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배우에게 있어 관객 바로 앞에서 사실적인 연기를 펼치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배우 허동원(37)은 연극 '사건발생 1980'에서 그 어느 때보다 사실적인 연기를 펼치고 있다. 있을 법한 이야기, 외면하고 싶지만 사실적으로 느껴지는 작품을 통해 허동원의 내공이 빛을 발하고 있다.
연극 '사건발생 1980'은 평범한 소시민의 가족사를 잔잔하게 그린 작품. 80년생 춘구와 그의 배다른 누이들이 함께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다룬다. 극중 허동원은 다리가 불편한 셋째딸 선희의 남자친구 지환 역을 연기한다.
사실 소시민의 가족사를 잔잔하게 그린다고 하지만 작품은 다소 극단적이다. 복잡하고 감정적으로도 꽤 불편하다. 그러나 허동원은 "극단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으려 노력했던 것 같다. 쉽게 단순하게 생각했다"고 운을 뗐다.
그는 "'사랑한다 ,좋아한다 ,싫어한다' 등의 감정처럼 최대한 단순하게 접근하다 보니 어느새 작품에 빠져 연기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됐다"며 "개인적으로는 연기를 하면서 관객의 감정까지 침범하지 않으려 한다. 그냥 배우로서 그 상황이 주어지면 그것에 충실히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편"이라고 밝혔다.
"비극이든 희극이든 그 역할이 표현하는 인생을 관객분들이 보고 느끼고 판단한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자신에게 와닿는 감정, 공감하는 부분이든 불편하거나 거북함이 느껴지는 감정이든 그것은 오롯이 관객들이 평가하고 받아들여야 하는 부분이죠. 그 순간 이해하기 어렵더라도 공연을 보고 난 이후에 일상생활에서 비슷한 경험을 하거나 감정을 느낄 때 우리 공연이 생각난다던지 하는 경우가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허동원은 지환 역에 대해 "상처가 많은 인물"이라고 했다. 때문에 인물이 처한 슬픔과 상처, 용서와 갈등 등 다양한 감정들을 고민해 보며 분석해 나갔다고.
"지금도 만들어가고 있는 건 모든 감정은 잔잔한 호수와 같다고 생각하면서 연기하는 거예요. 그 호수에 돌을 던지면 호수 아래 쌓여있던 그 어떤 부유물인 감정이 떠오르게 되는 것 같아요. 무엇이 떠오를지 모를 그 부분을 매순간 열어두고 있는 편이에요. 그렇게 접근하다 보니 지환이라는 인물을 이해하기가 훨씬 편했고, 이입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어요."
지환은 다소 늦게 무대에 등장하지만 허동원은 오히려 더 편안함을 느낀다. 앞서 배우들이 만들어 놓은 흐름과 분위기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려 하는 그는 "먼저 등장한 배우들이 만들어 놓은 분위기와 함께 몰입한 관객들에게 최대한 그 분위기를 방해하지 않고 이어 나갈 수 있게 잔잔하게 녹아들 수 있도록 노력했다"고 말했다.
연극 '사건발생 1980'은 사실적인 생활 연기가 돋보인다. 자신이 본능적인 배우가 아니라고 판단한 허동원은 반복하고 익숙해져 있는 상태에서 편안함을 찾아 생활 연기를 하려 했다. 끊임 없는 노력 없이는 생활 연기를 펼치기 어렵다는 것을 알기에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이같은 노력은 관객들을 익숙함에 길들여지게 하고 극을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한다.
사실적인 생활 연기를 펼치다 보니 극단적인 상황에서 액션도 펼친다. 칼을 들고 몸싸움을 하는 위험한 신이기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도 집중력이 필요하다.
허동원은 이 역시 "아무래도... 연습뿐인 것 같다"며 연습을 강조했다. "영화 '범죄도시' 덕분에 올 초부터 액션스쿨에서 트레이닝을 받았다. 그 부분이 알게 모르게 도움이 많이 된 것 같다"면서도 "하지만 무대 위 액션은 NG가 없으므로 더욱 더 철저히 연습해서 완벽에 가깝도록 노력을 많이 했다. 상대 배우와의 합이 무척이나 중요한 작업이니만큼 틈만 나면 서로 동작을 맞춰 보고 대사 연기보다 더 신경을 많이 써서 준비했기 때문에 어느정도 자신감도 붙고 호흡도 잘 맞아 아주 만족스럽다"고 털어놨다.
"이번 공연에 특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어요. 몸싸움도 등장하고 과격한 장면이 많다 보니까 연습도 실제와 마찬가지로 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그러지 않으면 실제 공연에 들어갔을 때 실수를 범할 우려가 있어 연습도 실제처럼 해야 마음이 놓일 정도였으니까요. 그래서 연습 중에 있었던 에피소드가 더 기억에 남는데요. 실제로 맞고 때리고 뒹굴고 하다 보니 이건 몸이 정말 힘든거예요. 실제 공연 들어가기 전에 거의 녹초가 되는 경우도 있었고요. 그런데 그렇게 하니까 정말 몸이 기억하고 몸이 반응한다는 말이 딱 들어맞았던 것 같아요. 연습때 그 아픔들을 기억하니 실제 공연에서도 더 자연스럽게 과격함을 표현할 수 있었죠."
그렇다면 극중 지환처럼 사랑하는 사람과의 사이에 장애물이 생긴다면 허동원은 어떤 선택을 할까? 그는 "저는 그 사랑을 놓을 것 같다"고 답했다.
"그 사랑을 이어간다면 남아 있던 상처에다가 계속해서 새로운 상처가 더해 질 거 같다"며 "사랑은 아프게 사랑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서 저는 그런 선택을 하게 될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상대역 안혜경과의 호흡에 대해 "같은 극단 '웃어' 단원이며 세 작품에서 함께 호흡을 맞췄다. 연기에 대한 진지함과 절실함에 항상 많은 걸 느끼게 해주는 배우라고 생각한다"며 "동물적 감각이 아닌 동물적 감성이 탁월한 배우라고 생각한다. 사람이 좋다. 역시 좋은 사람이 연기도 잘하는 듯 하다"고 칭찬했다.
허동원은 최근 영화 '범죄도시'에 출연하며 분야를 넓혔다. "항상 꿈꿔왔고 노력해왔지만 여기까지 달려오는 데는 쉽지 않은 싸움이었던 것 같다"며 "요즘 매체연기 후 다시 무대 연기를 하니 동료들이 많이 달라졌다는 얘기를 해준다. 분명 그시간 동안 성장했으리라 생각한다. 둘을 나누지 않고 폭넓은 배우로서 활동할 수 있게끔 더 노력할 것"이라고 고백했다.
"영화는 많이 힘들고 고단한 작업이었지만 내색할 수가 없었어요. 더 강도 높은 액션을 구사하는 마동석선배님 윤계상선배님 앞에서 힘들어 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이 악물고 버티고 버텼죠. 그래서 작품에 조금이나마 힘을 보탤 수 있어서 아주 만족하고 있어요."
영화를 통해 분야를 넓혔지만 연극 무대는 결코 떠날 수 없다. 배우라는 걸 잘 몰랐던 시절 친한 친구 따라 우연히 접한 무대지만 처음 무대에 서게 해 준 극단 '산' 윤정환 연출에 대한 감사함을 항상 잊지 않고 생각하며 연기하고 있다.
"저는 본능적이고 천부적인 재능을 가진 배우가 아니라고 판단했어요. 그래서 다양한 감정의 표현 방법을 연습하고 사용해 볼 수 있는 공간이 아무래도 무대가 아닐까 생각했죠. 다양한 작품이 쌓여갈 때마다 제에게는 새로운 무기들이 하나씩 생겨난다고 생각하며 연기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그 무기들을 더 많이 쌓을 수 있도록 무대 위에 계속 서 있을 거고요. 물론 첫 상업 장편 영화인 '범죄도시'를 통해 쌓여 있던 무기들 중 하나를 사용했다고 생각해요. 지금껏 경험해 보지 못했던 아주 즐거운 작업이었죠. 앞으로도 끊임없이 무대에서 단련된 무기를 통해서 매체 연기에서 사용할 수 있는 기회가 많이 주어지기를 희망해 봅니다."
허동원은 "좋은 사람이 연기도 잘하는 듯 하다"라고 강조했다. 말 그대로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연기에 임하고 있다.
"극단 '웃어' 후배들에게도 기회를 줄 수 있는 선배가 되고 싶어요. 출연료에 구애받지 않고 금액의 많고 적음을 떠나 그들과 함께 연기하며 그 보다 더 큰 것들을 얻게끔 도와줄 기회를 제공해 줄 수 있다면 저는 만족할 것 같아요."
연극 '사건발생 1980'. 공연시간 80분. 오는 7월 2일까지 서울 종로구 지즐소극장.
[사진 = 샛별당엔터테인먼트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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