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교체 첫걸음, 한국은 도쿄돔에서 미래를 봤다 [이후광의 챌린지]

[마이데일리 = 일본 도쿄 이후광 기자] 선동열호의 2020년 도쿄올림픽을 향한 첫걸음이 준우승으로 마무리됐다. 이번 2017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APBC)은 젊은 대표팀에게 무엇을 남겼을까.

▲'와일드카드 왜 안 써?'

APBC는 24세 혹은 프로 3년 차 이하만 참가할 수 있는 대회로, 와일드카드 3장을 통해 전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그러나 와일드카드 제도를 활용한 일본, 대만과 달리 선동열 야구대표팀 감독은 “한 명이라도 더 도쿄돔을 밟아봐야 한다”라며 위의 조건에 부합하는 선수들로만 엔트리를 꾸렸다. 포수나 3루수 등 전력 보강이 필요한 곳에 와일드카드가 필요하지 않냐는 의견이 끊임없이 제기됐지만 선 감독은 굳건했다.

실제로 뚜껑을 열어보니 대만과 일본은 취약한 포지션에 와일드카드를 사용, 상당한 전력 보강을 이뤄냈다. 한국전에 나온 대만 선발투수 천관위, 일본의 4번 타자 야마카와, 안정적인 리드를 자랑한 일본의 안방마님 카이는 모두 와일드카드였다. 동시에 한국의 어린 선수들이 경기 내내 고전했던 선수들이기도 했다.

그러나 선 감독의 뚝심은 미래를 발굴한다는 취지에선 ‘신의 한 수’로 작용한 듯하다. 세대교체가 가장 힘들다는 포수 포지션에서 한승택과 장승현이 소중한 경험을 쌓았고, 박진형, 김윤동, 장필준 등은 도쿄돔이라는 넓은 무대에서의 압박감을 경험하며 한 단계 성장했을 것이다.

국제대회는 경험하는 곳이 아니라는 말이 있지만 이번 대회는 친선전의 성격이 강했다. 자원 육성에 포커스가 맞춰져 있는 대회였다. 선 감독은 대회의 취지에 맞게 와일드카드를 쓰지 않았고, 25명이라는 미래들이 온전히 경험을 쌓는 데 성공했다.

▲'나는 국가대표다' 자부심과 의욕 하나는 최고였다

지난 18일 대만-일본전 취재 도중 3루 내야 관중석에서 낯익은 얼굴들을 발견했다. 당시 결승 진출을 확정 지은 한국 선수들이었다. 박민우, 이정후, 김하성, 장필준 등 어린 선수들은 결승전 상대를 직접 보기 위해 휴식을 반납하고 야구장을 찾았다. 이는 대표팀 공식 일정에 없던 스케줄이었다. 선 감독은 “TV로 볼 수도 있지만 그렇게 자기들끼리 모여 야구장에 간다고 해서 참으로 기특했다”라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그랬다. 이번 대표팀의 ‘하려는 의지’는 우승 트로피를 줘도 될 만큼 뜨거웠다. 대표팀 소집부터 결승전까지 선수들은 국가대표라는 자부심을 품고 하나라도 더 던지고, 더 치려 했다. 선 감독은 “대표팀을 자주 경험했지만 이렇게 의욕이 넘치고 분위기가 좋은 구성은 오랜만인 것 같다. 어린 선수들만 모였지만 성인대표팀 못지않은 성숙한 태도로 하루하루를 지내고 있다. 대견스럽다”라고 말했다.

대표팀의 의욕은 경기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박민우는 평범한 외야 뜬공 때 과감한 태그업으로 2루를 훔치며 활력을 불어넣었고, 박진형은 자신의 승계주자를 지워준 장필준에게 깊은 고마움을 표현했다. 승계주자가 들어온다고 연봉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지만 박진형은 “필준이 형이 너무 고마웠다”라고 말했다. 이에 장필준은 “진형이가 그렇게 말해줘 내가 더 고맙다. 한 팀이 돼 가고 있다”라고 훈훈한 장면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정현이 유지현 코치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특별훈련을 요청한 건 이미 유명한 사례.

이번 APBC는 병역 면제가 걸리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개인에게 돌아가는 상금이 높은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선수들은 가슴에 달린 태극마크에 자부심을 느끼며 매 순간 최선을 다했다. 최근 병역 면제 및 개인의 몸 상태가 우선으로 여겨졌던 대표팀 풍토와는 사뭇 달랐다. 다시 국가대표라는 그 자체가 조명받을 수 있었던 대회였기에 의미가 있었다.

▲'차세대 일본 킬러'의 등장

김광현, 류현진, 이대호, 정근우. 한때 대표팀에서 국민들을 웃고 울렸던 선수들이다. 이들은 지난 월드베이스볼클래식, 베이징올림픽 등에서 극적인 승부를 연출하며 국가대표 단골손님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그로부터 약 1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이들이 아직도 녹슬지 않은 실력을 뽐내곤 있으나 올림픽을 위해선 이들을 대신할 젊은 단골손님들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이번 APBC에선 몇몇 선수들이 그 가능성을 보였다. 세대교체의 가능성을 확인했다고 평가해도 좋을 만큼 인재가 많았다. 장현식은 '일본 킬러'로서의 가능성을 입증했고, 임기영은 체인지업을 앞세워 대만을 7이닝 무실점으로 틀어막았다. 돌직구를 앞세운 장필준은 차세대 마무리투수로 도약. 박민우-김하성 키스톤콤비는 향후 10년은 거뜬히 책임질 것 같은 안정감을 선보였다.

대표팀은 이번 대회서 한국 야구의 현주소를 정확히 파악했다. 2년 전 프리미어12 우승에 도취돼 일본을 라이벌로 생각하며 세월을 보냈지만 실력부터 시작해 인프라까지 우리가 모두 한 수 아래라는 것을 직접 몸으로 체험했다. 그러나 이에 주눅들 필요는 없다. 이번 대회를 통해 과제를 찾았고, 남은 3년 동안 착실히 준비하면 된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야구가 다시 정식 종목으로 부활될 도쿄올림픽이기 때문이다. 2017년 11월 19일의 패배를 발판 삼아 도쿄에서 다시 웃을 수 있는 그날을 기대해본다.

[사진 = 일본 도쿄 송일섭 기자 andlyu@mydaily.co.kr]

이후광 기자 backlight@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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