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봉영화
[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이웃사촌'은 베테랑 배우 정우(40)에게 새로운 배움을 선물했다. "'이웃사촌'을 찍으면서 성장했어요. 감사한 마음이 있고, 그 모습을 관객 분들이 고스란히 느껴주셨으면 합니다."
'이웃사촌'은 좌천 위기의 도청팀이 자택 격리된 정치인 가족의 옆집으로 위장 이사를 오게 되어 낮이고 밤이고 감시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로 휴먼, 감동, 코미디가 결합됐다. 천만 영화 '7번방의 선물'을 연출하며 교도소라는 특수한 공간에서 가족애와 동기애를 그려냈던 이환경 감독은 이번에도 격리 설정을 통해 이웃 간의 우정을 담았고 탄압과 은폐가 비일비재했던 1980년대 시대적 배경을 활용해 인간 도리의 이야기로 확장했다.
정우, 오달수, 김희원, 김병철, 조현철 등 탄탄한 내공과 개성 넘치는 연기력을 보유한 배우들이 총출동한 가운데, 드라마 '응답하라 1994', 영화 '히말라야', '재심' 등을 통해 묵직한 감정 연기를 선보였던 정우는 또 다시 평범한 얼굴로 휴머니즘 캐릭터를 펼쳐냈다. 어설픈 도청팀원들을 이끄는 도청팀장이자 가족을 지켜야 하는 가장의 무게까지 가진 좌천 위기의 대권 역을 맡은 그는 도청 대상이면서 직업도, 생각도 다른 이웃집 아빠 의식(오달수)에게 점차 마음의 문을 열게 되면서 벌어지는 캐릭터의 내적 갈등을 세심하게 담아내며 현실 연기의 강자임을 재차 증명했다.
영화 홍보차 취재진과 만나 인터뷰를 진행한 정우는 "부산에서 촬영하다 올라와서 비몽사몽하다"며 "실수라도 할까봐 미리 예상 질문에 답을 적어왔다"라고 너스레로 운을 떼며 휴대전화를 꺼내들어 현장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정우는 '이웃사촌' 출연을 결정하게 된 이유부터 밝혔다. 작품의 이야기를 중요시하게 여긴다는 그는 "작품을 선택하는 방식은 단순하다. 이 캐릭터에 감정 이입이 되는지가 중요하다. 사람에 대한 이야기, 감정적인 부분에서 공감을 가지면 흡인력 있게 본다. 가장 기본은 시나리오다. 그 다음이 누구와 함께 하는 것이냐다. 이번 작품은 이환경 감독님이 크게 자리했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정우와 이환경 감독은 지난 2004년 영화 '그 놈은 멋있었다'에서 한 차례 호흡을 맞춘 바 있다.
이어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올 것 같지 않은 인물이 도청을 하면서 이웃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게 되면서 점차적으로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 듯이 변해간다. 처음과 마지막의 진폭이 굉장히 크다. 감정적으로 표현하는 방식도 여러 가지다. 심리적으로 표현하다가 후반부에는 발악을 하면서 표현한다. 그게 배우로서 도전해볼 만한, 욕심이 난 부분이다. 처음엔 굉장히 드라이했다. 감독님의 손을 거치면서 따뜻해졌고 블랙 코미디가 더해졌다. 이야기에 부담 없이 접근을 할 수 있게 됐다"라고 밝혔다.
다만 '이웃사촌'은 도청 대상에게 동화되고 연민의 마음을 가지게 되는 독일 영화 '타인의 삶'(2007)과 유사한 대목이 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처음에 시나리오를 읽고 '타인의 삶'과 흡사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 작품보다는 더 뜨겁고 더 따뜻하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보면 행위, 소재 등이 흡사할 수는 있는데 표현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라고 생각을 밝혔다.
80년대 배경 안에서 유력 대권주자 캐릭터를 등장시킨 '이웃사촌'은 자연스레 실존 인물을 떠올리게 만든다. 하지만 정우는 "저는 이전에도 정치적, 사회적 이슈가 있을 법한 소재가 있는 작품들을 선택해왔다. 사실 저는 그것 자체에는 크게 관심이 없다. 그냥 영화적인 소재, 장치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드라마 속에서 캐릭터와 감정이 전달해주는 건 분명히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 작품은 정치나 역사적인 의미를 부여한 작품이 아니다. 캐릭터의 감정, 사람의 도리에 초점을 맞춰서 만든 영화다. 그냥 직업이 그럴 뿐이고 당시의 시절이 그랬던 것뿐이다"라고 말했다.
영화 후반부 코미디를 책임지는 대권의 전라 도로 질주씬에 얽힌 비하인드도 밝혔다. 그는 "완전 전력 질주했다. 그 도로를 수십 번 뛰었다. 2월쯤이라 날씨도 굉장히 추웠다. 추운 것도 추운 거지만 아스팔트 위에 있는 유리 등을 다 치울 수가 없지 않나. 그래서 가시도 박히고, 찔리고 그랬다. 숙소 가보면 발바닥이 만신창이가 됐다. 촬영할 때는 모른다. 그 씬에서만큼은 더 나왔어도 아쉽지 않았을 것 같다. 그 정도로 쉽지 않은 촬영이었다"라고 회상했다.
매 순간 열정으로 완성한 '이웃사촌'이지만 개봉까지 쉽지 않았다. 지난 2018년 크랭크업했지만 배우 오달수의 미투 이슈가 터지면서 개봉이 2년 넘게 미뤄졌다. 이에 정우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있었다"라며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며 "개봉을 하느냐, 마느냐는 배우들의 영역이 아니다. 제가 촬영해놓은 작품이 '이웃사촌'뿐만 아니라 다른 작품들도 있다. 특히 '뜨거운 피'는 촬영한지 1년이 넘었다. 시국 자체가 코로나로 한국 영화계가 어렵다. 그래서 저보다는 전문가 분들이 개봉 시기를 판단하실 거다. 배우들은 응원하고 기다리는 마음이다"라고 전했다.
오달수와의 호흡도 덧붙였다. 그는 "캐스팅은 전적으로 감독님을 믿었다. 물론 선배님에 대한 배우로서의 모습은 기존에 봐왔기 때문에 알고는 있었지만 감독님을 믿었다. 선배님은 묵묵히 지켜보고 받아주시는 스타일이다. 말수가 그렇게 많은 편도 아니시다"며 "친밀감은 당연히 작품 전보다 친밀해졌다. 선배님뿐만 아니라 (김)병철이 형이랑도 그렇다. 특히 (조)현철이랑은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도 같이 했다. 그래서 연기할 때도 호흡이 더 좋아졌다"라고 전했다.
정우는 영화 '더러운 돈에 손대지 마라', '뜨거운 피' 촬영을 모두 마쳤지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여파 등으로 개봉 일정이 불투명한 상황. 대중 앞에서의 공백기가 길어진 것이다. 하지만 정우는 그 시간을 걷기로 보냈다며 "표면적으로는 공백이 있었지만 조금만 생각을 달리하면 도리어 감사함을 느끼게 된다. 세 작품 연속적으로 연기를 하면서 제 안에서 꺼낼 수 있는 것들이 많이 고갈됐다. 그리고 1년 3개월 정도 촬영을 쉬었다. 그 사이에 시간을 가지면서 배우로서 비워내고, 또 채웠다. 굉장히 값졌다"라고 말하며 웃었다.
또 "'이웃사촌'을 찍으면서 성장을 느꼈다. 우선은 감사한 마음이 있고 그 모습을 관객 분들이 고스란히 느꼈으면 하는 마음이 있다. 배우로서의 애티튜드(태도), 작품을 대하는 자세 등을 배웠다. 물론 이전에도 제 나름대로 진정성 있게 작품을 하려고 했는데 사람이 사람인지라 상황과 시기에 따라 차이는 있다"라며 "현재의 상황들은 안타깝지만 비워내려고 한다. 급하게 생각한다고 해서 제 의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그냥 물 흐르는 마음으로, 응원의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라고 개봉에 대한 생각도 덧붙였다.
한편, 정우는 카카오TV 오리지널 웹드라마 '이 구역의 미친X'로 오연서와 로맨스 호흡을 맞추며 오랜만에 드라마로 시청자들과 만날 예정이다. 그는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다. 저는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캐릭터를 연기하고, 상대 배역은 분노유발 캐릭터다. 그래서 조금은 과격한 로맨틱 코미디라 재밌게 촬영하고 있다"라고 귀띔했다.
'이웃사촌'은 오는 25일 개봉한다.
[사진 = 리틀빅픽처스 제공]
이예은 기자 9009055@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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