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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대의 음악노트]
사람들은 보통 자신의 포장된 일상에 안도하고 드러난 일상을 불편해한다. 평단이 은근히 추켜세우는, 당면한 일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예술가들보다 그것을 에둘러 포장하는 예술가들에게 대중은 더 안정감을 갖는다. <기생충>으로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처럼 두 가지 모두에 탁월해 평단과 대중을 동시에 사로잡는 경우도 있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다. 싱어송라이터 정태춘의 경우는 전자다. 정태춘은 우리의 일상과 현실을 절대 포장하는 법이 없다. 그는 날것을 즐긴다. 서민의 아픔을, 가난한 자들의 외로움을, 약자들의 억눌림과 억울함을 그는 마치 르포 기사처럼 현실감 있게 조목조목 노래에 담아낸다.
‘사람들 2019’는 그런 정태춘과 그의 짝 박은옥의 데뷔 40주년을 기념하는 편집앨범이다. '기념앨범' 이전에 이것을 '편집앨범'이라 부르는 이유는 수록곡 모두가 새 곡이 아닌, 신곡은 3개에 옛곡도 5곡이 어울린 작품이기 때문이다. 앨범 발매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것은 물론 정태춘의 딸 정새난슬이 "늙은 목소리로 젊은 시절 노래를 불러보라"며 아빠를 부추긴 게 컸다. 딸의 부추김에 정태춘은 세기말에 갈아두었던, 모던포크 연주 위로 랩에 가까운 스토리텔링을 얹은 '외연도에서'같은 오래된 칼날도 기꺼이 빼어들어 더 찌들고 덜 순수한 세상 속 한줌의 부조리를 은밀히 썰어냈다.
정태춘. 가요를 찾아 들어온 사람들은 '촛불'로, 대중음악 역사를 조금이라도 들쳐본 이들은 '음반사전검열을 최초로 깨부순 투사'로 그를 기억할 것이다. 또한 우리네 정치와 사회, 법과 제도를 면밀히 살펴온 자들은 반자본, 친민중으로 점철된 가사와 의식으로 무장한 '서슬퍼런 좌파 가수'쯤으로 그의 이름을 되뇌일 것이다.
노찾사와 송창식, 한대수와 안치환을 모두 머금어 송곳처럼 청자 귓속을 후벼파는 그의 아픈 독백은 3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변함이 없다. 첫 곡 '사람들 2019''를 통해 그가 대뜸 "노인을 거지로 버려두는 나라"라며 일갈하는 모습이 그 증거다. 만담 같지만 한편으론 사회 보도 같기도 한 노랫말을 가만히 따라가노라면 숫자 나이는 들었어도 의식 나이는 여전히 ‘아... 대한민국’을 부르던 그 시절 그 정태춘이다. 세월의 흔적은 "핸드폰은 미세 먼지 경보만 요란하고"라는 가사 정도에서나 감지될 뿐, 나머지는 정새난슬이 "나이 들면서 좋아하게 된 아빠 목소리" 그 자체다
하지만, 그렇다 해서 그를 신격화 하는 건 경계하고 싶다. 시대의 아픔을 노래하며 시대를 대변한 건 정태춘의 자의만은 아니었을 터. 그는 그저 자신이 부르고 싶었고 부를 수 있었으며, 불러야만 했던 감정의 응어리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불러냈을 따름이다. 슬픔, 고독, 안타까움, 서러움을 멜로디 속에 꾹꾹 눌러담아 일궈낸 그 해부학적 묘사들! 정태춘의 가치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정태춘의 말, 정태춘의 노래는 누군가의 일기이거나 누군가의 낙서, 누군가의 눈물이었다. 그 일기와 낙서와 눈물이 시가 되고 고발이 되고 절규가 되어 세상을 좀 더 온전하게 만들었다. 침묵과 폭로가 똑같이 미덕인 세상. 정태춘의 노래는 그 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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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약력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마이데일리 고정필진
웹진 음악취향Y 필진
[사진제공=삶의문화]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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