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서건창의 희생번트에 장정석 감독은 웃었다

[마이데일리 = 김진성 기자] "그냥 웃으시던데요."

넥센 서건창은 1군 복귀전이던 11일 고척 LG전서 11-7로 앞선 7회말 무사 1,2루 찬스에 타석에 들어섰다. LG 진해수가 투수판을 밟고 호흡을 가다듬을 때까지 정상적인 타격 자세를 취했다. 그러나 세트포지션에 들어가자 갑자기 방망이를 눕히며 번트를 준비했다.

초구에 깔끔하게 번트를 댔다. 타구는 3루수 방면으로 느리게 굴렀다. 서건창은 간발의 차로 1루에서 아웃. 주자들은 한 베이스씩 진루했다. 희생번트의 정석. 이후 LG 벤치는 박병호를 상대로 자동 고의사구를 택했다. 만루 작전. 그러나 진해수와 신정락이 후속타자들에게 밀어내기 볼넷, 밀어내기 사구를 각각 내줬다.

결국 넥센은 2점을 추가하면서 승부를 갈랐다. 4점 차와 6점 차는 큰 차이가 있다. 돌이켜보면 서건창의 희생번트가 팀 승리를 굳히는데 큰 역할을 했다. 복귀전서 안타를 치지 못했으나 그 희생번트 하나로 제 몫을 했다.

흥미로운 건 장정석 감독이 서건창에게 희생번트 사인을 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장 감독은 다음날 "히팅 사인을 냈는데 건창이가 알아서 번트를 대더라"고 돌아봤다. 서건창이 희생번트를 대고 덕아웃으로 돌아오자 장 감독은 미소로 화답했다. 서건창은 "감독님은 그냥 웃으시던데요"라고 말했다.

서건창은 3월 31일 대구 삼성전서 정강이에 부상했다. 4개월 넘게 팀에 전혀 보탬이 되지 못했다. 오랜만에 나선 1군 무대. 앞선 타석에선 볼넷 1개를 제외하면 모두 범타. 희생번트는 어떻게든 팀에 도움이 되고 싶은 의지였다.

12일 고척 LG전을 마치고 만난 서건창은 "중요한 상황이었다. 뒤에 좋은 타자들이 버티고 있었다. 내 (좋지 않은)타격감을 감안할 때 팀이 4점을 이기고 있었지만, 번트를 대는 게 낫다고 봤다"라고 말했다.

서건창만 팀 퍼스트 마인드를 갖고 있는 게 아니다. 요즘 잘 나가는 넥센 덕아웃은 '질 것 같지 않다'라는 분위기가 팽배하다. 연승 팀들이 그렇지만, 넥센 선수들도 팀으로 똘똘 뭉쳤다. 내가 해결하지 못해도 동료가 해결할 수 있다는 마인드를 갖고 있으니 개개인이 부담을 갖지 않고 자신의 역량을 발휘한다.

장 감독은 "후반기 초반 연패할 때였다. 덕아웃에서 선수들을 슬쩍 봤는데 똘똘 뭉쳤더라. 하고자 하는 의지를 느꼈다. 그날 졌는데도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반드시 반격할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봤다"라고 털어놨다.

구단 창단 최다 10연승이다. 당연히 덕아웃 분위기는 역대 최고다. 14일 대구 삼성전서는 8점 리드를 지키지 못하고 역전 당했으나 끝내 다시 승부를 뒤집었다. 장 감독은 "요즘 선수들이 덕아웃에서 소리를 꽥꽥 지른다. 질 것 같지 않은 분위기다. 고참들이 중심을 잡아주고 있고, 소리 없이 잘해주고 있다. 어린 선수들에게 자극이 된다"라고 말했다. 전반기에 이택근, 후반기에 박병호까지 덕아웃 중심을 잡는다.

서건창은 팀이 7연승을 달릴 때 1군에 합류했다. 선수 모두 승리를 위해 힘을 짜내고 독려하는 분위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팀에 헌신하는 마인드를 발휘했다. 사령탑도 그걸 잘 알기에 서건창의 희생번트에 웃지 않았을까. 장 감독은 "선수들이 정말 잘해주고 있다"라고 말했다.

[서건창을 격려하는 장정석 감독.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 DB]

김진성 기자 kkomag@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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