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스틴', 소녀들의 경쟁이 잔인한 이유 [이승록의 나침반]

[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케이블채널 엠넷 '식스틴'은 잔인하다.

'식스틴'을 보면서 난감할 때가 있다. 한 연습생이 탈락하는 장면을 볼 때 '과연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하는 걸까' 하는 난처함이다. 안도감 혹은 통쾌함? 모두 어딘가 잘못돼 보인다. 그 연습생은 이제 막 자신의 꿈을 빼앗겨 버린 직후다. 꿈이 좌절된 인간의 뚝뚝 떨구는 눈물을 안방에서 편안히 TV로 시청하고 있으려니 괜스레 죄책감만 든다.

'식스틴'은 걸그룹 데뷔를 위해 경쟁하는 연습생들의 서바이벌 프로그램이다. '가수가 되고 싶다'란 일념. 그 꿈이 곧 상금이자 서바이벌에 뛰어든 이유인 셈이다.

10대 소녀들은 꿈의 성취를 기원하며 편을 나눠 싸운다. 룰은 간단하다. 친구를 꺾어야 내 꿈을 이룬다. 친구의 탈락이 곧 나의 생존이다.

소녀들이 일찌감치 내몰린 건 경쟁 사회의 잔인함이다. 어른들이 속한 세상의 룰이다. 소녀들은 어른들이 만든 기준에 맞춰 메이저와 마이너로 계급이 갈라진다. 메이저가 마이너보다 더 나은 대우를 받는 건 계급 사회 속 냉혹한 차별을 베꼈다. '너희들은 아직 모르겠지만, 어른들의 세상에는 여전히 계급이 존재한단다'란 인식의 강요랄까. 아니면 한없이 너그러운 어른들이 세상 물정 모르는 소녀들을 위해 마련한 생생한 현실 사회 체험 학습인 걸까.

'메이저가 되고 싶으면 네 손으로 친구를 끌어내려.' 메이저와 마이너 멤버는 서로의 계급이 뒤바뀌는 순간, 친구의 목걸이를 직접 자신의 손으로 떼어내야만 한다. 잔인하다. 목걸이를 빼앗긴 소녀나 빼앗은 소녀나,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나 참기 어려운 순간이다.

'식스틴' 최종 멤버 발표가 임박했다. 그토록 바라던 걸그룹 멤버로 뽑힌 후에도 과연 살아남은 소녀들이 환호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식스틴'이 끝나는 순간, 꿈을 이룬 자와 꿈이 좌절된 자로 소녀들은 뚜렷하게 갈라진다.

그들 중 누군가 '친구를 떨어뜨리고 얻은 데뷔가 진정한 꿈의 실현이냐'고 묻는다면 어른들은 어떤 대답을 내놓아야 하는 걸까. 어른들은 그저 소녀들의 꿈으로 방송을 만들고, 그저 안방에서 TV로 소녀들이 꿈을 두고 다투는 모습을 지켜보기나 하는 무책임한 존재들 같다. 미안할 뿐이다.

[사진 = 엠넷 방송 화면 캡처]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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