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리솜 이야기', 스무살 극단 차이무가 계속 존재해야 하는 이유 [MD리뷰]

[마이데일리 = 허설희 기자] 극단 차이무가 올해로 창단 20주년을 맞았다. 1995년부터 시작해 탄탄한 배우들을 배출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이야기로 관객들을 만나며 작품성과 대중성을 동시에 잡아온 차이무가 올해로 딱 스무살이 됐다.

20주년을 기념해 차이무는 이상우 연출의 신작 '꼬리솜 이야기'를 시작으로 민복기 연출의 신작 '원파인데이', 이후에는 '양덕원 이야기'를 선보일 예정이다. 지난 20년간 오로지 무대에 대한 열정으로 차이무를 이끌어온 단원들이 새로운 마음으로 극단을 사랑해준 관객들과 마주하게 됐다.

20주년 기념 공연의 시작은 극단 차이무의 초대 대표 단원이자 현재 예술감독을 맡고 있는 이상우 연출이 알렸다. 연극 '꼬리솜 이야기'로 슬프고 기괴한 코미디를 그린다. '꼬리솜 이야기'는 우리 나라 연극계에 차이무가 계속 존재해야 하는 이유를 증명한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차이무만의 힘을 보여준다.

'꼬리솜 이야기'는 가상의 나라인 꼬리솜(Korisom)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가상역사드라마. 꼬리솜이 단 엿새만에 사라지게 되는 이야기를 세 개의 트랙으로 엮어 그려낸다.

꼬리솜에 사는 마금곱지 할머니의 독백, 꼬리솜을 통치하던 중심세력인 비서부장, 국무부장, 군사부장 트리오의 상황극, 마금보로미박사의 꼬리솜을 멸망케한 기생충에 관한 이야기가 교차로 펼쳐지는 가운데 미묘하게 세 이야기가 이어진다.

꼬리솜에 대한 이야기는 허구이지만 소름돋게도 우리 나라와 닮아 있다. 상상의 나라라는 트릭 속에서 믿기 힘든 이야기를 들려주고, 우스꽝스러운 정치인들의 모습이 그려지고, 이 모든 것이 기생충 때문이라는 황당한 연구 결과가 전해지지만 사실은 그 모든 것이 우리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이기 때문에 더 소름돋는다. 한국의 근현대사가 '꼬리솜 이야기'에 완벽하게 녹아있기 때문이다.

'꼬리솜 이야기'는 이 소름돋는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그리면서도 교묘하게 피해간다. 꼬리솜이라는 가상의 나라를 앞세워 실제에서 동 떨어진듯 관객을 마주한다. 그러나 극이 흘러갈수록 관객들은 깨닫는다. 저 무대 위 말도 안되는 일들이 결국 우리들의 현재라는 것을.

마금곱지 할머니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실제 미국위안부의 김정자 선생의 증언을 바탕으로 재구성됐다. 일본 위안부 문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미군 위안부의 생생하고도 참혹한 이야기를 들여다 볼 수 있다. 당시 비인간적이었던 세상을 고통 속에 살아온 마금곱지 할머니의 이야기는 결국 시대가 흐른 뒤에도 나몰라라 하는 현재 우리 나라의 비겁한 모습을 꼬집는다.

꼬리솜을 통치하던 중심세력인 비서부장, 국무부장, 군사부장 트리오의 상황극 역시 코미디 속에 날선 시선이 있다. 우스꽝스러운 겉모습과 말투, 어리바리해 보이는 모습 등이 웃음을 주지만 그 안에 무서울 정도로 강한 이기심과 비윤리적인 모습이 서서히 그려져 관객들을 압박한다. 블랙코미디의 정석이라 할 수 있다.

마금보로미의 연구 결과 발표는 이 모든 것들을 정리하는 역할을 한다. 꼬리솜이 멸망하게된 이유가 알고보니 사람들 머리 안에 파고든 기생충 때문이라는 것이다. 기발한 발상으로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는 마금보로미의 연구 결과는 이내 꼬리솜과 다르지 않은 나라에서 살고 있는 자신을 깨닫게 한다.

그 어느 때보다도 살기 팍팍해진 대한민국. 서로에 대한 공감 능력은 떨어지고, 이기심은 높아져만 간다. '갑질'이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 경제력에 따른 계급 차이가 심해지고, 점점 사람들은 우스꽝스러워진다. 삶의 질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자신들의 민낯은 마주하지 않고, 비인간적인 모습 그대로 멸망해 가는 것이 사실. 현대사의 비극이 따로 없다.

결국 꼬리솜 이야기는 지금 우리의 민낯을 빙 돌려 표현한다. 대한민국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사람들이 자신과 마주할 수 있게 만든다. 블랙 코미디 속에서 관객들은 머리를 한대 맞은듯 충격적인 현재를 마주하게 된다. 편안히 작품을 마주하던 관객들은 이내 우리가 고민해야 할 현 문제점이 무엇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계기를 얻게 된다.

여기서 연극이 갖는 힘을 느낄 수 있다. 그저 한 순간의 감정을 위해 관객들을 웃기고 울리는 연극도 좋지만 관객들에게 좀 더 진지한 생각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줄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연극이 가져야 할 책임감임을 '꼬리솜 이야기'를 통해 알 수 있다.

결국 사람들의 이야기다. 우리가 살아왔고,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이야기를 하며 결과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함께 해야 한다. 문제점을 인식해야 하고, 깨닫는 삶이어야 한다. '꼬리솜 이야기'는 그 장을 마련해준다. 차이무는 책임감 있게 연극이 가져야할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한다.

기발한 상상 역시 연극이기에 가능하다. 배우들의 자연스러운 연기는 관객들을 더욱 비현실적인 것만 같은 연극 세상에 집중할 수 있게 하고, 차이무식 표현은 그 안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들을 알아챌 수 있게 해준다.

연극 '꼬리솜 이야기'는 왜 차이무가 20년간 최고의 극단으로 인정 받았는지, 어떻게 걸출한 배우들을 배출할 수 있었는지를 증명한다. 차이무는 멈추거나 고여 있지 않는다. 매번 변화하고, 또 다른 시도를 한다. 그럼에도 연극이 가져야할 책임감은 항상 지탱한다. 스무살이 된 차이무가 계속 존재해야 하는 이유다.

한편 연극 '꼬리솜 이야기'에서는 전혜진과 김소진이 마금곱지, 노수산나와 안은진이 마금보로미, 민복기와 이성민이 비서부장, 정석용과 송재룡이 국무부장, 오용과 이중옥이 군사부장 및 경찰부장 역을 맡았다.

연극 '꼬리솜 이야기'. 공연시간 140분. 29일까지 서울 종로구 대학로 예술마당 2관. 문의 극단 차이무 02-747-1010

['꼬리솜 이야기' 공연 이미지. 사진 = 극단 차이무 제공]

허설희 기자 husullll@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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