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록의 나침반] '돈꽃', 막장 드라마 아니다…명작이다

[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껍데기만 보면 MBC 토요드라마 '돈꽃'(극본 이명희 연출 김희원)은 '막장'이다.

MBC가 그토록 집착하는 재벌가 이야기인 데다가 흔해 빠진 '출생의 비밀'도 어김없다. 신분을 숨기고 재벌가에 잠입해 복수하는 소재도 전혀 새롭지 않다. 과거 막장극들이 즐겨 사용한 요소들을 고대로 쏙 빼온 인상이다.

그런데 속을 보면 다르다. '돈꽃'에게는 한번 맡으면 헤어나오기 힘든 마력(魔力)의 향이 있다. 10회까지 소화한 현재까지만 놓고 보면, 감히 올해 MBC 최고의 드라마다.

일단 극본이 거침없다.

대사에 군더더기가 없어 이야기 전개가 빠르다. 대신 대사 사이사이 여백을 두어 시청자가 대사를 음미할 수 있도록 했고, 침묵이 주는 긴장감과 집중력도 만들어냈다. 간결한 대사로 속도를 높이고, 여백이 여유를 만들며 전개의 완급을 조절한 것이다.

연출은 탁월하다. 다양한 카메라 앵글을 동원해 촬영한 까닭이다.

'돈꽃'의 재벌가 풍경이나 기타 배경들은 사실 기존 MBC 드라마에서도 자주 사용한 공간들이다. 어딘가 새롭게 느껴지는 까닭은 여러 각도의 카메라로 공간을 비춰 시청자들에게 전혀 다른 관점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훨씬 품이 드는 촬영일 텐데, 제작진이 공을 들인 티가 역력하다.

배우들의 얼굴을 최대한 클로즈업 한 연출도 한몫했다. 호불호가 갈리는 기법이지만, 주요 장면에 적절히 사용돼 배우들의 표정 연기에 시청자들이 몰입할 수 있게끔 했다.

배우들의 연기도 탄탄하다.

이순재를 필두로 선우재덕, 이미숙 등 베테랑들의 무게감 있는 연기가 '돈꽃' 특유의 묵직한 공기의 시발점이다.

장혁은 진보했다. 근래 연기 방식이 비슷하다는 비판이 있던 장혁인데, '돈꽃'에선 절제하는 연기의 절정을 보여주고 있다. 격정적으로 감정을 드러내지 않더라도, 미묘한 표정 변화만으로 강필주의 비극적인 운명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정말란 역 이미숙과 마주하는 장면에선 두 배우의 표정 연기가 빚어낸 팽팽한 긴장감이 시청자들을 압도한다.

박세영은 기대 이상이다. 2015년 MBC '내 딸, 금사월' 오혜상 때와 전혀 다르다. 나모현(박세영)이 배신당했단 사실을 깨닫고 변화하는 지점이 중요했는데, 박세영은 나모현의 변화를 극단적으로 표현하는 대신 모현의 얼굴에서 온기를 빼고 싸늘한 기운을 집어넣는 섬세한 표현으로 노련함을 보여줬다.

장승조는 뮤지컬 무대에서 잔뼈 굵은 배우답다. 그가 맡은 장부천은 '돈꽃'에서 가장 감정 표현이 도드라진 어려운 캐릭터이나, 숱한 무대 경험을 살려 극과 극의 감정을 오가면서도 거부감 들지 않게 매끄럽게 연기하고 있다.

다만 윤서원 역을 맡은 신예 한소희가 다른 주연들에 비하면 경험 부족 탓인지, 대사를 소화하는 안정감이 떨어지는 게 아쉬운 대목이다.

사실 그동안 여러 드라마가 막장극이란 비판을 받은 것은 자극적인 설정 때문이 아니었다. 개연성 떨어지는 억지 전개와 '우연의 반복'만 반복하는 천편일률적 연출 탓이 컸다.

이미 '돈꽃'은 지금까지 보여준 것만으로도 막장극을 가뿐히 뛰어넘었다. 남은 절반의 분량에서도 이 같은 완성도를 유지해 끝내 '막장' 아닌 '명작'으로 남길 기대한다.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DB-imbc-온누리미디어 제공]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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