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영화 등급…아슬아슬 분류와 검열 사이 [김미리의 솔.까.말]

[마이데일리 = 김미리 기자] 예술과 외설은 종이 한 장 차이다. 폭력성과 비폭력성도 그렇다. 영화가 자극적인지 그렇지 않은지 역시 종이 한 장 만큼 얇은 차이에 의해 시각이 달라진다. 이는 모두 판단의 주체가 사람이기 때문에 불거지는 일이다.

최근 '종이 한 장의 차이' 때문에 영화계가 다시 고민에 빠졌다. 김기덕 감독의 '뫼비우스'가 제한상영가 등급 판정 후 개봉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자진 삭제를 결정했고, 신수원 감독의 '명왕성'이 청소년관람불가 등급 판정에 이의를 제기한 끝에 15세 이상 관람가로 재분류 됐다.

당초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는 '뫼비우스'에 대해 "영상의 내용 및 표현기법과 주제와 폭력성, 공포, 모방위험 부분에 있어 청소년에게 유해한 내용을 포함하고 있으며, 직계간 성관계를 묘사하는 등 비윤리적, 반사회적인 표현이 있어 제한상영관에서만 상영이 가능한 영화"라고 판단했다.

이와 함께 '명왕성'에 대해 "주제, 내용, 대사, 영상 표현이 사회 통념상 용인되는 수준이지만 일부장면에서 폭력적인 장면이 구체적으로 묘사되고, 모방위험의 우려가 있는 장면 묘사를 직접적으로 표현하고 있어, 청소년들에게 관람이 허용되지 않는 영화"라고 밝혔다.

하지만 영화계의 입장은 달랐다. 한국영화감독 조합과 한국영화제작가협회 등은 영등위의 결정에 반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특히 한국영화감독 조합은 "더 이상 우리는 현행 영상물등급위원회의 전근대적이고 저열한 태도와 수준에 한국영화를 맡겨둘 수 없다"며 "우리 사회의 도덕적 기준은 영등위가 세우는 게 아니다. 그것은 우리 시민들이, 관객들이 세워나갈 것"이라는 의지를 표명했다.

또 한국영화제작가협회는 "이미 등급분류에 대한 공정한 기능을 상실한 영등위를 대신하고 창작자를 존중하고, 관객들을 배려할 수 있는 민간자율심의제를 하루 속히 도입할 것을 주장한다"며 그동안 영화계가 끊임없이 주장해 온 '새로운 논의의 틀'을 만들 것을 요구했다.

이런 주장은 뚜렷한 성과로 이어지지 않았다. 신수원 감독의 경우 이례적 재분류 판정으로 한 숨 돌리는 듯 했지만 김기덕 감독은 "앞으로 문제가 될 장면을 불가피하게 연출해야 하는 영화의 경우에는 외국 프러덕션에서 외국 배우들과 작업하는 것이 맞지 않나 생각한다"는 뼈 있는 말을 남긴 채 자신의 작품에 가위를 들이댔다.

물론 이들이 영등위의 모든 결정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김기덕 감독 스스로 "국가가 있고 국민 된 입장에서 법이 정한 개봉 절차를 위해 영상을 제출했다면 판정에 따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힌 것처럼 많은 영화인들이 영등위의 결정에 따른다. 웬만해서는 섣불리 집단의 목소리를 내는 일도 없다. 자의든 타의든 어떠한 기준이 있어야 하고, 이 기준에 따라 등급이 조정돼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들 모두 통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인들이 이처럼 목소리를 높이는 것은 '등급 판정 기준에 동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넘어 현 세태가 계속될 경우 등급 분류가 아닌 검열이 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 때문이다.

지난 1996년 사전검열제도가 위헌 판정을 받았지만 창작자들은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경우 영화 개봉을 위해 혹은 자신이 원하는 등급을 받기 위해 원치 않게 스스로 자체 검열에 들어갈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이들이 우려하는 대로 무분별한 잣대로 인해 또 다른 형태의 사전검열제도가 부활된다면 외부의 압력에 의해 스스로 표현의 자유를 억압, 발전이 아닌 쇠퇴의 길을 걸을 수 있다.

'명왕성'의 신수원 감독은 최근 마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았을 당시를 떠올리며 "(실제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폭력을 예상케 하는) 상상이 더 무서웠나보다. 거기서 공포를 느꼈나보다. 그런데 기준이 모호했다. 인정하기 힘든 게 '기준이 뭐지'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앞으로 영화를 만들 때) 당연히 신경이 쓰인다. 일종의 검열 같은 느낌이다. 그래도 어쨌든 재분류를 신청해 다시 받아들여져 다행"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고민은 단지 신수원 감독 개인의 것이 아니다. 등급 분류나 검열이냐,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대부분의 영화 창작자들이 안고 있는 고민이다.

[영화 '뫼비우스'(왼쪽)와 '명왕성' 포스터. 사진 = 화인컷, 싸이더스FNH, SH필름 제공]

김미리 기자 km8@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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