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뮤지컬배우 김우형(34)은 좋은 의미로 극과극이다. 한없이 자신에게 엄격하다가도 모든 것을 내려놓고 자유를 즐길 줄 안다. 냉정한 판단으로 소신을 지키는 중에도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참 극과극의 매력을 지닌 배우다.
때문에 작품 속 김우형은 어떤 역을 맡든 다양한 매력을 발산한다. 뮤지컬 '레미제라블'만 봐도 그렇다. 2013년 한국 초연에서는 앙졸라 역을 맡아 혁명을 주도하며 카리스마 넘치는 매력을 보여주더니 2015년 재연에서는 자베르 역을 맡아 또 다른 내면 연기로 관객들을 압도하고 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은 기구한 운명의 청년 장발장의 숭고한 인간애와 박애정신, 인간의 원초적이고 아름다운 삶의 이야기를 그린다. 극중 김우형이 연기하는 자베르는 치밀하고 냉정한 원칙주의자로 자신의 소신을 지키다 이내 진실한 정의를 깨닫고 괴로워 하는 인물이다.
대구 공연에 이어 서울 공연 중인 김우형은 "공연에 잘 적응하고 모든 배우들이 무르익어 가는 단계인 것 같다"며 자신있어 하면서도 "너무 익숙해지는 부분도 있다보니 주의할 사항들도 있고 처음 만들어 놓은 작품의 기본을 꼭 지키며 가는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레미제라블'은 무대 연습이 많이 필요한 작품이에요. 대구에서 먼저 공연을 올렸던 게 큰 장점이었죠. 더 완성도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었거든요. 무대도 서울에선 '하나미치(花道)'(좌우측 벽면을 따라 무대장치가 연속되도록 만든 무대) 무대 형태잖아요. 초연에서도, 대구 공연에서도 없었던 돌출 무대가 새로 도입되니 더 다이내믹하고 객석과도 가까워 실제 배우들을 코 앞에서 보는 느낌에 관객들도 좋아하세요."
무대가 변형되다 보니 동선도 커졌다. 자살 장면에서는 장치를 빨리 착장해야 하기 때문에 더 힘들기도 하다. 하나미치 무대 역시 등퇴장 때 극장을 벗어나야 하기 때문에 로비에 있는 관객들과 마주치기도 한다. 김우형은 "로비에 있던 분들도 당황해 한다. 다양한 배우들이 왔다 갔다 하는데 문도 직접 비밀번호 잠금장치를 풀고 들어가야 한다. 비밀번호 오류 나면 못들어 가는 것"이라며 웃었다.
"정말 정말 큰 에너지 소모가 있죠. 사실 저는 몸 많이 쓰고 춤이 많은 뮤지컬보다 사전에 훨씬 더 많이 몸을 풀어요. 몸을 쓰는 뮤지컬들은 하면서 몸이 풀리고 자연스레 부상이 덜한데 오히려 '레미제라블'처럼 안에서 에너지를 많이 발산하고 쏟아내는 역할은 노래하다 담이 와요. 진짜로.(웃음) 그만큼 에너지를 많이 쓰는 거예요. 충분히 몸을 풀어야 돼요."
막대한 에너지 소모를 요하지만 '레미제라블'을 결코 포기할 순 없다. 앙졸라 역에 이어 자베르 역을 맡게된 김우형에게 '레미제라블'은 개인적으로도 큰 뜻을 갖고 있다. 본래 초연되려 했던 2007년에도 오디션을 봤을 정도로 '레미제라블'에 항상 관심을 갖고 있었다.
2007년에는 앙졸라 역, 2013년에는 자베르 역, 이번엔 장발장 역에 뜻이 있었다. 그러나 2007년에는 공연이 무산됐고, 2013년에는 앙졸라 역을 맡게 됐다. 이번엔 2013년에 하고 싶었던 자베르 역을 맡게 됐다. 김우형은 "한템포씩 더 빠른 욕심을 냈고 욕구가 강했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문제는 하나였어요. 나이의 갭이 있었죠. 그건 비단 숫자의 개념을 떠나서 제가 갖고 있는 내면의 깊이 차이였을 거예요. 하나의 실력일 수도 있는 거고 제 그릇이 조금씩 부족했던 것 같아요. 앙졸라 역을 할 때는 앙졸라가 제일 멋있는 역할이었고 젊기도 했으니 딱 맞았던 것 같아요. 마리우스요? 마리우스는 제 기질과 정말 다릅니다.(웃음) 이번엔 세월도 흘렀고 자베르 역을 할 수 있는 때가 돼서 맡게된 것 같아요."
앙졸라와 자베르는 나이 차이부터 너무 많이 나고 반대되는 입장을 갖고 있다. 그러나 김우형은 두 사람이 겉으로 봤을 때 반대된 입장으로 보이는 것일 뿐이지 그저 각자의 길을 가고 있는 것 뿐이라고 생각한다.
김우형은 "내 신념에 상대가 어긋난 것 뿐이고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거다. 앙졸라는 젊고 패기와 리더십이 있어 강렬한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면 자베르는 자기 신념을 갖고 자신의 길을 가는 올곧은 모습을 보여주려 한다"고 설명했다.
"자베르는 정말 정갈하고 깔끔하게 표현해야 해요. 어떻게 보면 언발런스하고 아이러니해 보일 수 있는데 되게 신사일지도 몰라요. 옷에 먼지도 하나 안 묻었을 것 같죠. 올곧은 신념이 바탕이 되는 몸가짐과 어투, 표현을 보여줘야 해요. 조금더 인생을 살아온 노련함과 깊이를 보여줘야 하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이 때때로 나쁘게 보여지는 것은 이 사람이 살아온 인생 때문이에요. 그걸 무대에서 다 보여줄 순 없지만 자베르의 그런 아픔들을 생각해요. 자베르는 큰 상처를 갖고 있어요. 최하층민으로 태어나 오히려 더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하는 마음이 혐오감으로 표현되는 거죠. '왜 당신들은 그렇게밖에 살 수 없어?' 지긋지긋한 거고 '난 그렇게 안 살아' 하며 자신의 뜻을 따르는 거예요."
김우형은 자베르의 내면을 들여다 봤다. 아픔과 고독함이 보여지길 바랐다. 자베르의 솔로곡 'Star'를 부를 때 철저하게 독립된 공간에서 자베르의 고민과 아픔이 드러나길 원했다. 그 다리 위에선 긴장했던 자신을 내려 놓을 수 있고, 어쩌면 별을 보며 눈물을 흘렸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김우형은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을 모습으로 별에게 기대는 자베르를 생각한다"며 "또 그 별을 보며 별이 내게 주었던 신념을 딛고 일어서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자베르의 내면을 더 보여줄 수 있다면 성공이다"고 말했다.
"자베르는 애잔하죠. 결국엔 깨닫잖아요. 내가 살아온 인생이 한순간에 장발장이 살아온 인생으로 인해서 부끄럽고 숨고싶어지는 거죠. 괴로워 하다 죽는 거예요. 부끄러워서 죽는 게 얼마나 비참한가요. 내가 너무 창피해서 더이상은 살 수 없는 자베르의 마음이 어떨까요. 죽을 때 되면 저절로 땀과 눈물이 범벅이 돼요."
김우형은 자베르에게서 자신을 보기도 한다. 그런 부분들을 최대한 끄집어내 활용하고 있다. "나도 삶 자체가 많이 흐트러져 있는 삶은 아니다"고 밝힌 김우형은 "좀 계획적인 것을 좋아하고 자존심도 세다. 신념에 대한 확신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비슷하다"고 털어놨다.
까다롭고 힘들기도 한 매킨 토시의 작품을 수년째 해오고 있는 김우형은 '레미제라블'을 하면서도 왜 30년동안 '레미제라블'이 공연될 수 있었는지 그 저력과 힘을 작품 자체에서 느끼고 있다. "인정할 수밖에 없고 본받아야할 부분들이 정말 많다"며 "제작 환경이나 연습 시스템도 정말 좋고 배우로서도 그런 부분에 큰 자부심을 느낀다"고 말했다.
"작품에 대한 자부심은 당연히 느껴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그거에 더불어서 책임감을 가져야 하죠. 우리는 뭔가 보여줘야 해요. 이전에 함께 했던 사람들, 지금 함께 하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인거죠. 이 작품에 쏟아내야 할 열정의 정도이기도 하고 책임져야 하는 우리의 몫이기도 해요. 자부심과 더불어 책임을 져야 해요. 책임이 있어야 완성이 되는 거죠."
사실 책임감은 곧 부담감이 되기도 한다. 영화 '레미제라블'을 통해 더 대중적이고 익숙한 작품이 됐기 때문에 비교의 시선 역시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김우형은 "각자 느끼는 매력들이 다른 것 같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교는 하실 것 같은데 틀린게 아니고 다른거다. 무대에서는 훨씬 더 많은 감정을 받으실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털어놨다.
작품에 대한 책임감이 있는 만큼 그는 연습도 게을리 하지 않는다. 특히 최근에는 노래 연습에 더 몰두하고 있다. 운이 좋아 지금까지 버텨왔다고 생각?던 그는 경험이 쌓이면서 점점 스스로에 대한 아쉬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쉬움이 생기니 점점 무서워지고 두려워졌어요. 그래서 조금 더 다듬고 열심히 공부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죠. 나를 단련시키고 있는 과정이에요. '지금까지 날로 먹었구나. 죄송스럽구나' 이런 생각을 해요. 너무 정신없이 여기까지 온 것 같아요. 이제서야 여유가 생기고 내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더 양질의 공연을 하겠다는 생각으로 앞으로도 노력 할 거예요. 저는 뮤지칼~ 배우니까~"
연기도 점점 재미있어지고 있다. 공부해서 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경험을 쌓고 기본적인 감성들을 잘 담아놓으려 한다. 흘려보내고 잊어버리면 아무것도 안 쌓이게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만나는 사람들의 눈빛을 기억하려 하고 연기적인 양식들을 쌓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되게 자유로운게 배우인데 또 자유롭지 못한게 배우에요. 영혼도 자유롭고 해야 하는데 실질적으로 삶 자체는 많이 생각해야 되고 일상에서도 고민을 해야해서 자유롭지 못하죠. 근데 배우에게 고민이라는건 굉장히 중요해요. 무대에서 그게 다 나타나요. 고민이 없으면 낙오된다는 것을 100% 느껴요. 계속 고민하고 풀어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결하고 또 이겨내면서 살아가며 거기서 오는 즐거움과 행복을 느끼는 거죠."
김우형은 중간이 없는 성격이라고 했다. 이같은 성격이 자유로우면서도 자유롭지 않은 배우에 딱 들어맞는 요소가 되기도 할 것. 그는 "여유있을 때는 한없이 여유 있고 쿨한데 작품을 하면서는 나 자신과 경쟁하며 높아진 관객들 수준에 부합하기 위해 내 자신에 엄격해진다"며 "나만 제자리 걸음을 할 수는 없다. 상대와의 경쟁이 아니라 내가 그냥 이 자리에만 있을 수는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 신념에도 어긋나게 되는 거니까"라고 말했다.
"'레미제라블'의 궁극적인 큰 내용은 사랑이에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는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정말 많은걸 담을 수 있잖아요. '레미제라블'에는 자비, 긍휼, 동정, 존중, 존경 등 모든게 담겨 있어요. 다 사랑이죠. 지금 시대에 우리가 꼭 잊지 말아야할 주제들을 담고 있어요. 그런 면에서 자베르 역시 진짜 내면이 중요해요. 힘들 때도 있지만 그럴수록 더 잘 표현해야죠."
마지막으로 올해 데뷔 10년을 꽉 채운 김우형은 팬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여전히 열심히 살고 더 좋은 작품으로 보답해야 한다는 마음은 변함이 없고, 팬들에게는 늘 고마운 마음 뿐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내가 잘 하나 못 하나 늘 버텨준 내 팬들이참 고마워요. 자베르가 다리 위에서 고독하게 독백하면서도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별이잖아요? 저에게는 팬들이 그런 별 같은 존재에요. 그런 존재들이 또 절 별로 생각해줘서 너무 고맙죠. 저에게는 그들이 별이니까 실망시키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제 원동력이에요. 팬들도 10년간 함께 하면서 제 성향을 많이 닮아가고 비슷해지는데 그렇게 서로 자유로운게 좋은 것 같아요. 버텨줘서 고맙고, 있어서줘서 고마워요. 당신들이 버텨주기 때문에 나도 버틸 수 있다고 얘기하고 싶어요. 배우로서 고독해지고 쓸쓸해질 때가 많은데 그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긴 하지만 마음 한 켠에 기댈 수 있는 곳이 필요해요. 팬들은 그런 제가 기댈수 있는 내 벗이자 동생들이자 누나들이에요. 항상 저를 바라고보 비춰주는 별들에게 항상 고맙다는 말 전하고 싶습니다."
뮤지컬 '레미제라블'. 공연시간 180분. 2016년 3월 6일까지 서울 블루스퀘어 삼성전자홀. 문의 1544-1555
[뮤지컬배우 김우형. 사진 = 송일섭기자 andlyu@mydaily.co.kr]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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