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남의 풋볼뷰] 벤투 인터뷰로 복기한 칠레전

[마이데일리 = 수원 안경남 기자] 한국 축구대표팀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2위 칠레와 득점 없이 비겼다. 강팀 칠레를 상대로 파울루 벤투 감독의 철학인 ‘지배하는 축구’를 유지할 수 있을지 여부가 이번 경기의 전술 포인트였다. 예상대로 한국은 공을 소유하려고 노력했고 공격 상황에서도 적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다만, 그 과정에서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했고 어려움도 겪었다. 행운이 따른 무승부였지만, 평가전의 의미를 생각할 때 칠레전은 아주 좋은 교훈이 됐다.

전술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점은 한국이 골키퍼부터 후방 빌드업을 꾸준히 시도했다는 점이다. 칠레의 거센 압박에 대응하기 위해 한국은 최후방 수비수인 골키퍼까지 빌드업에 관여했다. 바르셀로나와 바이에른 뮌헨을 거쳐 지금은 맨체스터 시티를 지휘하는 ‘전술 천재’ 펩 과르디올라가 추가하는 공격 전개 방식이다.

문제는 김진현이 발을 잘 쓰는 골키퍼가 아니라는 점이다. 과거에도 김진현은 킥 실수로 상대 선수에게 공을 내줘 실점한 경험이 있다. 실제로 이날 김진현은 5차례 정도 실수를 저질렀고 대부분 상대에게 공이 넘어갔다. 칠레의 결정력이 좋았다면 실점으로 이어질 수 있을 만한 아찔한 장면이 여럿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방 빌드업을 고집한 건 의미가 있다. 적어도 벤투 감독이 확실한 전술 철학을 갖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한국 4-3-3 포메이션 : 21김진현 - 2이용 20장현수 19김영권 14홍철(30“윤석영) - 5정우영 16기성용 - 11황희찬 8남태희 7손흥민 - 18황의조 / 감독 파울루 벤투)

(칠레 4-3-3 포메이션 : 1아리아스 - 4이슬라 16리크노브스키 6마리판 2알보르노스 - 17메델 20아랑기스 10발데스 - 8비달 11루비오 18사갈 / 감독 레이날도 루에다)

“칠레는 일정 수준 이상의 레벨을 갖춘 팀이다. 우수한 선수, 경험이 풍부한 선수들이 많다. 그런 팀을 상대로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고 생각한다. 강한 팀을 상대로 우리만의 스타일을 유지하려고 노력했고, 실제로 경기 중에 일부 시간은 그런 형태가 나타나기도 했다” - 파울루 벤투 -

한국은 칠레를 상대로 공을 소유하려고 했다. 벤투 감독이 원하는 ‘지배하는 축구’다. 칠레의 전방 압박에 당황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그것을 이겨내고 공격 작업까지 연결된 찬스도 있었다. 경기 초반 황희찬에게 연결된 두 차례 장면이 대표적이다. 마무리 터치만 좋았다면 한국이 좋은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빌드업 과정에서 공을 빼앗기긴 했지만 결정적인 기회를 주진 않았다. 후반 막판에 두 번 정도 기회를 줬는데, 상대가 잘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실수를 했기 때문이다. 수비는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 파울루 벤투 -

축구가 실수의 스포츠라는 점에서 벤투 감독의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긴 어렵다. 하지만 평가전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특히 장현수가 후반 종료직전에 범한 백패스 실수는 치명적이었다. 경기 후 장현수는 “의사소통에 문제가 있었다”고 말했지만, 최종 수비수가 결코 해선 안될 실수를 저질렀다. 이미 월드컵에서 수 차례 ‘실수 논란’에 휩싸였던 장현수다. 벤투 감독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지만 실수가 반복되면 실력이 된다.

“2경기를 통해 우리의 철학과 원하는 스타일을 실험했다. 발전할 여지를 봤다. 하지만 여기에 만족하지 않을 것이다. 한 달 뒤에는 더 발전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 파울루 벤투 -

벤투 감독은 코스타리카, 칠레와의 경기를 통해 ‘지배하는 축구’를 실험했다. 이를 위해 후방에는 공을 잘 다루고 패스에 능한 선수들을 우선 배치했다. 포백 수비에는 ‘맨투맨’에 강한 김민재 대신 ‘멀티포지션’을 소화하는 장현수를 중앙 수비수로 뒀다. 그리고 중원에도 기성용과 정우영이 포진했는데, 두 선수 모두 롱패스에 능하고 빌드업시에 후방으로 내려와 스리백처럼 변할 수 있는 자원이다. 벤투 감독이 얼마나 ‘소유’와 ‘지배’를 원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 명단은 월드컵 멤버가 주를 이루고 일부는 조언을 받았다. 하지만 10월 A매치 명단의 최종 결정권은 나에게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기술이다. 그 다음에는 대표팀을 향한 열망과 간절함을 볼 것이다. 지금과 명단을 달라질 수 있다. 그건 자연스러운 과정이다” - 파울루 벤투 -

벤투 감독은 다음 10월 A매치 명단의 핵심 키워드로 ‘기술’을 꼽았다. 이는 그가 강조하는 후방 빌드업을 실현하고 전방에선 상대 수비와의 경합을 이겨내기 위해서다. 설계는 감독이 하지만, 결국 경기장 안에서 그걸 실현하는 건 선수다. 아무리 좋은 전술도 그에 어울리는 선수를 기용해야 시너지 효과를 낸다. 이는 ‘2기 벤투호’에 대한 힌트가 될 전망이다.

“후방 빌드업은 우리의 스타일이다. 하지만 결국 스타일을 구현하는 건 선수다. 난 선수들이 충분한 능력이 있다고 판단했고 주문했다. 이런 스타일을 계속 유지할 것이냐고 묻는다면 100% 이대로 갈 것이라고 말하겠다. 큰 틀은 계속 유지될 것이다” - 파울루 벤투 -

한국이 수비적으로 위험한 상황을 자주 맞이했던 이유는 우리 진영에서 실수가 반복됐다는 점이다. 이는 후방 빌드업의 약점이기도 하다. 실수는 곧 상대에게 결정적인 기회로 이어진다. 특히나 벤투 감독이 추구하는 빌드업 작업은 전방 압박이 강한 팀에게 취약하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주제 무리뉴 감독도 ‘게겐 프레싱: 클롭 감독의 전방 압박 전술’으로 대표되는 리버풀과 경기할 때는 ‘빌드업’을 생략하고 ‘롱볼 축구’를 구사한다. 때로는 유연성을 가져야할 필요가 있다.

[사진 = 곽경훈 기자 kphoto@mydaily.co.kr, TacticalPAD]

안경남 기자 knan0422@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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