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마이데일리 = 이현호 기자] 파울루 벤투 감독의 말을 곱씹어 들어야 한다.
벤투 감독은 결국 한국을 떠났다. 벤투 감독과 대한축구협회(KFA)는 이미 지난 9월에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 소식을 이미 알고 있던 대표팀 선수들은 2022 카타르 월드컵 직후 벤투 감독과 작별하며 굵은 눈물방울을 흘렸다.
새 감독 선임에 앞서 귀담아들어야 할 벤투 감독의 쓴소리가 있다. 한국과 가나의 2022 국제축구연맹(FIFA) 카타르 월드컵 H조 조별리그 2차전이 열리기 하루 전, 11월 27일에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공식 기자회견에서 벤투 감독이 꺼낸 말이다.
“한국에서 축구는 최고 인기 스포츠가 아니다.”
해외 취재진의 질문은 “조별리그 1차전 우루과이전에서 한국 팬들의 열렬한 응원이 있었다. 벤투 감독과 한국 축구 팬들의 관계는 어떠한가?”였다. 앞서 우루과이전(0-0 무)을 통해 세계 무대에서 한국식 빌드업 축구가 통한다는 게 증명되자 여론이 급격히 좋아졌다.
벤투 감독은 “한국에서 축구가 최고 인기 스포츠는 아니지만, 팬들은 대표팀과 선수들을 열렬히 응원해준다”고 덤덤하게 답했다. 4년 4개월 동안 축구대표팀을 이끈 벤투 감독이 느끼기에 축구는 한국에서 최고 인기 스포츠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전 세계 미디어 앞에서 이와 같은 벤투 감독의 답변이 나오자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벤투 감독은 2018년 여름부터 올해 가을까지 꾸준하게 K리그 현장을 누비며 대표팀 선수들의 몸상태를 두 눈으로 직접 체크했다. 벤투 감독이 방문한 K리그 경기장은 주로 K리그1 경기, 빅클럽 경기, 수도권 경기였다. 그럼에도 썰렁한 때가 많았다. K리그 경기장은 대표팀의 A매치 분위기와 현저히 달랐다.
축구팬들에게 축구는 ‘매주 열리는 이벤트’다. 하지만 월드컵만 보는 이들에게 축구는 ‘4년에 한 번 찾아오는 이벤트’다. 벤투 감독은 한국 축구판에 후자가 압도적으로 많다고 공언했다. 누구를 탓하기도 어려운 한국 축구의 현 주소다.
“팀보다 선수 개인을 응원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벤투 감독의 다음 답변에도 뼈가 있었다. 벤투 감독은 “대표팀 전체보다 선수 개개인을 응원하는 문화도 있다. 저는 대표팀 감독으로서 전체 집단을 이끌어야 하는 사람이다. 개인적인 면은 제치고 팀 전체를 고려하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위 사례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지난 9월 국내에서 2차례 친선 A매치를 치를 때 벤투 감독이 이강인(21, 마요르카)을 출전시키지 않자 관중들은 “이강인! 이강인!”을 크게 외쳤다. 중계 카메라는 이와 같은 함성을 유도하듯 벤치에서 몸을 풀던 이강인을 원샷으로 잡았다. 함성은 더 커졌다.
9월 A매치를 마치고 나온 주장 손흥민은 “(이)강인이만 경기에 못 뛴 게 아니다. 강인이게 너무 많은 포커스가 쏠리면 강인이에게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저도 경험해봤다. 우리가 강인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지 않나 생각해봐야 한다”고 돌아봤다.
이어서 “K리그에서 잘하는 선수들도 A매치를 뛰고 싶어서 대표팀에 왔을 텐데, 이번에 경기를 못 뛰어서 실망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선수 한 명의 출전 여부에만 관심을 보이는 팬들의 태도를 꼬집은 셈이다. 대표팀 주장으로서 충분히 할 수 있는 말이었다. 10여 년 전 비슷한 일을 직접 겪었던 선수로서 용기 있게 꺼낸 일침이었다.
벤투 감독은 긴 여운을 남긴 채 한국 커리어를 마무리했다. 지난 4년여 세월 동안 대표팀 취재 현장에서 “벤투 감독님 인터뷰는 재미가 없다”는 말을 동료들과 자주하곤 했다. 반성한다. 벤투 감독은 떠나기 전 뼈가 있는 쓴소리를 건네고 비행기에 올랐다.
▲축구가 최고 인기 스포츠가 아니라는 점 ▲팀이 아닌 선수 개인에게 관심이 쏠린다는 점. 다음 감독으로 어떤 지도자가 오든 이런 점을 덜 느꼈으면 한다.
[사진 = 마이데일리 DB]
이현호 기자 hhhh@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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