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구
[마이데일리 = 이후광 기자] 한국 축구의 자랑 박지성은 어릴 적 키가 작고 왜소해 수많은 지도자로부터 외면받기 일쑤였고, 국보급 센터 서장훈은 중학교 시절 어중간한 키에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했다. 성공한 선수들의 시작은 이렇게 특별하지 않은 경우도 있었다.
국내 여자배구 최고의 센터로 자리매김한 양효진(28, 현대건설)의 시작도 그랬다. 양효진은 어릴 적 그저 키 크고 마른 평범한 소녀였다. 운동의 ‘운’자도 몰랐고, 책상에 앉아서 공부하는 게 더 좋았다. 그러나 그의 재능을 알아본 한 선생님의 음식 공세(?)에 배구공을 잡았고, 그렇게 시작한 배구는 양효진의 인생이 됐다.
마이데일리는 창간 13주년을 맞아 '거요미' 양효진의 배구 인생을 들어보기로 했다. 지난 2007년 현대건설 1라운드 4순위로 프로에 입단해 국가대표 센터가 되기까지 양효진에겐 어떤 우여곡절이 있었을까.
▲172cm 초등학생, 배구공을 처음 잡다
-배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초등학교 4학년 때 줄넘기를 하고 있는데 한 선생님이 오셔서 배구를 제안했다. 처음에는 맛있는 걸 사준다는 꾐에 넘어갔다. 배구할 때마다 햄버거, 파스타, 쫄면 등을 사주셨다. 먹는 게 너무 좋아 계속 배구를 했다(웃음).”
-초등학교 때부터 키가 남달랐을 것 같은데.
“4학년 겨울에 172cm였다. 진짜 마르고 크기만 했다. 힘쓰는 운동을 한다는 건 상상도 못 했다. 지금 와서 사진을 보면 항상 남들보다 머리 하나가 더 있다. 러시아 사람 같다. 지금의 키(190cm)는 고등학교 때 만들어졌다.”
-어릴 때부터 배구가 재미있었나.
“사실 초등학교 6학년 때 너무 힘들어서 배구를 그만뒀다. 공부하려고 마음먹었는데 어머니가 배구부가 있는 중학교에 원서를 쓰고 오셨다. 난 죽어도 안 한다고 했기 때문에 충격이 컸다. 중학교 선생님이 신체 조건이 워낙 좋아 재능을 썩히면 안 된다고 어머니를 설득했다. 다시 할 자신이 없었지만 난 그렇게 다시 배구공을 잡았다.”
-고교 시절 힘든 시기는 없었나.
“내 성격 자체가 중간에 그만둔다는 말을 좀처럼 안 한다. 힘들어도 참고했다. 사실 고등학교 때는 프로에 못 갈 것이란 말이 많았다. 당시 배유나(도로공사), 이연주(KGC인삼공사), 김혜진(개명 후 김나희, 흥국생명), 하준임, 백목화(이상 은퇴)는 모두 어느 팀에서 데려간다는 소문이 있었는데 난 그런 것도 없었다. 많이 힘들었다. 내가 성공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었지만 다행히 현대건설에 지명됐다.”
▲양효진이 말하는 현대건설
-현대건설에서만 11시즌을 뛰고 있다.
“처음 시작부터 궁합이 잘 맞았다. 신인 때 정대영 언니가 이적했고, 팀 성적이 안 좋아 내가 공을 때릴 수 있는 횟수가 많았다. 지도자도 잘 만났다. 홍성진 감독님은 기본기를, 황현주 감독님은 전술을 잘 가르쳐주셨다. 그땐 왜 그렇게 힘들게 해야 하나 싶었는데 모든 게 잘 맞아 떨어져 지금의 내가 있는 것 같다.”
-현대건설이란 팀의 매력은.
“윗분들께서 지원도 잘 해주시고, 관심도 많이 가져주신다. 기본 베이스가 잘 돼 있는 팀이다. 성적만 난다면 이 팀만큼 좋은 팀이 없는 것 같다. 무조건 한 팀에 오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다. 구단에서 대우를 잘 해주셔서 이렇게 한 팀에만 있게 됐다.”
-올 시즌 첫 여성 지도자가 왔다.
"이도희 감독님이 코치, 해설위원을 오래 하셨고 스타플레이어 출신이라 생각에 깊이가 있으시다. 연륜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배구의 흐름을 빨리 잡아내신다. 과거에만 국한되지 않고 지금 시대의 흐름을 아셔서 선수들과 소통이 원활하다."
-세터 이다영이 많은 주목을 받고 있다.
"사실 처음에는 (이)다영이가 한 시즌을 제대로 치러본 적이 없어 의문점이 많았다. 다행히 좋은 신체조건에 재능도 있고, 배구를 잘 하려는 의욕이 커서 잘하고 있다. 일단 세터가 잘 도와주니 센터로서 속공이 원활하게 이뤄진다. 열심히 하려는 모습이 보이니까 어떻게든 나도 잘 맞춰보려 한다. 그동안 어떻게 그 흥을 참고 살았나 싶다(웃음)."
-2년만의 대권 도전 가능성은.
"현재 선두를 질주하고 있지만 순위에 대해 크게 생각하진 않는다. 팀들이 워낙 평준화됐기 때문에 우리가 할 것을 제대로 하자는 분위기가 크다. 다행히 감독님이 바뀌면서 자유로우면서도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됐다. 지금의 리듬을 잘 유지하면 좋은 성적으로 마무리될 것 같다."
▲성공을 의심하던 소녀, 국가대표 센터가 되다
-태극마크를 달고 처음으로 뛴 경기가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당연히 기억난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예선이었다. 당시에는 정말 아무 생각도 없었다. 정신이 없었고, 배구가 어렵게 느껴졌다. 태극마크의 자부심보다는 내가 너무 못한다는 생각이 더 강했다. 항상 대표팀에 가면 내 한계를 깨고 싶었다. 너무 못하는 나 자신에 화가 났던 적이 많았다.”
-김연경 이야기를 안 꺼낼 수 없다.
“배구를 하면서 가장 많이 도움이 된 선수는 (김)연경 언니다. 어린 시절에는 언니가 왜 그렇게 국가대표에 집착하는지 이해가 잘 안 됐다. 어떻게 해야 나도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을지 고민했다. 그냥 대표팀에 대한 애착이 부러웠다. 언니를 보며 진심으로 애착을 가지면 결과가 나온다는 걸 깨달았다. 배구는 배움의 연속이다.”
-올해 대표팀에 나가서 허리를 다쳤는데.
“다행히 많이 좋아졌다. 나이가 들면서 어쩔 수 없다(웃음). 원래부터 안 좋았지만 그렇게까지 아픈 건 처음이었다. 컨디션이 안 좋아 경기하다가 허리가 빠졌다. 재활을 잘했지만 이젠 의자에 오래 앉아있질 못한다. 차를 장시간 타도 불편하다. 고질병이 된 것 같다. 다행히 경기할 때는 괜찮다.”
▲센터 양효진
-처음 배구를 시작할 때부터 센터였나.
“난 계속 센터였다. 다른 포지션에 대한 욕심은 없었다. 성격 자체가 여러 가지를 생각하지 않는다. 내게 무언가 주어지면 그것만 소화하려고 최선을 다한다. 어릴 때부터 ‘난 그냥 센터구나’라고 받아들였다.”
-본인이 생각하는 센터의 매력은.
“상대 공격을 차단할 때, 상대 센터와 머리싸움을 할 때 재미있다. 특히 블로킹은 분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 블로킹에 성공하면 기분이 두 배로 좋다. 사실 배구는 모든 포지션이 다 매력적이다. 알고 하면 더 재미있는 운동이다.”
-8시즌 연속 블로킹 여왕에 올랐고, 역대 블로킹 1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비결은.
“키만 크면 블로킹을 잘한다는 말이 가장 속상하다. 정말 열심히 노력해서 하는 것이다. 어쨌든 지금도 아직 배울 게 많다. 다른 나라 선수들을 보면 모두 잘 한다. 내가 블로킹을 잘한다고 생각한 적은 없다. 그냥 매 시즌 열심히 준비했던 게 좋은 결과로 나왔다. 뿌듯하긴 하지만 기록에는 연연하지 않으려고 한다.”
▲양효진에겐 배구란
-부산에서 수도권으로 와서 11년을 보내고 있다. 고향 생각이 많이 날 것 같다.
“난 부산이 그냥 좋다. 놀 것도 많고, 먹을 것도 많아 집에 가면 여행처럼 신난다. 부모님이 워낙 잘해주셔서 너무 편하다. 다만, 자주 못 가서 아쉬운 마음은 크다. 숙소 생활하는 모든 선수가 대단하다(웃음). 부산은 1년에 한 번 시즌 끝나고 휴가받을 때 간다.”
-20대의 끝에서 20대를 되돌아본다면.
“확실히 데뷔 때보다 생각이 더 커진 것 같다. 하나에 연연하지 않고 좀 더 크게 바라보는 힘이 생겼다. ‘20대 초중반 인생을 즐겼으면 중간에 조금 덜 힘들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지만 후회는 없다.”
-남은 선수 생활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즐겁게 그리고 안 다치고 배구를 오래 했으면 좋겠다. 그냥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면서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할 생각이다.”
-마이데일리 독자들에게 한마디.
“벌써 11년 차가 됐는데 지속해서 응원을 보내주셔 감사드린다. 팬들을 보면 내가 그동안 배구를 잘해왔다는 생각이 든다. 또 경기장에 많이 찾아와주셔서 너무 좋다. 평일 5시 경기에 많이 오셨을 때 특히 뿌듯하고 더 감사하다. 배구를 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
-양효진에게 배구란?
“배구는 꿈이다. 어릴 때부터 기량, 인생 등 모든 면에서 날 발전시켰다.”
[창간인터뷰②]에서 계속.
[양효진 창간인터뷰. 사진 = 용인 곽경훈 기자 kphoto@mydaily.co.kr, 마이데일리 DB, KOVO 제공]
이후광 기자 backlight@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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