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배우들이 작품에 오롯이 마음을 쏟았을 때 그 감정은 관객들에게 온전히 전달된다. 넘치지도, 덜하지도 않게 그 인물 자체가 되면서 몰입도는 더욱 깊어진다. 배우들의 마음이 관객들에게 닿는 순간, 따뜻한 눈물이 되고 위안이 된다.
뮤지컬배우 윤공주는 뮤지컬 '아리랑'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오롯이 쏟고 있다. 그 마음은 관객들에게 온전히 전달되고, 뮤지컬 '아리랑'은 호평을 얻으며 국내 창작뮤지컬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아리랑'은 천만 독자에게 사랑 받은 작가 조정래의 대하소설을 뮤지컬화 한 작품으로 일제강점기, 파란의 시대를 살아냈던 민초들의 삶과 사랑, 그리고 투쟁의 역사를 담아낸 작품. 윤공주는 극중 고난과 유린의 세월을 몸소 감내하는 수국 역을 맡아 한국 여인의 강인함을 보여주고 있다.
'아리랑'에서 윤공주는 감정은 물론 체력적으로도 모든 것을 쏟아 붓는다. 고난의 세월을 살며 모든 것을 빼앗기고, 그럼에도 강인함을 잃지 않기에 수국의 모습은 더 마음에 와닿는다. 그러나 윤공주는 "육체적으로 힘들면 힘들었지, 사실 몸만 따라주면 공연은 매일 하고싶다"며 작품에 대한 애정을 보였다.
윤공주는 공연 전 제작발표회 때부터 '아리랑'에 대해 이야기하며 눈물을 쏟았다. 취재진 앞에서 터져버린 눈물에 당황했지만 그만큼 작품에 몰입하고 있었다. 실제로 윤공주는 인터뷰 중에도 자주 눈시울을 붉혔다. 진심이 담긴 눈물이었다.
"제작발표회 때 뿐만 아니라 툭하면 울었어요. 저도 모르겠는데 '아리랑' 얘기만 하면 계속 울먹거리게 돼요. 저는 뭐 그렇게 대단한 애국자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모르겠어요. 그게 '아리랑'이 가진 힘이었던 것 같아요. 내용도 잘 모를 때 리딩을 하는데 그 때부터 우느라고 대사를 못했을 정도예요. (안)재욱 오빠가 '주책이다'고 말하기도 했어요.(웃음) 근데 감정이입이 되는건지 자꾸 눈물이 나요."
모든 작품이 다 그렇지만 '아리랑'은 유독 처음부터 끌렸다. 애 쓰지 않아도 자신이 곧 수국 같았다. 처음부터 와닿았고, 감정을 표현하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젖어들었다. "수국이 자체가 처음부터 훅 들어왔다"고 밝힌 윤공주는 "사실 수국이와 내가 많이 닮았다. 보고 느끼신 그 수국이가 윤공주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름도 공주, 평탄한 인생을 살아왔을 것 같지만 윤공주도 많은 고난과 역경을 헤쳐왔다. 그 한이 고스란히 수국이로 표현됐고, 기존의 이미지도 깨지고 있다. 함께 하는 동료들 역시 초반엔 '윤공주가 수국이를 제대로 할 수 있을까' 의심했다. 하지만 수국이의 한을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내는 윤공주 모습에 놀라며 칭찬해주고 있다.
"저희 작품에 연극을 많이 하는 배우들이 많아요. 근데 저는 뮤지컬배우이니까 음악적으로만 강할 거라고 생각했나봐요. 사실 그런 선입견이 있었다는 것도 좋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에서 잘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거든요. 전 수국이가 처음부터 와닿았어요. 알 수 없는 끌림이 있었죠. 연습이 힘들지도 않았어요. '아리랑' 자체가 아픈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을 갖고 살자는 메시지를 전하잖아요. 작품에 빠져서 연기하면 당연히 아프고 힘들지만 '아리랑'은 너무나 행복하게 작업했어요."
윤공주는 '아리랑'이 행복한 작품임을 거듭 강조했다. 고선웅 연출을 비롯 다른 배우들에 대한 애정도 상당했다. 진심이 느껴졌다. 작품에 대해 이야기 하다 "또 눈물 날 것 같다. 안돼!"라며 눈물을 참는 그녀의 얼굴이 참 예쁘고 행복해 보였다.
"'아리랑'은 애이불비(哀而不悲, 슬프기는 하지만 겉으로 슬픔을 나타내지 않음)를 갖고 가는데 너무 아프면 '아' 소리도 못 내요. 울음도 안 나죠. 그냥 '아리랑' 속 인물들의 상황은 말도 안 되는 상황인 거예요. 울고 바닥까지 쳐보고 하는 표현 방식을 연출님께 배우면서 더 억누르는 감정의 힘을 기르게 됐어요. 수국이는 그 시대의 수많은 여인들의 상처를 보여주는 것 같아요. 수국이가 바닥까지 치는데 한 장면 한 장면 상처를 쌓아가니까 또 너무 아프죠. 그런데도 그립고.. 공연 할 때는 너무 아프고 힘든데 끝나면 아쉽고 벌써 그리워져요. 이게 뭘까요? 이게 뭔지 저도 모르겠어요."
뭔지 모를 감정이지만 좋은 감정임은 분명하다. 그래서 더 수국이를 잘 표현하고 싶고 '아리랑' 속 아픔과 치유를 더 잘 그려내고 싶다. 실제 우리의 아픈 역사이기 때문에 잘 전달하고 싶은 마음도 크다. 급속도로 발전하며 위만 보고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과거를 돌아보며 '잊지 말자'는 메시지를 전하는 동시에 '감사하며 더 잘 살자'고 말하고 싶다.
"'아의 아리아'를 할 때 '아'라고만 가사가 돼있지만 우린 말을 하고 있어요. 그 '아' 속의 말이 항상 달라지죠. 어쩔 때는 관객들에게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 화도 냈다가 '너무 속상하다'고 했다가 맨날 달라요. '아'로만 가사가 돼있는데 말이 필요 없다는 거예요. 무슨 말이 필요하겠냐는 거죠. 이 상황 자체가. 그냥 '아'라는 부르짖음으로 인해 최고의 가사가 탄생해요. 정말 대단한 거죠."
'아의 아리아'만 봐도 '아리랑'은 관객들에게 기술적인 부분을 넘어 감정을 그대로 전하는 작품이다. 기술과 본능을 모두 섞어 관객들에게 전하는 가운데 그 감정만은 진짜가 돼야 한다.
"제가 100% 방수국이 될 수는 없잖아요. 물론 되고 싶지만 그렇게 느끼지 않을 분들도 있을테니까요. 근데 정말 스킬보다 진짜가 됐을 때 관객이 느끼는 것 같아요. 매번 진짜로 하고싶지만 인간인지라 매번 그 감정이 진짜로 우러나오기는 힘들어요. 근데 진짜로 하려고 하다보면 저를 또 이입시키고 그 감정이 전달 되는 것 같아요. '아리랑'은 배우라는 직업적인 부분에서의 윤공주 말고 그냥 사람 윤공주에게도 많은걸 깨닫게 해준 작품이에요. 큰 힐링이 되죠. 그 의미가 공연하면서 나날이 더 커지고 있어요. 윤공주를 변화시킨 작품이죠."
윤공주는 '아리랑'을 기점으로 많이 달라졌다고 했다. 이는 역할 때문이기도 하지만 고선웅 연출과 동료 배우들 때문이기도 하다. '아리랑'은 인물 한 명 한 명의 얼굴이 모두 기억나는 작품이다. 그만큼 주요 배역 뿐만 아니라 앙상블 역시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윤공주처럼 모두가 자신의 감정을 오롯이 쏟고 있다는 것이 그대로 전해진다.
"진심으로 하면 그게 전달이 되더라고요. 우리의 에너지만 보여주면 되는 거죠.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것은 좋은 선장님을 만났기 때문이에요. 고선웅 연출님은 정말 훌륭한 분이고 천재예요. 근데 또 다른 사람의 말에 더 귀기울이고 수용해주세요. 그만큼 신뢰를 주셨어요. 연출님께 정말 많이 배웠어요. 우리가 다 '고주교'라고 해요. 사람들도 다 좋아요. 연출님이 우리 모두의 장점을 다 끌어내주세요. 저도 한단계 업그레이드된 것 같아요. 모난 사람이 없다고 느껴지는건 작품의 힘이죠. 이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어요?"
윤공주는 자신이 프로이기에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자신은 완벽하지 못해 계속 배우고 업그레이드 되는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한다고 했다. "인간이기 때문에 100% 완벽은 없다. 배우로 평생 가야 하니까 더 좋은 모습으로 계속 업그레이드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후퇴되지 않는 배우가 돼야죠. 물론 지금의 윤공주로서는 최상으로 하고 있는거지만 이게 최고는 아니니까. 그 다음도 있을테니 항상 기대되는 배우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현재는 연기에 대해 많이 생각하는데 제가 가진 소리 자체가 좋은 게 있으니 이 부분도 더 발전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소리 자체가 좋은 것 하나로 이제까지 잘 버티고 살아온 것 같아요. 하지만 이제 연기적으로나 음악적으로나 더 새로운 것들을 배워 나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윤공주는 더 나은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최근에는 새로 노래 레슨을 받으며 새 세상을 만나고 있다. 열정으로 가득차 있으면서도 조절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목 상태가 조금 안 좋았어요. 그래서 소리에 대해 더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하던 차에 (김)우형이가 같이 연습하는데 노래가 달라져 있는 거예요. 바로 옆에서 달라진 예를 보게 되니까 바로 레슨 받으러 찾아갔죠. 선생님이 너무 좋고 재밌으세요. 요즘 또 배움에 맛 들렸답니다.(웃음) 급하지 않아요. 하루 이틀 사이에 갑자기 잘 하겠어요? 근데 되게 잘 하게 될 것 같은 느낌은 들어요.(웃음) 음악적으로 '이 방향이 맞구나' 자신감도 생겼고, 연기적인 면에서도 더 열심히 하겠다는 의지도 생겨요."
윤공주는 '아리랑'을 통해 확실히 힐링된 모습이었다. 본인 역시 이를 알고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 콕 집어 말할 수 없을 만큼 '아리랑'의 많은 부분들이 윤공주를 달라지게 했다. 원래도 좋은 기운을 가진 배우였지만 한층 더 편안해지고 따뜻해졌다. 아픔과 치유를 모두 알기에 더 여유로워졌다.
"'아리랑'에 출연할 수 있게 해주신게 정말 감사해요. 밑으로는 더 깊어지고 위로는 더 성숙해지는 제가 느껴져요. 작품을 하게 된 게 감사하다 보니까 삶 자체를 감사하게 돼요. 계속 좋은 작품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저 자체가 괜찮다는 의미로도 다가와서 자신감이 생겨요. 그래서 '아리랑'에 너무 감사해요. '아리랑'에는 이렇게 희망이 있어요. 많은 분들이 이 힘든 세상에 '아리랑'을 보고 희망을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아프지만 살아가야할 이유가 있다는 것, 지금의 감사함을 알 수 있고 힐링할 수 있는 작품이라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사랑합니다."
뮤지컬 '아리랑'. 공연시간 160분. 오는 9월 5일까지 서울 강남구 LG아트센터. 문의 02-577-1987.
[뮤지컬배우 윤공주. 사진 = 송일섭기자 andlyu@mydaily.co.kr]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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