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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프랑스 작가 장 드 라 퐁텐의 우화 '전갈과 개구리' 이야기를 떠올려보자. 개구리가 강을 건너려는데 헤엄을 못 치는 전갈이 나타나 자신을 등에 태워 강을 건널 수 있게 해달라고 애원한다. 개구리는 "널 어찌 믿어. 넌 전갈이잖아. 독침으로 내 등을 찌를 수 있어. 그럼 우리 둘 모두 죽어"라고 말하며 거절한다. 전갈은 “날 믿어줘. 절대 그런 일은 없을 거야. 우리 둘 다 죽을 텐데 어찌 내가 그런 일을 하겠니?”라고 말하며 개구리를 안심시켰다. 마음이 약해진 개구리는 전갈을 등에 태우고 강을 건너기 시작했다. 강 한가운데 다다랐을 즈음 물살이 거세지자 전갈이 갑자기 개구리를 찌른다. 개구리가 “도대체 왜 그랬어”라고 묻자, 전갈은 “미안해. 나도 모르게 튀어나오는 본성을 어쩔 수 없었어”라고 답하며 물 속으로 가라앉는다.
흔히 잘 바뀌지 않는 인간 본성을 이야기할 때 곧잘 인용되는 우화다. ‘스파이더맨:노웨이홈’을 간단하게 말하자면, 피터 파커(톰 홀랜드)가 다섯 명의 빌런을 갱생시키는 이야기다. 피터 파커가 본성을 바꿀수 있다고 믿는 ‘도덕론자’라면, 다섯 명의 빌런은 본성이 바뀌지 않는다고 믿는 ‘운명론자’에 가깝다. 전갈같은 본성을 드러낸 한 빌런은 피터 파커의 목을 짓누르며 “도덕이 널 죽일 것”이라고 말한다. 이건 마치 남을 도와주려다 물에 빠지는 개구리를 연상시키지 않는가. 그러나 전갈에 묻어있는 독침을 제거한다면, 전갈 역시 착해질 것이라는게 피터 파커의 생각이다. 그는 누군가를 잃는 크나큰 아픔을 겪으면서도 인간의 도덕성을 포기하지 않는다. 칸트가 말하지 않았던가. “인간을 수단이 아니라 목적으로 대하라.”
피터 파커의 소원을 들어주다가 시공간의 균형을 깨뜨려 여러 명의 빌런을 불러들인 닥터 스트레인지(베네딕트 컴버배치)도 운명론자다. 그는 빌런의 본성이 변하지 않기 때문에 다시 그들의 세계로 돌려보내야한다고 주장하고, 스파이더맨은 본성이 바뀔 수 있다고 믿으며 그에 반기를 든다. 이제 스파이더맨은 아이언맨, 닥터 스트레인지 없이도 홀로 설수 있는 어른이 됐다. 물론, 그의 옆에는 사랑하는 애인 MJ(젠데이아)와 절친 네드(제이콥 배덜런)가 있다. 닥터 옥토퍼스가 “우린 어차피 운명을 갖고 있는 존재인데, 다른 세상으로 보내버리면 되지 않아?”라고 묻는다. MJ는 “그냥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거든요”라고 답한다. 운명론과 도덕론의 충돌 못지 않게 ‘스파이더맨:노웨이홈’은 우리 안의 선한 본성을 다룬다.
‘이기적 유전자’의 신화에 휘둘려온 인간은 우리 모두가 타인을 배려하지 않고 자신만을 위하는 것이 당연하고 믿는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라. 지금도 사회적 약자를 도우려는 손길은 끊이지 않는다. 1,2차 세계대전, 9.11 테러, 허리케인 카트리나 등의 재앙 속에서도 인간은 서로 연대와 협력을 통해 위기를 벗어났다. 인류가 서로 돕지 않았다면 어떻게 생존할 수 있었겠는가. 피터 파커는 빌런이 된 다섯 명에게 ‘연민’을 가졌다. 비록 연민으로 인해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비극을 맞고, 누군가를 기억 못하는 아픔을 겪을 지라도 선한 본성은 히어로에게 버릴 수 없는 소중한 가치다. 그래서 ‘스파이더맨’ 시리즈는 이렇게 강조한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
[사진 = 소니픽쳐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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