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예은의 안테나] '성추행 인정' 김생민의 배신, 방송가도 가해자다

[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방송인 김생민이 머리를 숙였다. 10년 전 가했던 성추행 사실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착실한 이미지로 두루 사랑받았던 그가 성추행 가해자라는 사실은, 대중에게 커다란 허탈감을 안겼다. 다수의 프로그램 하차 및 편집, 날카로운 대중의 지적, 끝없는 사죄 등 이 모든 것은 가해자 위치에 선 김생민이 감내해야만 할 일이다.

그러나 김생민만의 몫이 아니다. 10년 전 사건을 묵인하고 방관한 방송가도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2일 디스패치는 10년 전, 김생민이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했던 방송 스태프 두 명을 성추행했다고 보도했다. 보도에 따르면 김생민은 과거 피해자 B씨에게만 사과했고, 최근이 되어서야 성추행 피해자 A씨에게 사과했다.

B씨에게 사과를 했다는 건, 성추행 사건이 일어난 뒤 해당 방송국과 프로그램 내부에서도 암암리에 공론화가 됐다는 뜻이다. 해당 프로그램의 메인 작가와 메인 PD는 김생민의 과실을 명확하게 인지했으나 어떠한 제재도 취하지 않았다.

A씨가 제작진에게 김생민의 퇴출을 요구하고 항의했으나 달라진 것은 없었다. 오히려 피해자인 A씨의 자리가 위험해졌다. 사건 이후 점차 프로그램 제작 언저리로 밀려났고 결국 스스로 퇴사했다. A씨는 모욕적인 2차 가해 언행까지 들어야 했다. "방송계가 원래 그러니, 이해해라"는 식이 대다수였다.

이는 A씨에게만 한정된 언사가 아니다. 방송계를 비롯, 문화계, 연예계, 법조계 등 각종 집단 속에서 비일비재하게 피해자에게 쏟아졌던 언어폭력이다. 피해자의 곪은 상처보다 소문을 두려워하는 업계의 비겁한 대처였고 눈 가리고 아웅 식의 관행이었다.

물론, 가해자의 추행이 공개됐을 때 프로그램의 이미지는 손상될 것이다. 당분간 사람들의 입에도 부정적으로 오르락내리락할 테니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닐 터다. 하지만 그로 인해 가해자를 방관하고 두둔한 방송계가 또 다른 피해자를 만들었다는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들은 '아무 일도 없는' 문화를 만들어낸 주범이다.

'미투 운동'의 목적은 단순하지 않다. 1차적으로 가해자를 고발하고, 그를 처벌하는 것에 그치는 게 아니란 뜻이다. 가해자들에게는 한없이 관대했던, 추악한 사회 구조에 경종을 울리고 양성평등 사회로 나아갈 때 '미투'는 빛을 발한다. 모든 피해자들이 "나와 똑같은 피해를 입지 않길 바라는 마음에서"라고 외치는 이유다.

추행이 수면 위로 드러나고서야 행하는 프로그램 하차는 일차원적인 꼬리 자르기 대처다. 이는 본질적인 문제 해결과 거리가 멀다. 보여주기 식이 아닌 업계 내부의 전반적인 자성, 철저한 교육 등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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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예은 기자 9009055@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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