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남의 풋볼뷰] 클롭이 펩에 강한 이유

[마이데일리 = 안경남 기자] 위르겐 클롭 축구는 왜 펩 과르디올라에 강할까. 어려운 질문이다. 하지만 전술적인 관점에서 어느 정도 답을 찾을 수 있다. 축구의 목적은 승리를 위해 골을 넣는 것이고 감독은 이를 설계하는 사람이다. 그런 측면에서 클롭과 펩은 어택킹 서드(경기장을 1/3으로 나눴을 때 상대 수비지역)까지 접근하는 방식이 매우 다른 인물이다. 클롭은 압박을 통해 상대 실수를 유발하고, 펩은 공을 돌려 상대를 한쪽으로 몰아놓는다. 둘 다 득점을 위해 공간을 찾는다는 점에서 목표는 같지만 이에 도달하는 과정은 다르다고 볼 수 있다.

클롭 감독이 또 한 번 펩 감독을 멈춰 세우면서 끝날 것 같지 않던 맨체스터 시티의 무패행진이 22경기에서 마침표를 찍었다. 클롭은 펩과의 상대 전적에서 6승1무5패로 우위를 점했고 리버풀은 올 시즌 초반 0-5 패배의 충격을 되갚는데 성공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맨시티의 우승 가능성은 높다. 그들은 2위 그룹에 승점 15점 앞서 있고 이변이 없는 한 지금의 격차를 계속 유지할 것이다. 하지만 이날 패배는 전술적인 측면에서 어떻게 맨시티를 괴롭힐 수 있는 지 보여준 경기였다.

‘게겐 프레싱(Gegen Pressing)으로 불리는 전방 압박은 클롭을 세계가 주목하는 감독으로 만들었다. 그는 상대 수비 진영에서 공을 빼앗는 것이 골문으로 가는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믿는다. 공을 직접 운반하는 것보다 상대의 실수를 유발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얘기다. 그러면 복잡한 과정을 거치지 않고 어택킹 서드까지 빠르게 접근할 수 있다.

무엇보다 이러한 상황은 상대를 혼란에 빠트린다. 보통 공을 소유한 상태에선 무게 중심이 앞으로 쏠린다. 상대 진영까지 올라가야 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상태에서 순간적으로 공을 빼앗기면 흔한 말로 멘붕에 빠진다. 공수 간격이 크게 벌어져 수비수들은 뒷걸음칠 수 밖에 없고 이미 멀어진 공격수들은 도움을 주기 어렵다. 그리고 이는 공을 빼앗은 상대에게 결정적인 득점 기회를 제공한다.

클롭이 펩에 강한 전술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전방 압박은 수비 라인을 높게 유지하면서 공을 오래 소유하는 팀을 상대로 매우 효과적이다. 압박을 통해 실수를 유발할 경우 파고들 수 있는 공간이 많아지고 상대가 공을 오래 소유할수록 빼앗을 기회도 늘어난다. 이는 리버풀이 강팀에 강하고, 약팀에 약한 특징과도 관계가 있다. 맨시티처럼 전진하는 팀에는 압박이 잘 먹히지만, 수비라인을 내린 약팀에게는 종종 먹히지 않기 때문이다.

단순히 압박만 한다고 상대 실수를 유발하는 건 아니다. 압박에서 가장 중요한 건 세컨볼을 따내는 일이다. 아무리 압박을 잘해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공을 낚아채지 못한다면 의미가 없다. 이날 리버풀이 잘한 건 바로 이 세컨볼을 수 차례 따냈다는 점이다. 그들은 팀 전체의 압박을 통해 맨시티로부터 소유권을 빼앗았고 이를 통해 상대를 공략했다.

리버풀의 선제골은 이러한 과정을 아주 잘 보여준 장면이다. 맨시티 수비지역을 향해 롱패스가 연결됐고 이를 끊어내기 위해 니콜라스 오타멘디가 전진해 헤딩을 시도했다. 하지만 공은 다시 위로 솟아 올랐고 세컨볼 싸움이 전개됐다. 로베르트 피르미누가 파비안 델프와의 경합에서 공을 따냈고 이를 옥슬레이드-챔벌레인이 가로챈 뒤 빠르게 치고 들어가 강력한 오른발 슈팅으로 맨시티 골문 구석을 갈랐다. 오타멘디는 델프가 올라오면서 사이드에 혼자 남게 된 모하메드 살라를 막으려고 이동했지만 존 스톤스가 거리를 좁히지 않으면서 오히려 챔벌레인에게 공간을 열어준 꼴이 되고 말았다.

펩은 프리미어리그에서 첫 시즌을 소화한 뒤 티에리 앙리와의 인터뷰에서 세컨볼을 따내는 것이 매우 어려웠다고 밝힌 바 있다. 특히 영국은 다른 리그보다 롱볼 빈도가 높다. 그로 인해 소유만으로 공을 컨트롤하려는 그의 철학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 밖에 없었다. 이번 시즌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점유율을 더욱 높이고 세컨볼에 대한 연구를 통해 해법을 찾았지만 리버풀의 압박은 그들의 예상보다 강했고 또 다시 세컨볼에 대한 문제점을 드러냈다.

다비드 실바의 부재도 맨시티의 장악력을 약화시키는데 영향을 끼쳤다. 도르트문트에서 클롭의 지도를 받았던 일카이 권도간은 문전 침투에 능한 선수지만 실바 만큼 공을 잘 소유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케빈 데 브라위너가 환상적인 패스로 득점 기회를 창출했지만, 실바와 함께 뛸 때보다 경기에 대한 영향력이 적었던 건 사실이다.

경기를 풀어가는 클롭과 펩의 차이는 후반에 더욱 뚜렷해졌다. 특히 후반 14분부터 23분까지 압박과 탈압박이 정면 충돌하면서 9분 사이 3골이 터졌다. 조르지니오 바이날둠과 챔벌레인이 압박을 통해 데 브라위너의 공을 빼앗으면서 리버풀에게 기회가 열렸다. 스톤스 후방을 향한 챔벌레인의 패스는 몸 싸움을 이겨낸 피르미누에게 연결됐고, 깔끔한 마무리로 득점에 성공했다.

추가 실점 후 맨시티 수비는 빌드업 과정에서 자신감을 잃은 듯 방황했다. 리버풀이 달려들자 실수를 남발했다. 살라가 오타멘티의 패스를 가로 채 사디오 마네에게 완벽한 찬스를 제공했고, 에데르손 골키퍼가 잘못 걷어낸 공은 살라의 4번째 쐐기골로 연결됐다.

아마도 다른 팀이었다면 롱패스로 리버풀의 전방 압박을 벗어나려 했을 것이다. 공의 소유권을 내주더라도 위험 지역에서 실수가 더 두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펩은 자신의 철학을 고수했고 이 과정에서 실수가 쏟아졌다. 맨시티는 지난 해 여름 천문학적인 이적료를 투자해 풀백 포지션을 보강했지만 센터백은 그대로다. 오타멘디와 스톤스가 지난 시즌과 비교해 실수가 줄고 안정감이 더해졌다고 평가 받지만 그들의 약점을 완전히 지운 건 아니다.

클롭은 경기 후 인터뷰에서 “우리는 맨시티에 문제를 일으켰다”며 리버풀의 전방 압박이 맨시티의 실수를 유발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펩은 “1-1에서 우리는 경기를 스스로 통제했다. 하지만 결정력이 부족했고 갑자기 1-4까지 스코어가 벌어졌다. 골을 허용했을 때 평정심을 유지해야 하는데 그만큼 우리가 단단하지 못했다. 리버풀에게 두 번째 골을 내준 뒤 몇 분 사이 2골을 더 허용했다. 이런 상황은 회복하기 어렵다”고 패배를 인정했다.

물론 리버풀이 압박하고 맨시티가 소유한다는 이유만으로 클롭이 펩에 강하다고 단정 지을 순 없다. 다만 둘의 철학이 경기에 반영되고 그에 따라 작용과 반작용이 일어나면서 결과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이날 리버풀은 자신들이 잘하는 걸 너무도 잘 해냈고, 맨시티는 감춰졌던 약점이 다시 드러났다. 그리고 그 차이가 승부를 갈랐다.

[사진 = TacticalPAD, AFPBBNEWS]

안경남 기자 knan0422@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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