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록의 나침반] 펜타곤의 '빛나리', 짝사랑을 하면 찌질이가 된다

[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내 짝사랑은 '찌질했다'.

학생 때 일이다. 짝사랑하는 여자애가 있었다. 겨우 불러내 몇 시간을 망설인 끝에 용기 내 고백했더니 그 여자애는 웃음을 터뜨렸다. 나도 모르게 바들바들 떨리며 나온 목소리가 우스웠는지 깔깔댔다. 그 순간만큼은 그 애가 참말로 미웠다.

자존심이 팍 상해 응당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어야 했지만, 난 미련한지 모자란지 둘 중 하나였다. 느닷없이 그간 마음앓이 한 날들이 떠올라 창피스럽게도 벌건 눈물을 뚝뚝뚝 떨구고 만 것이다. 그 애는 그걸 보고도 동정은커녕 더 요란하게 웃었다. 그게 또 참 얄미웠다.

펜타곤의 '빛나리'는 짝사랑의 찬가다. 사랑은 찬란하나, 짝사랑은 '찌질하기' 때문이다. '더 맘껏 비웃어 / 그래 나는 너를 사랑하는 찌질이 찌질이 / 그래 나는 머저리 머저리 / 난 너한테는 거머리 겉절이'

하나의 인격체를 단숨에 겉절이로 만드는, 짝사랑 같은 독약이 또 없다.

한번 걸리면 속수무책이다. 순식간에 온몸으로 퍼져나간 짝사랑 약효는 이성을 마비시키고, 호흡을 흐트러뜨리며, 혀를 굳게 하고, 사고회로를 교란시켜 합리적인 판단 대신 후회막심한 짓을 버젓이 저지르게 만든다. 찌질이가 되는 건 삽시간이다.

맨날 보던 평범한 애한테 어느 날 갑자기 빠져버리기도 하니, 언제 어떻게 중독될지 몰라 대처할 길도 마땅히 없다.

그럼에도 펜타곤의 '빛나리'는 찬란하다. 짝사랑의 찌질이가 되었으나 결코 처량하게 한탄따위 하지 않는 까닭이다. 사랑을 구걸하지도 않는다.

도리어 리듬에 맞춰 열 명의 멤버들이 일사불란하게 춤추며 '그래 난 널 사랑하는 찌질이다'고 외치는 장면은 마치 '짝사랑의 축제'처럼 빛난다. 병약해 보이던 멤버 이던마저도 '빛나리'를 부를 때만은 눈빛이 뜨겁고 아래 위로 뻗는 팔에는 자신감이 가득하다.

결말은 해탈의 경지다. 짝사랑이 비록 우리를 찌질하게 만들지언정 좌절하지 말고 슬퍼하지 말라. 찬란한 '사랑'이든 찌질한 '짝사랑'이든, 우린 '사랑 앞에선 늘 빛나리'이기 때문이다.

그 시절 펜타곤의 '빛나리' 같은 노래가 없었던 게 못내 아쉽다. 그때도 이 노래를 알았더라면, 짝사랑 그 애 앞에서 춤이라도 추면서 고백했을 텐데 말이다.

[사진 = 펜타곤 '빛나리' 뮤직비디오]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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