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록의 나침반] '캐리어', 한국의 '리갈하이'가 되지 못한 이유

[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MBC 드라마 '캐리어를 끄는 여자'(극본 권음미 연출 강대선 이재진)는 이야기를 끄느라 법과 로맨스를 하나로 엮지 못했다.

설정은 흥미로웠다. 여주인공 차금주(최지우)는 능력은 뛰어나지만 변호사 자격증 없는 사무장이었다. 남주인공 함복거(주진모)는 검사 출신에 지금은 잘나가는 언론사 대표이지만 결국은 연예인 사생활을 캐는 파파라치였다.

완벽하지 못한 두 사람이 손잡아 사건을 해결하고, 권력과 부패에 맞서 정의를 얻는 설정이 통쾌함을 줄만했다. 돈과 명예보다 약자의 편에 서길 선호하는 변호사 마석우(이준)는 차금주와 함복거의 약점을 보완하는 지원군이었다. 세 캐릭터의 관계가 하나의 팀으로 빈틈없었다.

하지만 법정물의 매력인 '사건'이 설정의 흥미를 못 따라갔다.

다채로운 사건이 배열되는 대신 유독 함복거의 사건이 길게 이어지며 내용이 복잡해졌다. 첫 회부터 꾸준히 지켜본 시청자가 아니면 사건을 쉽사리 이해하기 힘들었다. 중간에 새로운 시청자들이 유입하는 데 스스로 벽이 되고 말았다.

법정물은 일본과 미국에서도 인기 있는 장르다. 주로 매회 다른 에피소드를 내놓는 구도를 사용하는 게 큰 흐름이다. 그 중 일본드라마 '리갈하이'는 개성 강한 캐릭터에 여러 사건을 엮어 성공한 대표적인 작품이다.

천재적이나 도덕성이 결여된 변호사와 정의감 강한 신입 변호사가 사건을 해결해 나가는 내용인데, 매회 다른 사건들을 어렵지 않게 그려 빠른 호흡과 흥미를 동시에 유지할 수 있었다.

특히 사건의 전개와 해결이 한 회에 다 마무리된 덕분에 주인공의 천재적 능력을 매번 부각시킬 수 있었고, 시청자들을 주인공에 몰입하게 하는 효과도 톡톡히 누렸다.

반면 '캐리어를 끄는 여자'는 커다란 중심 사건에만 지나치게 의존했다. 차금주의 능력이라든가 함복거, 마석우와의 팀으로서의 매력이 충분히 발휘될 기회가 적었다. 오히려 드문드문 등장한 차금주와 두 남자의 삼각 로맨스 장면이 낯설고 인위적으로 느껴진 것도 당연했다.

주연 배우 최지우는 특유의 조곤조곤한 말투 속에 차분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연기를 펼쳤다. 주진모 역시 카리스마와 여유가 넘치는 표정에 가끔은 능청스럽게 구는 특기를 이번에도 잘 살렸다.

다만 두 배우 모두 결국은 지난 작품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캐릭터를 답습했다는 점에서 이제는 변화의 폭을 넓힐 필요성도 느껴진다.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DB-스튜디오드래곤 제공]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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