 선발 등판한 로저스는 6회에만 3실점하고 교체됐다. 석연찮은 심판 판정에 흔들렸다. 체크스윙과 스트라이크-볼 판정을 문제 삼았다. 화를 참지 못한 로저스는 더그아웃에서 글러브를 내던지며 불만을 표출했다. 그런데 그는 바로 다음 날(28일) 1군 엔트리에서 빠졌다. 한화는 순위 다툼이 한창인 상황에서 10일간 로저스를 쓸 수 없었다.
당시 구단 측은 로저스의 엔트리 말소에 대해 "체력 안배 차원"이라고만 했다. 그러나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아니, 거의 없었다. '많은 공을 던진 탓(5경기 평균 119.8구)에 부상이 발생했다'는 것, 그리고 '팀 분위기를 해쳐 징계 차원에서 김성근 감독이 2군행을 통보했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게다가 김 감독이 이후 3경기에서 취재진과의 사전 인터뷰를 피했다. 궁금증만 커졌다.
미스테리 투성이었다. 당시 한화는 두산 베어스, KIA 타이거즈, 넥센 히어로즈와 각각 2연전씩 6연전을 앞두고 있었다. 5강 경쟁 상대 KIA전에서 로저스의 등판은 기정사실이었다. 당시 KIA 관계자들도 로저스의 엔트리 말소 소식을 듣고 놀랍다는 반응이었다. 부상이 없다면 5경기에서 3승 1패 평균자책점 1.79로 맹활약한 에이스를 내려보낼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
'이닝, 등판 횟수에 따른 옵션이 걸려 있어 김 감독이 일종의 페널티를 준 것'이라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에 이르렀다. 그런데 취재 결과 한화와 로저스의 계약 내용에 '옵션'은 없었다. 당시 발표한 보장금액(70만 달러)이 전부다. 계약에 앞서 미국 현지 언론은 로저스가 한화에서 100만 달러를 받고, 추가 수당이 포함돼 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문제는 현지 보도가 공식 발표가 아니라는 것. 해당 언론에서도 한화 구단 측에 사과의 뜻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로저스의 이닝, 등판 횟수, 팀 성적 등에 따른 옵션은 전혀 없다.
로저스가 최근 등판에서 교체에 불만을 드러낸 것도 옵션과는 무관하다. 한화가 5강에 진출해도 로저스에게 주어지는 추가 수당은 없다. 로저스는 받은 만큼 일하면 그만이다. 단순히 본인의 의지가 강한 것뿐이다. 로저스는 교체 거부 움직임을 보인 것에 대해 "계투진에게 휴식을 주고 싶어 더 던지려고 하는 것이다. 나는 4일씩 쉬고 나가기 때문에 그때마다 승리에 도움을 주고 싶다"고 설명했다.
또 하나. 언론 보도를 통해 김 감독이 27일 로저스 교체 당시 통역을 통해 2군행을 통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것 또한 사실과 달랐다. 당시 통역은 24일 통화에서 "더그아웃 분위기가 험악하지도 않았다. 다음날(28일) 로저스가 감독님과 면담을 했는데, 서로 얼굴을 붉힐 일도 없었다. 로저스도 엔트리 말소에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이후 로저스는 3일 퓨처스리그 화성 히어로즈전 등판 전까지 1군 선수단과 동행했다.
한화 구단 고위 관계자는 "감독님께서 통역을 통해 '페널티를 준다고 전하라'거나 '당장 엔트리에서 빼라'는 말씀을 하신 적이 없다. 옵션이 없는데 페널티가 어디 있나. 로저스가 미국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한 것도 사실이 아니다"고 힘줘 말했다. 한 야구인은 "감독이 경기 도중에 '페널티를 주겠다. 엔트리에서 빼겠다'고 소리쳤다면 자존심 강한 로저스가 반발했을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화는 올 시즌 내내 화젯거리를 몰고 다녔다. 김 감독이 부임하면서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 심지어 지난해 마무리캠프부터 일거수일투족이 화제였다. 로저스도 마찬가지였다. 첫 4경기 중 3경기에서 완투승(완봉 2회)을 따내며 '괴물'로 떠올랐다. 한국행 직전까지 메이저리그(뉴욕 양키스)에서 활약한 경력도 화젯거리가 되기 충분했다. 그의 1군 엔트리 말소가 엄청난 파장을 불러온 건 당연했다. 억측이 난무할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로저스는 복귀 후 3경기에서 1승 1패 평균자책점 6.52를 기록했다. 엔트리 말소 이전(1.79)과 견줘 불안한 게 사실. 시즌 평균자책점도 3.32로 치솟았다. 지난 18일 NC전에서는 3이닝 6실점으로 최악의 투구를 했다. 이전 7경기에서 평균 8.1이닝을 던진 괴물의 면모가 사라졌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문제는 패스트볼 공 끝이 무뎌진 것, 커브와 슬라이더의 휘는 각도가 밋밋해진 것. 경기당 평균 115.88구(총 927구)를 던져 지쳤다는 의견도 설득력이 있다.
지금 한화는 힘겨운 5위 싸움을 하고 있다. 5강 경쟁 상대 SK, 롯데, KIA와의 맞대결은 더 이상 없다. 자력 5강행은 불가능하다. 5위 SK 와이번스(64승 2무 70패)와의 승차는 2경기. 8경기 남은 상황에서 쉽진 않지만 포기할 이유는 전혀 없다. 로저스는 25일 대전 넥센전에 선발 등판한다. 지난 18일 이후 일주일 만에 마운드에 오른다. 로저스를 앞세워 당장 1승만 해도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 로저스는 한화의 5강행을 간절히 바라며 혼신을 다할 뿐이다. 있지도 않은 옵션을 채우려는 몸부림이 아니다.
[한화 이글스 에스밀 로저스. 사진 = 마이데일리 DB]
강산 기자 posterboy@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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