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예은의 안테나] '남자친구', 알맹이는 가고 껍데기만 남았네

[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배우 송혜교와 박보검의 저력만 재확인했다.

보통의 멜로드라마는 남녀주인공의 사랑을 큰 줄기 삼아 잔잔한 곁가지를 뻗어낸다. 그 굴곡을 목격하는 시청자들은 그들과 함께 울고 웃고, 때로는 함께 사랑에 빠진다. 사랑이 깊어지는 만큼 시청자들의 몰입도 진해진다. 다만 이야기에 설득력이 전제돼야 가능한 일이다.

'웰메이드'가 되느냐, '빛 좋은 개살구'가 되느냐 하는 것도 그 설득력을 어떻게 이끌어내느냐에 달렸다.

종영을 코앞에 둔 케이블채널 tvN 수목드라마 '남자친구'(극본 유영아 연출 박신우)는 안타깝게도, 후자에 가깝다. 두 자릿수 시청률로 호기롭게 포문을 연 '남자친구'는 연일 하락세를 타더니 7% 중후반까지 떨어졌다. 절대적 수치로만 보면 낮지 않지만, 송혜교, 박보검이란 흥행 보장 톱스타들이 불러일으켰던 화제성에는 턱없이 못 미친다.

두 배우의 연기력과 미모는 흠 잡을 데 하나 없었다. 여느 때처럼 가슴 절절한 감정 표현에도 능숙했다. 막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달콤한 면모는 고스란히 브라운관에 수놓았다. 그들이 주고받는 숨결을 보고 있으면, 절로 웃음이 났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알맹이가 없었다. 오로지 두 배우의 서정적 '케미'에만 의존한 탓에 이야기는 같은 곳만 빙빙 돌았다. 수현(송혜교)과 진혁(박보검)이 우연히 사랑에 빠지고, 외부 환경에 의해 갈등을 맞다가, 사랑으로 극복하고, 또 갈등을 맞닥뜨렸다가, 다시 마음을 다잡았다. 사랑, 고뇌, 이별, 재회가 무의미하게 반복됐다.

즉, 얼개가 단순해 집중도가 떨어졌다. 수현과 진혁의 사랑과 갈등이라는 단 하나의 스토리 라인에만 의지했고 전개는 뻔히 예측 가능했다. 여러 변주를 이용해 변곡점을 찍어야 하는 상황에서도,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더 이상 그 과정이 궁금하지 않게 만들었다. 오히려 팬들이 자체적으로 곱씹고 해석해 생산해낸 리뷰가 더 흥미를 자극할 정도였다.

유영아 작가가 스스로 설정해놓은 매력적인 소재를 전혀 활용하지 못한 점 역시 패착 중 하나다. 아래는 대략적인 줄거리다.

<정치인의 딸, 재벌가의 며느리 등 수동적인 트로피로만 살아야 했던 호텔 대표 차수현에게 차수현의 삶은 없었다. 삭막함만이 남은 그의 인생에 진혁이라는 청포도 같은 평범한 청년이 스며들어 활력을 불어 넣더니, 사랑이라는 귀중한 감정을 알려줬다.>

'재벌 남주'-'캔디형 여주'의 사랑 이야기가 주류였던 드라마판에 등장한 반가운 역할 반전극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역할 반전을 짚기가 무색할 정도로 직업과 사회적 위치는 기능적으로만 머물렀다.

일례로 진혁은 거세게 이별을 종용하는 수현의 주변인들에게도 결코 흔들리지 않았는데 비해, 수현은 작은 진동에도 이별을 결심할 정도로 심약했다. 직업만 뒤바뀌었지, 이전의 주류극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는 이야기다.

잔잔한 멜로극에서 감초 역할을 해내야 하는 주변 캐릭터들의 매력도 역부족이었다. 작가는 유행어, 최근 발간된 책의 구절 등으로 접근성과 소소한 재미를 노렸지만 오히려 몰입만 깨뜨렸다.

'정통 멜로'를 표방한 '남자친구'는 '정통 멜로'이기 때문에 그 소신을 인정받았다. 빠른 전개, 막장극들 사이에서 용기를 냈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랑의 심연을 파고드는 노력 없는 멜로드라마를 마냥 장르성으로 옹호하긴 버겁다.

시청층 유입 대신 유출만 된 건, 자극적이지 않고 잔잔해서가 아니었다. 진전 없는 되풀이가 지루함을 안긴 탓이다. 섬세하고 감각적인 연출, 배우들의 열연이 남은 시청층을 힘겹게 붙잡고 있지만 '송혜교, 박보검의 16부작 CF'라는 일각의 우스갯소리에 제작진은 마냥 웃을 수 있을까.

[사진 = tvN 제공]

이예은 기자 9009055@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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