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록의 나침반] 젝스키스, 첫사랑이 16년만에 돌아왔다

[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첫사랑을 만난 느낌인데, 예전 모습만 기억하실까 봐 걱정되네요."

젝스키스 은지원이 가장 먼저 안대를 벗는 순간, 소름이 확 돋았다. 팬들을 "첫사랑"이라고 한 그는 서울 상암 월드컵경기장에 모인 5천808명의 '첫사랑'과 비로소 마주했다. 16년 만이다.

하지만 팬들은 '오빠들'을 보고 환호성은커녕 입을 손으로 막은 채 노란색 풍선만 조용히, 그러나 세차게 흔들어야 했다. 미처 터지지 못한 그 5천808명의 아슬아슬한 감정이 온몸을 덮쳤다.

MBC '무한도전' 제작진의 요청에 따라 관객들은 모든 멤버들이 안대를 다 벗을 때까지 숨죽였다. 16년 만에 모인 젝스키스는 대여섯 시간 홍보만으로 대체 얼마나 관객들이 모였을지 알 길이 없어 긴장했다. 장난기 가득한 김재덕도 "많이 안 오셨을까 봐 두렵다"며 안대를 쓴 채 초조해했다.

두려움과 달리 팬들은 한달음이었다. 노란 우비를 뒤집어쓴 관객들 중에는 아이를 데리고 온 팬, 임신 중인 팬도 있었고 멀리 지방에서 온 팬도 있었다.

팬들은 드디어 모든 멤버들이 안대를 벗자 그제야 "오빠!" 하며 "돌아와줘서 고마워!" 하고 소리쳤다. 팬들에게도 젝스키스는 '첫사랑'이었다.

16년 만에 나타난 '오빠들'은 나이 들어 있었다. '폼생폼사'를 추는 발놀림은 예전보다는 느렸고, 무대 옆 스크린에서 90년대 전성기 시절 영상이 흘러나오는 탓에 얼굴에서 이제 애티가 사라졌음을 실감했다. 그만큼 16년은 긴 세월이었다.

다만 노래만큼은 변함 없었다. '커플'과 '예감'의 두근거리는 멜로디가 노란 풍선과 마음을 함께 흔들었으며, "나 이제 칼을 뽑았어" 하는 '기사도'의 비장한 목소리는 객석 위까지 단숨에 타고 올라왔다. 젝스키스와 팬들이 함께 부른 덕분이었다. 서로를 "첫사랑"이라고 하는 그들의 애틋함도 16년이 흘렀지만 변함 없었던 것이다.

K팝 아이돌그룹은 으레 나이가 들면 해체하거나 배우로 전향해버리고 무대를 떠난다. 댄스 장르가 체력적으로 소화하기 벅찬 것일 수도 있고, 계약 기간이 끝나 각자 제 갈 길 가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젝스키스의 컴백을 보며 K팝 아이돌그룹도 해체하지 않고 나이 든 뒤에 꾸준히 활동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이 좀 들어 안무가 더딜지언정 다함께 부르는 노래의 벅찬 감동은 불변하는 까닭이다. 게다가 16년이나 첫사랑을 만날 수 없다는 건 꽤 가혹한 일이다.

하나 마음에 걸리는 게 있다면, 요즘의 아이돌그룹 중에도 이들처럼 서로를 '첫사랑'이라고 할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싶다. 요즘은 팬들의 소중함을 잊고 인기에 도취돼 무대가 뒷전인 아이돌이 한둘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진 = 김성진 기자 ksjksj0829@mydaily.co.kr]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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