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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대의 음악노트]
"음악평론가 강헌이 음악가 신해철에게 보내는 가장 사적이고 가장 전문적인 주석"
내가 이 책을 산 이유는 앞 부분 카피 때문이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내가 몰랐던 신해철 또는 강헌만이 알고 있는 “가장 사적인” 신해철을 전해 듣고 싶었다. 책은 반은 거기에 부합했지만 반은 부합하지 못했다. 강헌은 신해철의 음악 인생을 따라가는 전형적인 전기 작법으로 이 책을 썼다. 그 사이 자신이 자신있어하는 대한민국 대중문화 및 대중음악 통사를 양념처럼 섞어 신해철에 버금가는 수사학을 펼치며 독자의 읽는 맛을 배려했다. 만약 이 책을 펼친 동기가 독자 개인들이 가진 신해철(음악)과의 추억 또는 강헌의 필력이라면 알맞은 선택일 수 있다. 하지만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신해철에 관한 더 많은 팩트에 목 말라 이 책을 펼쳤다면 조금 심심할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이 책의 한계일지도 모른다.
“가장 사적인 주석”이라는 말에는 또 다른 함정이 있다. 바로 주관적 과찬이다. 강헌의 글은 제법 괜찮은 신해철 비평인 동시에 신해철을 향한 맹목적 칭찬이기도 하다. 팬이라면 대체로 고개를 끄덕일 만한 것들이지만 적어도 비평이라면 그 대상과 조금은 거리를 둔 논조를 지켰어야 했다. 예컨대 신해철의 재즈 앨범을 “나윤선과 말로, 웅산 정도를 제외하면 황무지나 다름없는 국내 재즈 보컬의 시금석이 될 만한 작업”으로 극찬한 건 조금 지나치지 않았나 하는 것이다. 이건 먹을 수 있는 욕은 거의 다 먹은 고인의 재즈 앨범을 그래도 ‘수작’이라 부르려는 사람들의 애닯은 심정마저 머쓱하게 만들어버리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국내 재즈 보컬계가 “나윤선과 말로, 웅산 정도를 제외하면 황무지나 다름없”을 수 있는가. 자신이 들어보지 못한 것을 세상에 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것은 평론가로서 경계해야 할 사고방식이다. 모르면 쓰지 않으면 된다. 맹목의 과찬은 맹목의 반감을 사게 될 수도 있다.
책 '신해철'은 360쪽 분량이지만 과거 인터뷰와 고인 음악으로 이뤄진 주크박스 뮤지컬 ‘The Hero’ 대본을 빼면 사실상 강헌의 ‘주석’은 209쪽에서 끝난다. 그 안에는 내가 고인으로부터 직접 들은 내용도 있었고 간접으로 접한 내용도 많았다. 물론 몰랐거나 잊고 있던 내용도 여럿이었다. 예컨대 고인이 생전에 마르크스를 읽는 대신 리차드 막스를 들었고, 레닌보다 존 레넌을 더 가까이 했다는 사실은 가물거렸던 기억이다. 반면, 2014년 1월의 어느날 밤 성남에 있는 작업실에서 강헌과 고인이 몇 달 만에 다시 마주 앉아 나눈 이야기는 내가 알 수 없는, 이 책을 산 이유에 가까운 것이었다. 그러나 해당 내용은 아쉽게도 에필로그로만 처리됐다. 일반적인 디스코그래피, 바이오그래피를 넘어 책 전체를 강헌 자신만이 알고 있는 신해철, 둘만이 나눈 대화 쪽에 무게를 두었더라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책 발간은 조금 미뤄졌을지언정 더 신나게 읽을 만한 209쪽이 되었을 것 같다.
책을 덮으며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제 일처럼 생생한 그의 작고가 햇수로 5년이나 됐다는 사실에 놀랐고, 여전히 그의 음악이 내 일상을 떠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살아있다면 진행되었을 신대철과의 콜라보 앨범, ‘A.D.D.A’로 재점화 된 솔로 활동, 다시 힘차게 날아오를 뻔한 넥스트의 행보. 이 모든 가능성들이 눈 앞에서 꺾인 일들은 그것대로 참담한 슬픔으로 밀려왔다. 나처럼, 그의 음악으로 추억을 빚진 모든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사진제공=도서출판 돌베개]
필자약력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웹진 음악취향Y, 뮤직매터스 필진
대중음악지 <파라노이드> 필진
네이버뮤직 ‘이주의 발견(국내)’ 필진
마이데일리 고정 필진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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