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의 부담감’ 류현진은 또다시 이겨내고 있다 [장은상의 클리닝타임]

[마이데일리 = 장은상 기자] ‘코리안 몬스터’ 류현진(30, LA 다저스)이 부활의 날갯짓을 폈다.

5일의 기다림이 유독 길게 느껴지던 한 해가 있었다. 그 해 야구팬들은 오전 11시만 되면 너나할 것 없이 스마트폰, PC, 혹은 텔레비전에 앉았다. 수백만, 아니 어쩌면 전 세계적으로는 그보다 훨씬 더 많은 팬들이 단 한 사람을 기다렸다.

류현진은 2012시즌을 마친 후 포스팅시스템을 거쳐 다저스 군단에 합류했다. KBO리그서 메이저리그로 직행한 최초의 선수. 다저스는 KBO리그 출신 26살의 좌완투수를 영입하기 위해 포스팅 비용 2573만 달러(당시 약 280억원)를 쏟아 부었다. 한국선수가 메이저리그 구단으로부터 받은 포스팅 비용 중 당연 최고 금액. 아직까지도 깨지지 않은 금액이다.

그야말로 ‘억’ 소리 나는 등장에 전 세계의 눈과 귀는 류현진에게 쏠렸다. 투자한 금액이 큰 만큼 현지의 기대와 관심도도 컸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은 현지 언론과 팬들에게 집중 관심 대상이 됐다. 개인 사생활부터 기초훈련 소화 여부까지 모든 것이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KBO리그서 7년을 보냈지만 류현진은 메이저리그서 분명 신인이었다. 낯선 리그, 낯선 환경은 그가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할 극복의 대상이었다. 한국에서 받던 ‘에이스’ 대접? 메이저리그 검증도 마치지 않은 선수에게 그런 것이 있을 리 만무했다.

류현진은 이 모든 것을 순차적으로 해결할 시간도 없었다. 팀 적응과 함께 좋은 모습을 코칭스태프에게 보여줘야 했고, 더 나아가서는 리그서 성적까지 내야 했다.

최근 메이저리그서 고군분투를 펼치고 있는 코리안리거들을 생각해보면 그 당시 우리가 가졌던 ‘그래도 KBO서 최고였는데 거기서도 잘 하겠지...’라는 생각이 얼마나 허무맹랑한 상상이었는지 가늠할 수 있다.

부담감. 2013시즌의 류현진은 분명 이 천근만근 같은 단어를 시즌 내내 짊어지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겨냈다. 그는 매 등판마다 호투를 펼치며 우리의 허무맹랑한 상상을 ‘역시’, ‘그럼 그렇지’ 등으로 바꿨다. 그러나 류현진은 이를 위해 너무나도 값비싼 기회비용을 지불하고 있었다.

‘뼈를 깎는 노력’이라는 말, 적나라하면서도 무서운 말이다. 2014년까지 2년간 쉼 없이 달린 류현진은 그야말로 뼈, 근육을 모두 깎아 혼신의 힘을 짜내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이는 문제를 일으켰다.

2015시즌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류현진은 비보를 전해 들었다. 모든 선수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단어. ‘부상’이었다. 어깨 관절와순 파열로 수술이 불가피했다. 시즌아웃은 물론, 1년 뒤 복귀도 장담할 수 없었다.

재활에 들어간 류현진은 마운드 복귀를 위해 국내외서 구슬땀을 흘렸다. 불투명한 미래를 예고하는 현지 언론의 기사가 쏟아졌지만 그는 묵묵히 1년을 기다렸다. 그리고 지난해 7월 드디어 마운드에 돌아왔다.

결과는 좋지 않았다. 당시 샌디에이고전서 4⅔이닝 8피안타 4탈삼진 2볼넷 6실점 투구로 패전투수가 됐고, 그는 곧바로 다시 부상자명단에 올랐다. 복귀에 대한 ‘부담감’은 메이저리그 첫 해 만큼이나 류현진을 또다시 짓눌렀다.

그러나 그는 서두르지 않았다. 비관적인 면도 보이지 않았다. 언제나 반드시 복귀할 수 있다는 말로 스스로 의지를 다졌다. 짧지 않은 반 시즌을 다시 재활에 힘쓴 그는 2017시즌을 위한 스프링캠프에 합류해 올 한해를 준비했다.

스프링캠프에 합류하기 전 류현진은 “2013년을 생각하려 한다. 그 시절로 돌아가 모든 것을 다시 시작하겠다”라고 말했다. 류현진은 ‘신인’ 류현진이 선발 자리를 꿰차기 위해 이를 악물었던 그 시절로 돌아갔다. 그리고 마침내 선발진에 합류했다.

류현진은 올 시즌 총 4경기에 선발 등판했다. 거둔 성적은 0승 4패. 등판마다 패전을 기록해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그러나 내용으로 봤을 때 그의 투구는 분명 점점 좋아지고 있다. 약점으로 지적받은 밋밋한 빠른볼은 최근 등판서 93마일(약 150km)까지 최고구속이 찍혔다. 특유의 장점인 체인지업은 그 각도가 점점 예리해지고 있다.

류현진은 또다시 부담감과 싸우며 자신의 장점을 하나씩 찾아가고 있다. 2013년 메이저리그 신인으로서 우리의 기대감을 충족시켜줬던 그 모습을 되찾으려 한다. 당시보다 더 좋지 않은 악조건 속에서 홀로 고군분투중이다.

그는 과연 우리에게 다시 한 번 상상의 나래를 펼쳐줄 수 있을까. 메이저리그 무대를 누비는 ‘코리안 몬스터’ 대활약을 조심스럽게 기대해 본다.

[류현진. 사진 = 마이데일리 DB]

장은상 기자 silverup@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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