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동의 씨네톡]‘마약왕’ 송강호, 시대를 연기하다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송강호의 클로즈업은 그 자체로 한국의 역사다. 의도했든, 안했든 송강호는 한국 근현대사의 거대한 물줄기마다 자신의 얼굴을 새겨 넣었다. 오른쪽과 왼쪽 눈의 크기가 다른 그의 얼굴은 온갖 굴곡이 심했던 한국 근현대사를 담아내는데 최적이었다. 일찍이 박찬욱 감독이 평가했듯, “예측불가 변화무쌍”한 그의 연기는 일제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인이 맞닥뜨려야했던 고난, 절망, 회한, 욕망 그리고 희망을 그려냈다. 각 시대마다 송강호는 자신의 발자국을 선명하게 남겼다. 그는 시대를 연기한다.

첫 단독 데뷔작이었던 ‘반칙왕’에서 송강호는 IMF 이후 극한의 경쟁에 내몰린 직장인을 코미디로 위로했다. ‘공동경비구역 JSA’은 분단이 남북 병사를 어떻게 비극으로 몰어넣는지를 극적으로 보여줬다. ‘살인의 추억’은 전두환 군부독재 시절에 모던한 살인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시골형사의 안타까움이 진하게 묻어났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에선 고향 땅으로 돌아오지 못하는 코리안 디아스포라(이산민족)의 운명을 코믹하게 연기했고, ‘밀정’에선 변절과 자각을 통해 독립운동에 힘을 보태는 회색빛 인간의 선택을 비장하게 표현했다.

현대사의 특정 시대를 다양한 스펙트럼으로 연기한 점도 돋보인다. 1980년대는 ‘택시운전사’ ‘살인의 추억’ ‘변호인’으로 마무리했다. 각각 소시민, 형사, 변호인으로 시대의 아픔을 온 몸으로 받아냈다. 1970년대 유신시대도 흥미롭다. ‘효자동 이발사’에선 피해자로, ‘마약왕’에선 가해자로 살았다. ‘효자동 이발사’의 성한모가 아무런 힘없이 권력에 당하기만 하는 인물이라면, ‘마약왕’의 이두삼은 뇌물을 써가며 힘을 길러 권력에 중독되어가는 캐릭터다. 송강호는 마약을 매개체로 삼안 불법과 탈법이 난무하던 시대에 한 인물이 어떻게 몰락하는지를 실감나게 연기했다.

이제 그는 조선시대로 떠난다. ‘관상’에서 수양대군의 왕위찬탈의 광풍 속에 아들을 잃어야했던 관상쟁이를, ‘사도’에서 역시 아들을 뒤주에 가둬 죽일 수 밖에 없었던 비극적 아버지를 호연했던 그는 내년에 ‘나랏말싸미’의 세종대왕으로 돌아온다. 백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훈민정음을 창제한 세종을 연기한다. 세종, 세조, 영조시대 등 조선의 극적인 순간에도 송강호의 클로즈업이 스크린을 수놓는다.

송강호는 조선, 일제시대, 한국을 가로지르며 거대한 시대의 벽화를 그리고 있다.

[사진 제공 = 쇼박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