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D인터뷰①] 이제훈 "'박열' 변신, 희열 느껴…몰랐던 나 발견"

[마이데일리 = 김나라 기자] 영화 '박열'이 처음 베일을 벗었을 당시, 배우 이제훈의 파격적인 비주얼에 온 스포트라이트가 쏠렸었다. 수염에 가발까지 부착하고 독립운동가 박열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해낸 이제훈이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놀라운 건 영화 속 그의 열연. 이제훈은 박열 그 자체였다. 일제에 정면으로 맞서며 불덩이 같이 뜨거운 청춘을 살았던 아나키스트 박열의 삶과 가치관을 고스란히 스크린에 펼쳐냈다.

'박열'에 임하는 마음가짐부터 남달랐기에 가능했다. 그 어느 때보다 신중하고, 진정성 있게 다가갔다.

"처음에는 실존 인물을 연기한다는 자체만으로 왜곡, 미화하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 컸어요. 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캐릭터의 성격을 부각해야 하는지, 오버 혹은 호소처럼 보이면 어떡하나 싶은 고민이 많았죠. 그런데 중요한 건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 것인가?' 더라고요. 그래서 제3자의 입장에서 박열을 관찰하려고 노력했어요. 절망에 빠진 조선인들에게 희망이 되고자 하는 메시지가 저를 통해 잘 보여지길 바라면서요."

'박열'은 시대극의 대가 이준익 감독이 역사적 고증을 바탕으로 만든 영화다. 일제강점기, 일본 제국주의 심장부인 도쿄에서 적극적으로 투쟁했던 박열의 파란만장한 일대기를 담았다. 1923년 관동대학살 사건이 벌어졌던 당시, 일제의 만행을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사형까지 무릅쓰고 나선 박열, 그의 동지이자 연인 가네코 후미코(최희서)의 믿기 힘든 실화를 그린다.

"저희 영화는 픽션이 아닌 고증에 입각한 작품이에요. 저도 이 작품을 통해 처음 알게 됐는데 박열의 기괴함 용맹함에 놀랐어요. 이 부분이 다른 독립운동가 영화와는 차별점이라고 봐요. 겉으로는 과격하고 이상주의자처럼 보일 수 있지만 일본의 만행을 밝혀내기 위해 폐결핵에 걸릴 정도로 단식투쟁을 벌인 분이에요. 항일운동을 하다가 무려 22년 2개월 동안 옥살이를 하셨죠. 굉장히 죄송스럽고 숙연해지는 마음이 들어요. 우리가 몰랐던 나라를 위해 희생하신 분이 많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어요."

이제훈 역시 촬영장에서 불덩이처럼 타오르는 연기 열정을 내뿜었다. 박열이 그랬던 것처럼 단식을 자처, 화제를 모은 바 있다. 실제 한 달 동안 탄수화물 섭취를 금하며 투쟁으로 야위어가는 박열을 표현했다. 고문 장면도 직접 소화하는 열의를 보였다. 일본어 대사는 주변 사람들이 말릴 정도로 달달 외우고 다녔다.

"반 이상이 일본어 대사였는데 준비할 시간이 많지 않았어요. 그래서 대본을 달고 살았죠. 스태프나 배우들이 그만 좀 하라고, 자기들이 다 외우겠다고 할 정도로 계속 반복했어요. 고문 장면을 실제로 소화한 건 회피하고 싶지 않은, 정확하게 보이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어요. 박열이 느꼈던 아픔과 고통을 속이는 건 아닌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그 고통이 조금이나마 카메라에 담길 수 있도록 상대 배우에게 화끈하게 때려달라고 부탁했어요."

덤덤하게 이야기했지만 당시 두통에 시달리고 헛구역질을 하는 등 고생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제훈은 '박열'을 통해 몰랐던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며 흡족한 미소를 띠었다.

"저라면 일본에 심문당할 때 굳세게 맞받아치고 저항했을 것 같은데 박열은 달랐어요. 오히려 그 얘기에 화답하듯 조롱하고 들었다 놨다 했죠. 연기하면서 어느 순간 제게서도 그런 모습을 발견했어요. 나한테도 이런 모습이 있었다니 흥미로웠어요. 희열을 느꼈죠."

"'박열'에 끌렸던 건 시간이 흘러도 다시금 꺼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우리가 생각지도 못한, 잊고 있던 살았던 것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꼈으면 하고 역사에 대한 깨우침을 가져갈 수 있을 거에요. '박열'과 비슷한 시기에 시대극이 다수 개봉하는데 다 같이 잘 돼서 아픈 역사의 울분을 씻고 자긍심을 갖게 되는 시간이 되길 바라요."

[사진 = 메가박스 (주)플러스엠]

김나라 기자 kimcountry@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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