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무대 위가 아닌 아래, 화려함이 아닌 인간 군상을 들여다봤다. 뮤지컬 '오케피'가 그린 오케스트라 피트, 그 곳엔 인생이 있었고 따뜻한 시선이 공감대를 이끌어냈다.
뮤지컬 '오케피'는 무대 아래 오케스트라에서 벌어지는 해프닝을 중심으로 13명 단원들의 고충과 애환을 유쾌하게 그려낸 작품. 한국에서는 '웃음의 대학', '너와 함께라면'으로 유명한 일본 극작가 미타니 코키의 원작이며 황정민 연출이 한국 초연을 위해 5년간 준비한 야심작이다.
'오케피'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이야기를 그리는 만큼 공연 전부터 실제 오케스트라 단원들에 초점을 맞춘다. 무대 아래에서 연주하던 이들을 아예 무대보다 더 위에 올렸다. 관객들은 공연장에 들어서자마자 오케스트라를 마주하게 되고, 그들에게 집중하게 된다.
조명은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비춘다. 그간 가려져 볼 수 없었던 그들의 생생한 연주가 눈 앞에 펼쳐지고, 듣는 귀를 즐겁게 한다. 시작과 끝 모두 오케스트라에 집중해 그들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낸다. 연주가 더 풍성해지는 것이 당연하다.
귀에 쏙쏙 박히는 넘버가 관객들 귀를 가볍게 터치한다. 각각 적절하게 배분된 멜로디와 연주 자체에 기울인 관심은 곧 풍성한 음악으로 펼쳐진다. 다양한 인간 군상을 그리는 만큼 가사는 현실적이고 솔직하지만 유치하지 않다.
무게 잡지 않는 배우들의 소리와 아기자기하면서도 방대한 음으로 화려한 음악을 만들어내는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최상의 합을 만들어낸다. 무대 위 배우들이 직접 악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오케스트라 연주에도 더 귀를 기울일 수 있는 효과가 있다.
연주자들의 연주와 함께 펼쳐지는 이야기 역시 극의 따뜻함을 더한다. 관심 갖지 않았던 무대 아래 연주자들은 생각보다 더 현실적인 모습이다. 짧다면 짧은 공연 시간 동안 인생의 희로애락을 모두 담으며 무대 아래 연주자들 뿐만 아니라 화려함 뒤에 살고 있는 진짜 우리 인생의 이야기가 모두 그려진다.
오케스트라를 진두지휘하는 컨덕터는 그 누구보다 인간적이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을 이끄는 동시에 다른 팀과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중간 역할을 한다. 관객들에게도 화자가 되어 무대 위 배우들과의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인물 역시 컨덕터다. 작품을 설명하고 의미를 전달하며 중심 역할을 톡톡히 한다.
오보에는 부성애를 그린다. 반복되는 일상에 지쳐 냉철하다 못해 염세적으로 변한 오보에는 20년만에 처음 만난 딸을 계기로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그가 단원들에게 진심을 드러내고, 진짜 자신의 인생을 노래하는 순간 감동은 배가된다. 서툴지만 따뜻한 아버지의 마음과 중년을 지나는 한 남자의 인생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바이올린은 홀로서기를 보여준다. 남편과 별거하고 새 남자친구와도 이별한 바이올린. 딱부러지는 성격인 것 같지만 그녀 역시 진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내고 있다. 그녀가 자기 안에서 고민을 해결하고 홀로서기를 해가는 과정이 돋보인다.
하프는 진짜 자신의 모습을 찾아간다. 아름답고 인기도 많지만 그녀는 보여지는 이미지에 자신을 맞춰 살아왔다. 그로 인해 본의 아니게 오해를 사게 되는데도 그녀는 진짜 자신을 드러내지 못한다. 그러나 조금씩 자기 안의 진짜 모습을 끄집어내기 시작하는 하프의 진솔한 모습이 자신을 옥죄이고 있는 틀 안에서 괴로워하는 많은 이들에게 공감을 자아낸다.
트럼펫은 자유로운 사람이다. 마음대로 행동하는 마초다. 그러나 그런 그도 동료들과 함께 하면서 조금씩 성장해간다. 자유로운 영혼인 듯 하지만 물러설 때를 알고, 고집 부리지 않는다. 독특한 성격으로 인해 관객들에게는 웃음마저 준다.
비올라는 착하고 성실한 사람이다. 궂은 일도 앞장서서 한다. 그러나 그에게 시련이 찾아온다.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평가 받지만 결론적으로는 이름도 각인되지 못한 무존재다. 그는 좌절하고, 동료들은 미안해한다. 그의 이름을 알아가는 과정 속에 서로가 교감하고, 신경 쓰지 못했던 부분을 다시 돌아보게 하는 메시지를 전한다.
기타는 "하염없이 긍정맨~"이라는 노래가 딱 어울린다. 무엇이든 자기 좋을대로 생각하지만 이는 긍정적인 인생을 살 수 있게 한다. 생각지 못한 좌절 앞에서도 훌훌 털고 일어나는 기타를 바라보며 관객들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용기를 얻을 수 있다.
피아노는 실수 투성이지만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고, 동료들에게 사과하며 인정할 줄 안다. 제대로 된 소리를 못내기 때문에 오케스트라에서 빠져도 될 존재같지만 그렇지 않다. 그는 자신의 주위를 따뜻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이는 곧 오케스트라 단원들 전체를 따뜻하게 만들며 팀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 세상에 필요하지 않은 사람은 없는 것이다.
첼로는 예민하지만 가족과 친구, 주위 사람들을 챙길 줄 안다. 여기저기 예민한 성격을 드러내고 신경질적으로 행동하지만 속내는 따뜻하다. 홀로 아이들을 키우는 당찬 엄마이기도 하고, 홀로 서기를 앞두고 고민하는 친구를 위로하는 따뜻한 마음도 갖고 있다.
드럼은 연주와 함께 다단계 판매까지 하는 현실적인 인물. 주위 사람들에게 다단계 판매를 하려 하지만 그에게도 숨겨진 이야기가 있다. 저마다 사연 없는 사람은 없듯 드럼 역시 그럴 수밖에 없는 사연이 공개되면서 다양한 인간 군상을 보여준다.
바순은 공연 중에 음식을 먹으면 곧바로 잠이 들어버리는 위험한 인물이지만 속내는 따뜻하다. 팀원을 이해하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존재다.
색소폰은 여러개의 악기를 연주하며 1인 n 역을 소화하는 멀티플레이어 답게 유쾌하다. 경마에 빠져 있지만 다른 이에게 피해주지 않고, 다른 이들의 감정을 들여다볼 줄 안다. 서로가 서로에게 깨달음을 주는 것이다.
대타 알바로 온 퍼커션은 사회 초년생. 음악에 대한 열정을 갖고 오케스트라에 합류하지만 현실 앞에 실망한다. 그러나 혼란스러워 하고 현실에 실망하는 그는 마지막, 현실을 살아가는 이들의 진짜 모습을 이해하게 된다. 이 모습은 실제 우리와도 이어져 현실을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군상이 결국엔 그 안에서도 희망을 노래하고, 따뜻함을 나눔을 느끼게 한다.
굳이 인물을 하나 하나 설명한 이유가 있다. '오케피'는 그만큼 각각의 인물들 모두가 자신의 이야기, 곧 우리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누구도 그냥 지나칠 수 없다. 화려한 겉모습이 아니라 진짜 모습을 그리려는 작품 자체의 메시지 때문에도 더 그렇다. 13인의 공연에는 우리 인생이 모두 담겨 있다. 거창한 것 같지만 진짜 그렇다. 가볍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그 안에 우리 인생이 있고, 성장하는 과정이 있다.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함께 성장하고 있는 것이다.
무대 위가 아닌 다른 곳을 보니 이렇게 우리 모두가 담겨 있다. 그래서 '오케피'는 더 따뜻함이 느껴진다. 화려하고 쇼적인 부분이 아닌 그 이면을 바라볼 수 있는 시선이 멋지다. 커튼콜에서도 스태프의 이름을 하나 하나 기억하려 하고, 마지막에도 주인공인 오케스트라를 비추는 모습이 더 진한 감동을 전한다.
이를 연기하는 배우들의 개성이 더욱 빛나는 것도 함께 만드는 과정이 보이기 때문. '오케피'는 '어벤져스' 급 배우들이 모였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실력파 배우들이 모여 13인의 오케스트라 팀을 구성했는데 때문에 동떨어지는 배우가 하나도 없다.
황정민은 각각의 캐릭터가 전하는 메시지가 특별한 만큼 5년간 캐스팅에 공을 들였고 그 결과, 황정민, 오만석, 윤공주, 린아, 서범석, 김태문, 박혜나, 최우리. 최재웅, 김재범, 송영창, 문성혁, 김원해, 김호, 황만익. 김현진, 백주희, 남문철, 심재현, 이상준, 윤현욱, 이승원, 정욱진, 박종찬이 모여 모든 인물을 살아 숨쉬게 했다. 무대 위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들이 함께 만들어가는 진짜 공연의 진수를 보여준다.
'오케피'는 전체적으로 유쾌하고 따뜻하다. 우리 인생이 결국엔 유쾌함 속에서 따뜻함을 찾아낼 수 있음을 드러내는 부분이다. 물론 시련도 있고, 좌절도 있다. 안 좋은 기억, 혼란스러운 일도 일어난다.
그러나 마지막 곡을 연주할 때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모두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성장의 기쁨을 알고, 그 안에서 따뜻한 마음을 나눴기에 나오는 표정이다. 관객들 역시 이 부분에서 희망을 얻을 수 있다. 우리도 역시나 성장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따뜻한 마음을 나누고 결국엔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뮤지컬 '오케피'. 공연시간 170분. 오는 2016년 2월 28일까지 서울 LG아트센터. 1544-1555
[뮤지컬 '오케피' 공연 이미지. 사진 = 한혁승 기자 hanfoto@mydaily.co.kr]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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