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예은의 안테나] '서른이지만', 착한 사람들의 착한 드라마

[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느려도 괜찮아.

SBS 월화드라마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이하 '서른이지만')의 남녀 주인공이 마침내 24회(12회)만에 첫 입맞춤을 나눴다. 로맨스 장르라고 하기엔 더디고도 더딘 이 전개, 답답함을 호소할 만도 한데 도리어 시청자들은 잘 키운 내 새끼 보듯 흐뭇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뿐인가. 각종 갈등과 위기가 도래하기 십상인 로맨스 드라마에, 소위 말하는 '악플' 혹은 얄미운 댓글도 없다. 오히려 '힐링 드라마'라며 칭찬일색이다.

이는 주인공 우서리(신혜선), 공우진(양세종)을 비롯한 착한 사람들의 힘이다. 할 말 못하고, 그저 바보같이 착해서 고통을 감내하는 둔함이 아니다. '서른이지만'이 형성한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은 기본적으로 순수함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 순수한 마음 덕에 그들은 함께하고 협력하는 게 당연한 일이 됐다.

그래서 이곳엔 악인이 없다. 드라마 초반, 공우진의 오랜 친구인 강희수(정유진)와 우서리를 짝사랑하는 공우진의 조카 유찬(안효섭)이 등장하자 남녀주인공과 사각관계를 구성하고 러브라인의 장벽이 되는 '서브' 포지션으로 추측하는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서른이지만'은 그 흔한 클리셰마저 기분 좋게 깨뜨렸다.

강희수는 가장 먼저 공우진의 마음을 눈치 채고, 우서리를 향해 직진할 수 있도록 조력한다. 과한 개입도 없다. 평소 텐션을 유지한 채 도움을 발휘한다. 더 나아가 13년 만에 세상과 마주한 우서리가 눈치 채지 못할 정도로 담백하고 든든하게 지원군이 되어주고 있다. 일례로, 변변찮은 가방이 없는 우서리를 위해 가방을 손수 선물하지만 '오다 주웠다' 식으로 업무 중 받은 기프트라고 포장하는 강희수의 마음이 그렇다.

굳이 악역이라고 꼽는다면, 린킴(왕지원)이었을 테다. 우서리에게 열등감을 가지고 있던 린킴은 교묘한 수로 그의 마음에 생채기까지 새겼다. 하지만 우서리의 진심을 발견한 린킴은 한 회 만에 달라졌다. 자신의 자질구레한 마음을 돌아보고 반성하며, 성장했다. 착한 사람들이 일으킨 또 다른 나비효과다.

큰 파동 없이 흘러가니 전개는 무척 단조롭다. 우서리와 공우진의 13년 전 인연, 제니퍼의 과거 등의 서사도 결말에 이르기까지 갈 길이 멀다. 그럼에도 시청자들이 닦달을 하지 않는 건, 인물들의 성장기에 기꺼이 함께 탑승했기 때문이다. 단순히 시간이 트라우마를 해결해주지 않듯, 느리더라도 온전한 서리와 우진의 치유를 원하고 있다.

이를 방증하듯 '서른이지만'은 최고 시청률 10.8%(닐슨코리아, 전국가구 기준)을 달성하며 당당히 월화극 1위로 독주 중이다. 시선을 잡아끄는 특별한 요소가 흥행의 여부를 결정한다는 흐름이 강세인 최근 추세에서 반가운 활약이다. '서른이지만' 속 세상처럼 실수는 실수로, 칭찬은 부풀어 하는 선한 마음이 가득한 세상을 기다리는 시청자들의 순수한 마음이 빚어낸 시너지는 아닐까.

[사진 = 본팩토리 제공]

이예은 기자 9009055@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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