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선의 경기, 명확한 기준은? KBL 결정 타당한가[김진성의 야농벗기기]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저희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나요."

오리온 추일승 감독은 전화통화 내내 한숨만 내쉬었다. 그는 최근 의도치 않게 농구계의 중심에 섰다. 추 감독은 기자에게 "저희가 최선을 다하지 않았나요"라고 되물었다. 기자는 22일 고양체육관에서 오리온-KCC전을 취재했다.

오리온은 KCC전에 부상자들과 컨디션이 좋지 않은 주축 선수들을 내보내지 않았다. 19일 SK전서 발목을 다친 이승현, 어깨 부상으로 장기 결장 중인 김동욱은 물론, 문태종, 김진유, 전정규가 출전선수 명단에서 빠졌다. 출전명단에 포함된 애런 헤인즈도 결장했다. 오데리언 바셋도 4쿼터에는 뛰지 않았다.

주축 멤버들 중에선 최진수, 장재석, 허일영, 정재홍 등이 주로 뛰었다. 대신 올 시즌을 끝으로 FA 자격을 얻는 박석환, 성건주, 성재준, 조의태 등 그동안 주로 D리그에서 뛴 선수들이 집중적으로 출전시간을 얻었다.

KBL은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23일 보도자료를 통해 추일승 감독이 최상의 선수로 최선의 경기를 치르지 않았다고 해석했다. 경기감독관, 모니터링 요원, KBL 수뇌부가 그렇게 판단했다. 이성훈 사무총장은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보고서가 올라왔고, 긴급히 재정위원회를 열었다"라고 밝혔다.

KBL은 재정위원회 결과를 신속하게(23일 오후) 발표했다. 오리온 구단에는 경고가 주어졌다. 추 감독에겐 벌금 500만원을 부과했다. 또 하나. KBL은 재정위원회 개최와 함께 10개 구단에 공문을 보냈다. "순위가 확정돼도 최선을 다해달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구단들, 특히 단장들도 벤치의 경기운영을 주의 깊게 봐달라"는 내용도 포함됐다.

KBL의 이런 조치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한 농구관계자는 "KBL이 딜레마에 빠진 것 같다"라고 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현장 입장에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재정위원회 결과와 공문"이라고 일갈했다.

일단 보도자료를 살펴보자. KBL은 "오리온 추일승 감독은 정규경기 1, 2위를 다투는 경기서 핵심 주전선수를 부상 등의 이유로 출전을 시키지 않았고, 정규경기에 출전하지 않고 D리그서 활약하던 비주전급 선수 위주로 출전시켰으며, 4쿼터에 외국선수를 전혀 기용하지 않은 것은 최강의 선수로 최선의 경기를 해야 하는 규정(KBL 규약 제17조-최강선수의 기용 및 최선의 경기)에 명백히 위배되며, KBL 권익에 반하는 행위라고 판단, 추 감독에게 견책 및 제재금 500만원을 부과하고, 오리온 구단에는 경고를 부과했다"라고 밝혔다.

추 감독은 "우리 선수들은 최선을 다해서 뛰었다"라고 항변했다. 박석환, 성건주, 성재준, 조의태 등은 실력은 부족해도 최선을 다해서 뛰었다는 게 추 감독과 오리온 입장이다. 그러나 KBL은 이들의 땀을 불성실 경기로 단정했다.

오리온 내부사정이 있다. 19일 SK전 승리로 정규시즌 2위를 확보, 4강 플레이오프 직행을 확정했다. 당시 정규시즌 우승 가능성이 있었으나 희박했다. 더구나 KBL 규정상 정규시즌 우승과 준우승 팀에 주어지는 메리트는 4강 플레이오프 직행으로 똑같다. KBL이 만든 규정이다.

팬들 반응은 나뉘었다. 오리온이 처한 상황을 감안하면 추 감독의 선택을 이해한다는 의견, 간판스타들을 보고 싶어하는 팬들을 기만한 것이라는 의견이 대립했다. 후자는 추 감독을 강력하게 비난했다. 전자는 추 감독 비난 세력을 비난했다. 둘 다 일리가 있다.

KBL의 대처는 일정 부분 이해가 된다. 이성훈 사무총장은 "2년 전 승부조작 사태가 재발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다"라고 했다. KBL은 2015-2016시즌에 홍역을 치렀다. 전직 감독과 일부 선수들의 승부조작 및 불법 스포츠도박 스캔들이 터졌다. 프로농구 존립기반이 송두리째 흔들렸다. 김영기 총재는 당시 사건을 수습하고 사과하면서 '불성실 조항'에 대한 강력한 페널티 부과 의지를 드러냈다. 불법토토 사건 이후 KBL의 경기모니터링은 강화됐다.

당시에도 지도자들 사이에서 반발하는 분위기가 역력했다. 하지만, 승부조작-불법토토 스캔들 후폭풍이 워낙 컸다. 현장과 구단들도 KBL의 조치를 받아들였다. 어떻게든 승부조작과 불법토토 싹을 뿌리뽑기 위해 느슨한 경기운영이 사라져야 하는 것에 동의했다.

그러나 반대의 시각도 만만찮다. KBL은 남자프로농구를 주관하는 단체다. 중립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리그의 원활한 운영과 발전에 기여하면 된다. 하지만, 이번 오리온 구단과 추 감독을 향한 페널티는 그들의 경기운영에 개입한 사례다.

KBL이 사령탑의 경기운영에 개입하는 건 위험하다. '최강선수의 기용 및 최선의 경기'가 도대체 무슨 기준일까. 주전 1~2명이 부상으로 빠지고 그동안 뛰지 못했던 선수를 기용하면 최선을 다한 것이고, 주전 4~5명이 빠지고 그동안 뛰지 못했던 선수들이 나서면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경기운영인가. 뭐라고 결론내기 어려운 문제다. KBL도 주관적인 잣대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렇게 KBL이 사령탑의 경기운영에 개입하기 시작하면 감독들의 농구 스타일이 획일화된다. 구단들간의 갈등이 격화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자칫 KBL이 훗날 딜레마에 빠질 수 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오리온이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팬들은 추 감독과 오리온을 욕하면 된다. 반대로 오리온이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는 팬들은 그렇게 생각하고 넘어가면 된다. 생각이 다를 수 있다.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데 KBL이 왜 단정했는지 모르겠다"라고 안타까워했다.

최선이라는 말은 추상적이다. 정형화된 기준이 없다. KBL은 팬들 의견의 차이를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물론 KBL은 명확히 잘못된 부분을 바로잡을 의무가 있다. 예를 들어 승부조작 정황을 포착하면 자체적으로 조사를 하고, 사건을 경찰 및 검찰로 넘기면 된다. 거기까지만 하면 된다.

하지만, 이번 추 감독 사건은 상황이 다르다. 왜 "팀 사정상 최선을 다했다"라는 현장의 항변을 자의적으로 해석했을까. KBL 재정위원회의 추 감독과 오리온 구단 징계 결정이 심정적으로 일정 부분 이해는 된다. 그러나 지나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공문을 통해 구단들이 감독의 경기운영을 체크하라는 것도 현장의 고유권한 침해로 이어질 위험성이 있다. 결코 가볍게 받아들일 수 없는 부분이다.

또 다른 관계자는 "차라리 어떤 팀이 주축선수를 대거 제외하면 정당한 이유를 미리 KBL에 밝히고 팬들과 언론에 공지하는 제도를 만드는 게 낫다. 그래야 서로 오해가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KBL 규약 17조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

[추일승 감독.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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