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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대의 음악노트]
김일성이 죽던 해. 1994년 7월 8일. 나는 고등학교 1학년이었다. 유난히 더웠던 여름, 1994년은 클린스만과 홍명보를 스타로 만든 A매치가 열린 월드컵의 해이기도 했다. 그해 대중음악계에선 조동익이 [동경]을, 서태지와 아이들이 3집을 냈고 해외에선 오아시스와 나스가 똑같이 데뷔를 했다. 나인 인치 네일스가 [The Downward Spiral]로 세계 정상에 선 것도 1994년의 일이다.
조동익의 ‘엄마와 성당에’를 좋아하는 천용성의 첫 정규앨범은 그러나 제목과 달리 그 일(김일성 사망)이 벌어진 것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심지어 그 시기와도 별개 영역에 있다. 대신 그는 소설가의 글과 인권운동가의 투쟁백서, 자신의 이야기, 자신의 이야기 같은 남의 이야기 따위로 지난 10년을 기록했을 뿐이다. 10년은 작가로선 변화의 시간이었고 동시에 변치 않은 내면의 것들을 지켜낸 시간이었다. 현재와 미래보단 과거의 흔적들 즉, 기억과 추억 사이에서 그는 “순도 1000% 인디 포크”를 솜씨 좋게 구사했다.
천용성의 음악은 정처 없다. 그 안에선 어쿠스틱 기타와 일렉트릭 기타, 신스팝과 어덜트 컨템포러리가 종횡무진 한다. 프로듀서를 맡은 단편선은 그것을 '백화점'이라 했고 천용성 본인은 '잡화점'이라고 했다. 진실이 무엇이든 80년대와 90년대 정서에 빚진 그 소박한 장르적 뒤척임은 그의 말을 빌면 “절반은 명쾌한 포크, 나머지 절반은 명백히 포크가 아닌” 어떤 것이다. 가령 도마가 함께 한 ‘전역을 앞두고’에서 천용성은 순백의 보사노바 리듬 안에 로즈(Rhodes) 건반의 말간 온기, 혼돈의 일렉트로닉 텍스처를 손쉽게 버무려낸다. 이는 비단종이 초대된 ‘나무’의 차분한 관조보단 좋은 팝의 조건을 제시하는 ‘순한글’과 더 통하는 부분이다.
천용성. 그의 목소리에선 감정의 동요 없이 감정의 동요를 일으키는 조동익(어떤날), 김창기(동물원)가 함께 들린다. ‘울면서 빌었지’ 같은 곡에선 권나무도 스친다. 때론 루시드 폴과 재주소년이 살을 부대끼는 듯도 하고, 앨범의 백미 ‘대설주의보’엔 브로콜리 너마저가 미처 챙기지 못한 푸릇한 낭만도 함박 녹아있다.
‘소녀여’를 애청한다는 천용성은 실제 자신의 음악에도 어떤날 냄새를 묻혀두었는데, 후반부에 부서지는 드럼 솔로를 감춰둔 ‘사기꾼’이 그렇다. 또한 김창기의 동물원은 ‘동물원’이라는 곡 자체로 넌지시 암시되었으니, 이 곡에선 90년대 윤상이 노골적으로 피어오른다. 이처럼 어떤날(조동익)과 동물원(김창기), 90년대라는 거대한 상징은 첫 곡 ‘상처’라는 곡에서 거리낌 없이 얽힌 뒤 사실상 앨범 전체를 지배하는 기운이 돼 트랙들을 점거해나간다.
천용성은 겸손하다. 그는 오소영과 황푸하와 조동익의 재능 앞에서 필요 이상으로 움츠러든다. 노래도 연주도 작곡도 어느 것에도 소질이 없는 것처럼 말하지만, 그는 기어이 그 모든 것들에서 자신만의 세계를 건져낸다. 낮은 작가의 자존감에서 높은 음악적 자존심을 찾아내는 그 모습은 마치 발랄한 래그타임 피아노가 후덕한 프렛리스 베이스를 만나 비로소 만개하는 타이틀 트랙 ‘김일성이 죽던 해’의 느낌과 비슷하다. 그 느낌은 또한 “나라는 매체에 묻어 있는 얼룩 같은 자의식”이라는 멋있는 천용성 본인(의 앨범) 소개에도 충실히 닿아 있다.
*이 글은 본사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미디어팜에도 실렸습니다.
필자약력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마이데일리 고정필진
웹진 음악취향Y 필진
[사진제공=천용성]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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