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나가는 '기황후'가 우려되는 이유 [MD포커스]

[마이데일리 = 이승길 기자] 12일 6회가 방송된 가운데, MBC 월화드라마 '기황후'는 시청률 16.3%(닐슨 코리아 집계 전국기준)이라는 자체 최고 시청률을 경신하는 등 동시간대 선두 자리를 굳건히 하고 있다.

주인공 기승냥을 연기하는 배우 하지원의 능청스러운 남장여자 연기부터, 힘없는 나라의 국왕이 견뎌야 하는 설움을 표현하고 있는 배우 주진모, 철부지에서 황제로 변해가는 배우 지창욱까지 주연들의 호연과 KBS 1TV 드라마 '대조영', SBS 드라마 '자이언트', '샐러리맨 초한지' 등을 통해 역량을 인정받은 장영철, 정경순 작가의 짜임새 있는 전개에 작품에는 벌써부터 캐릭터별로 마니아층까지 생기는 모양새다.

하지만 기황후가 인기를 얻고 화제가 될 수록 시청자의 반응은 작품 자체에 대한 호평과 방영 전부터 꼬리표처럼 따라붙었던 왜곡에 대한 우려, 두 가지 극단적인 형태로 나눠지고 있다.

극의 주인공 기승냥(하지원)은 매력적인 여성이다. 어릴 적 공녀로 원나라에 끌려가다 탈출하는 과정에서 어머니를 잃고, 이후 공녀로 차출되지 않기 위해 남장을 한 채로 살아왔지만 끌려간 고려 여인들을 구출하기 위해 악소배 무리를 꾸릴 만큼 당찬 인물로 자라났다.

원나라의 힘을 빌린 권력으로 전횡을 일삼는 심양왕 왕고(이재용)를 따르는 모습을 보이며 잠시 의심을 사기도 했지만, 승냥은 결국 고려를 향한 마음이 흔들린 적 없음을 증명했다. 또 승냥은 나약할 뿐인 원나라 황태제 타환(지창욱)과 함께 하는 과정에서도 그에게 살아남는 법을 일깨워 줄 만큼 강인함도 갖췄다.

방송 전 일부 시청자와 역사학자들은 역사 속에 악녀로 기록된 기황후가 이처럼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져 드라마를 통해 역사를 접하는 시청자들이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되는 상황을 우려했다. 지적에 대처하기 위해 제작진이 선택한 방법은 매 회 서두 '이 드라마는 고려 말, 공녀로 끌려가 원나라 황후가 된 기황후의 이야기를 모티프로 했으며, 일부 가상의 인물과 허구의 사건을 다뤘다. 실제 역사와 다름을 밝힌다'는 내용을 공지하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기황후'의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하는 시청자들은 공지에도 불구하고, 기황후라는 인물이 등장하는 것은 변함없기에 문제점은 여전히 작품과 함께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물론, 시청자들은 모든 사극이 작가의 상상에 따라 재해석된 팩션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한다. 제아무리 고증이 철저하다 평가 받는 사극도 일정 부분은 작가의 상상이 개입돼 있다. 하지만 문제는 실존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이상 재해석의 바탕에는 인물의 실제 행적과 그에 대한 평가가 함께 해야 한다는 점이다.

극 초반 너무나 매력적인 기승냥 캐릭터에서, 역사교과서를 통해 배운 권력을 바탕으로 고려를 수탈하고, 모국을 침략한 기황후의 흔적을 발견하기는 어렵다. 작가의 상상을 바탕으로 재창조된 사실이 시청자가 알고 있는 역사적 지식과 부딪힐 때, 해당 작품은 왜곡 논란에 휩싸이게 된다. 시청자들이 방영 전부터 '기황후'를 우려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배우 하지원, 주진모, 지창욱(위부터). 사진 = MBC 방송화면 캡처]

이승길 기자 winning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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