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예은의 안테나] 익숙한 '김비서가 왜 그럴까', 왜 재미있을까

[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뻔하디 뻔한 로맨틱 코미디다. 그것도 과거 유행처럼 번졌던 왕자님의 등장. 젊은 재벌인 남자 주인공, 비서인 여자 주인공 간의 유치한 사랑 이야기인데, 흥미롭다. 구관이 명관이라고 했던가. 현실에 없을 법한 판타지 로맨스가 회귀해 대중의 감성을 건드렸다.

케이블채널 tvN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3회 만에 7%대(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전국가구 기준)의 시청률을 돌파하는 기염을 토했다. 화제성도 대단하다. 매일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을 차지하는가 하면, 주연 배우들을 향한 호평이 일제히 쏟아지고 원작 웹툰에 대한 관심도 날로 늘고 있다.

유명그룹 부회장 이영준(박서준)과 개인 비서 김미소(박민영)는 9년 간 함께 일을 해온 비즈니스 파트너였다. 돌연 김미소가 퇴사를 선언한다. 집안의 빚도 모두 갚았고, 회사가 아닌 개인의 삶을 찾아 나서기 위해서다. 당혹에 빠진 건 오히려 이영준 쪽이었다. 김미소가 없는 부회장 삶은 상상도 해본 적이 없다. 익숙함에 밀려 김미소에 대한 감정 또한 자각하지 못해 일어난 사달이었다.

자신이 곧 자산이라고 생각하는 나르시스트 이영준은 명예, 돈, 외모, 능력 등 이 모든 것들을 이용해 김미소를 붙잡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그 과정에서 이영준은 미묘한 감정을 깨닫고 제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태어나서 한번도 하지 않은 행동들을 잇달아 실행한다.

어딘가 익숙한 구조다. 평생 자신밖에 모르고 살아온 오만방자한 남자 주인공이 자신의 위치와는 거리가 먼, 여자 주인공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미묘하게 변화와 성장을 거듭하더니 마침내 사랑을 쟁취하는 전형적인 '백마 탄 왕자님' 플롯이다. 남녀주인공의 운명 같은 과거 또한 빠질 수 없다. 대표적으로 이 분야의 대가, 김은숙 작가의 작품들을 떠올리게 된다.

놀랍게도 이러한 클리셰 정석이 낯설게 다가오고 혹은 오래된 친구라도 본 것처럼 반갑다. 최근 로맨스가 포함된 작품들은 '왕자님', '흑기사' 남주인공을 거둬내고 '현실 남친' 등을 전면으로 내세우며 사실적인 공감에 집중했다. 대중이 미디어 속 콘텐츠를 판별하는 수준이 향상되면서 판타지와 같은 사랑놀이도 힘을 잃었고 팍팍한 현실과 극중 휘황찬란한 배경이 주는 괴리감도 상당했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이입이 간편하고 공감하기에 유리한 현실 기반 인물을 선호하는 추세가 늘었다.

그러나 이 또한 반복되니 시청자들이 매너리즘에 빠지는 건 당연하다. 가벼운 장르 외도가 필요한 순간, '김비서가 왜 그럴까'가 시기적절하게 등장했고 여러 흥행 요인이 맞물려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냈다.

물론, 우려 지점도 있었다. 기업 부회장과 개인 비서 간의 로맨스였다. 상하 권력 관계에서 형성된 애정 라인은 다소 위험해보일 수도 있었으나 '캐릭터의 힘'을 이용해 영리하게 이를 피해갔다. 독특하고 명확한 캐릭터성을 작품의 중심축으로 만들었다. 즉, 작품과 현실의 경계의 선을 명확하게 구분 지었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민폐여주' 프레임에서 탈피된 여성 캐릭터도 매력적이었다. 김미소는 능력이 넘쳐나는 '비서계 레전드'고 도움을 받는 위치가 아니라 오히려 도움을 주는 인물이다. 실질적으로 이영준의 머리 위에 있는 실세란 뜻이다. 이는 '남주'에게만 쏠려있던 매력을 양분화해, 남녀주인공 간의 적절한 밸런스를 유지하는데 큰 공을 세웠다.

주연 배우들의 열연을 빼놓을 수 없다. 독보적인 캐릭터 소화력을 선보이는 박서준, 박민영의 연기력은 드라마를 정상으로 오르게 한 일등 요인이다. 박서준은 로맨틱 코미디 신흥 강자 타이틀 값을 톡톡히 한다. 어색하게 잘난 척 했다간 비웃음만 살 수 있는 나르시스트 캐릭터를 제 옷을 입은 듯 소화하고 있다. 코믹과 설렘, 진중함을 자유자재로 오가는 데에 능하다.

박민영은 앞서 동명의 웹툰 속 인물과 완벽한 싱크로율을 자랑하며 네티즌들이 재미 삼아 진행한 '가상 캐스팅'에도 여러 번 이름을 올렸다. 그러니 외형만으로도 캐릭터 몰입을 도우며 종종 아쉬운 점으로 꼽혔던 발음도 완벽히 개선해 새로운 '인생 캐릭터'를 만들어 가고 있다. 이제 극 초반을 지났다. 원작에 따르면 향후 펼쳐질 남녀주인공의 과거, 방해 요소 등도 다수 포진되어 있어 흥미를 유발하기에 충분하다.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지금의 기세를 몰아, 설득력 있는 로맨틱 코미디 작품으로 남을 수 있을까. 시청자들의 기대감이 크다.

[사진 = tvN 제공]

이예은 기자 9009055@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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