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박진만, 호수비에서 2004년 KS를 떠올리다

[마이데일리 = 고동현 기자] 4월 11일. SK 유격수 박진만은 2군행 통보를 받았다. 개막 후 2주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이유는 역시 수비 불안 때문이었다. 그는 4월 10일 문학 삼성전에 7회부터 교체 출장해 9회들어 자신에게 온 두 차례 타구에 연속으로 실책을 기록했다. 박진만의 실책으로 인해 5-1이던 경기는 5-4가 됐고 SK는 역전패 위기까지 몰린 바 있다.

이후 4월 27일 다시 1군에 복귀한 그는 최근들어 공수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 '국민 유격수'라는 명칭을 얻게했던 명품 수비도 적지 않게 나오고 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 런닝이 가져온 선순환

SK 김성근 감독은 박진만에게 2군행을 통보하며 그를 혼자 보내지 않았다. 1군 수비코치인 후쿠하라 미네오 코치를 동행시켰다. 김 감독의 박진만 2군행 결단이 '포기'가 아닌 '부활'을 위한 조치였음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후쿠하라 코치는 '2군 선수' 박진만에게 런닝부터 시켰다. 박진만은 "2군으로 간 첫 날 다른 것은 하나도 안하고 런닝만 했다"고 밝혔다. 타구에 대한 순발력을 기름과 동시에 하체 밸런스를 잡기 위한 선택이었다. 시즌 초반 박진만은 눈에 띄게 좁아진 수비 범위를 보여줬고 후쿠하라 코치는 그 원인이 부실해진 하체라고 판단한 것이다.

1군으로 복귀한 뒤 그는 서서히 예전 기량을 되찾았다. 특히 최근에는 물오른 기량을 선보이고 있다. 공식적으로 기록된 실책이 없을 뿐더러 시즌 초반이었으면 외야로 빠져나갈 타구도 잡아내고 있다.

박진만의 활약은 수비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5월 28일 대구 삼성전에서 마수걸이 홈런을 신고한 이후 5월 31일 문학 두산전에서도 홈런포를 터뜨렸다. 최근 5경기에서 타율 .300(20타수 6안타) 2홈런 4타점 2득점을 기록하고 있다. 하위타순으로서는 그야말로 만점 타격이다.

이에 대해 박진만은 "수비에서 조금씩 자신감이 늘어나니까 방망이도 감이 살아나는 것 같다"고 활약 요인을 분석했다. 이어 "자신감을 얻으면서 타석에서 여유도 생겼다"고 덧붙였다. 런닝을 통한 하체 강화가 수비 향상으로, 수비에 대한 자신감이 타격까지 살아나게 했다. 그야말로 선순환이다.

▲ "2004년 한국시리즈가 생각났다"

'부활한' 박진만의 진가가 제대로 드러난 순간은 5월 29일 대구 삼성전이었다. 팀이 1-0으로 앞선 3회말 2사 3루 상황. 삼성 2번 타자 이영욱이 때린 타구가 그라운드를 갈랐다. 모두가 동점 중전 적시타라고 생각한 순간, 박진만이 나타나 한바퀴를 돌며 1루에 송구했다. 발빠른 좌타자 이영욱이었지만 간발의 차이로 아웃. 넓은 수비 범위부터 송구까지 예전 박진만을 보는 듯 했다.

단순하게 보면 1점을 막아낸 수비였지만 넓게 본다면 최근 분위기가 가라앉은 SK에게 귀중한 1승을 안긴 수비였다. 이날 7이닝 무실점 호투로 승리투수가 된 게리 글로버조차 경기 후 인터뷰에서 "박진만의 호수비가 큰 도움이 됐다. 박진만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고 말할 정도였다.

31일 경기를 앞두고 인천 문학구장에서 만난 박진만은 29일 호수비에 대해 "2004년 한국시리즈가 생각났다"고 말문을 열었다. 현대 소속으로 삼성과 한국시리즈를 치렀던 당시에도 29일 경기와 비슷한 수비를 펼쳤다는 것. 공교롭게도 그 때도 상대 투수가 배영수였다는 것이다.

박진만은 "2004년 한국시리즈에도 그런 수비를 했는데 그 때도 상대투수가 (배)영수였다. 당시 생각이 났다"며 "다음에 영수를 만나면 밥 한 번 사야겠다"라고 웃었다.

'국민 유격수' 시절이던 2004년에도 자신이 기억할 만큼 인상적이었던 수비를 2011년 다시 선보였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그의 부활을 짐작할 수 있다. '고향만두'가 아직 상하지 않았음을 증명하고 있는 요즘이다.

[사진=SK 박진만]

고동현 기자 kodori@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