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희숙의 딥썰] 블랙넛, '고등래퍼'보다 못한 랩의 품격

[마이데일리 = 명희숙 기자] 좋은 가사는 깊은 울림을 준다. 누군가를 향한 비판을 담은 랩 역시 말의 맛을 살리고 품격을 잃지 않는다면 그 자체로 좋은 음악이다. 하지만 단순히 자극적인 독설만 담긴다면 그저 멜로디가 있는 저열한 욕이 아닐까.

래퍼 블랙넛은 거침없는 랩으로 승부수를 띄운다. 금기를 내뱉는 그만의 스타일은 누군가에게 통쾌함으로 다가올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으로 그는 지질했던 자신의 과거를 곱씹는가 하면 '배드 보그'에서는 여자를 욕망하지만 다가가지 못하는 자신을 자책하기도 한다.

블랙넛의 음악은 대체로 자기를 비하하고 학대한다. 아마 그의 음악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그의 처지와 자신을 동일시하거나 동정하는 부류일 수 있다.

하지만 그의 표현 방식은 분명히 잘못됐다. 그는 자신의 지질함을 들여다보면서 동시에 불특정 여성들에 대한 분노를 표출한다. '물오징어', '양아치' 등은 그가 주변 혹은 가지지 못한 여자들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보여준다.

블랙넛은 결국 '투 리얼'(Too Real)을 통해 듣는 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실명의 여성을 혐오한다. 키디비가 대상이 됐다. 그는 '물론 이번엔 키디비 아냐. 줘도 안 X먹어' '솔직히 난 키디비 사진 보고 XX 봤지'의 성적 발언을 가사에 담았다.

키디비가 그 가사로 인해 모욕감을 느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니었을까. 블랙넛은 두 차례의 공판을 통해 모욕에 대한 의도가 없었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그리고 그는 두 번째 공판에 참석했다. 한 손에는 커피를 든 채로. 마치 가벼운 미팅에 향하듯.

블랙넛은 고의로 키비디에게 모욕감을 주진 않았지만 그의 음악으로 인해 '모욕감'을 느낀 키디비는 공판에 참석하지 못했다. 그의 변호인은 "심리적으로 매우 힘들어한다"고 불참 사유를 밝혔다.

물론 블랙넛은 '고의'로 키비디에게 모욕감을 주진 않았지만 고소당한 직후 열린 공연장에서 키디비의 이름을 언급하며 자위 퍼포먼스를 했다. 이후 3차례나 더 키비디가 모욕감을 느낀다고 주장하는 행동을 무대 위에서 했고, 2차 고소를 당했다.

블랙넛이 어떤 생각으로 음악 속에 키비디를 성적으로 언급하고 무대 위에서 자위 퍼포먼스를 했는지는 확언할 수 없다. 그가 생각하는 좋은 랩에는 그런 표현이 들어가야 하는 걸지도.

최근 종영한 케이블채널 Mnet '고등래퍼2'에 출연한 김하온, 이병재, 배연서 등은 어리지만 자신의 삶의 철학을 랩에 담았다. 특히 이병재는 어둡고 불우한 현재를 직시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려는 희망을 음악에 담으며 깊은 울림을 줬다.

물론 이들은 블랙넛보다 힙합신에서 이름을 알리지 못한 아마추어다. 하지만 적어도 누군가에게 상처가 되는 음악을 하진 않는다. 랩의 품격을 따지자면 '고등래퍼2' 참가자들이 더 높지 않을까.

[사진 = 저스트뮤직 제공]

명희숙 기자 aud666@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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