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명동의 씨네톡]‘더 페이버릿:여왕의 여자’, 란티모스 감독의 게임의 규칙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은 ‘게임의 규칙’ 안에 인물들을 몰아넣고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세밀하게 관찰한다. ‘더 랍스터’는 솔로생활을 유지하기 위해 절대 사랑에 빠지지 말아야하는 규칙을, ‘킬링 디어’에서는 아내와 자식 셋 중 한 명을 죽이지 않으면 셋 모두 죽는 게임의 규칙을 제시한다. ‘더 페이버릿:여왕의 여자’의 게임의 규칙은 누가 더 많이 여왕의 총애를 받을 것인가이다. 이 규칙 안에서 질투, 욕망, 추락이 격렬한 소용돌이로 휘몰아친다.

절대권력을 쥐고 있는 히스테릭한 영국 여왕 앤(올리비아 콜맨)과 오랜 친구이자 권력의 실세인 사라 제닝스(레이첼 와이즈)는 권력과 사랑을 공유하는 사이다. 귀족이었다가 하루 아침에 몰락한 후 일자리를 찾던 에비게일 힐(엠마 스톤)은 사촌 사라의 도움으로 왕궁의 하녀로 들어온다. 신분상승에 목말라있던 힐은 앤 여왕의 총애를 얻기 위해 사라와 묘한 경쟁관계를 펼치고, 사라는 ‘독사같은 애’를 질투하며 게임의 주도권을 찾기 위해 발버둥친다.

실화에 바탕을 두고 권력과 욕망을 둘러싼 세 여인의 치열한 이전투구를 블랙코미디로 그려낸 이 영화는 란티모스 작품 가운데 가장 대중적인 화술로 꼽힌다. ‘막장 드라마’를 떠올릴만큼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상대를 헐뜯고 속이고 모함하는 혈투는 극적 긴장감을 팽팽히 당긴다. 생존을 향한 인간 본성의 어두운 심연을 코믹한 터치로 톡톡 건드리는데, 후반부로 갈수록 강도가 세지며 파멸의 웅덩이를 깊이 파낸다.

이 게임의 변수는 앤 여왕의 히스테리다. 통풍에 걸려 제대로 움직일 수 없는 데다 종 잡을 수 없는 그의 심적 변화는 사라와 힐의 계산과 예측을 흔들어 버린다. 모든 것을 자신의 게획대로 밀고 나갔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결과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른다. 라스트신까지 보고나면, 누가 승자인지 장담할 수 없다. 이겼다고 방심하는 순간에 다시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신호등이 켜진다.

‘더 랍스터’ ‘킬링 디어’ ‘더 페이버릿’에서 주인공은 눈을 가린다. ‘더 랍스터’의 근시 여인(레이첼 와이즈)은 눈이 멀어 붕대를 했다. ‘킬링 디어’의 네 가족은 모두 눈을 가리고 러시안 룰렛 게임을 벌인다. ‘더 페이버릿’의 사라는 말에서 떨어져 얼굴을 다치는 바람에 한 쪽 눈을 가리게 된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상대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해당 인물은 알 수 없다는 것.

눈이 가려진 사이에 우리가 알 수 없는 진실이 드러난다. 근시 여인은 데이비드(콜린 파렐)가 카페 화장실에서 눈을 찌르고 나올 줄 알았다. ‘킬링 디어’에서 그리스신화의 아르테미스 역할을 하는 마틴(배리 케오간)은 스티븐(콜린 파렐)이 아내와 두 자식을 모두 죽게 놔둘 것이라고 예상했다.‘더 페이버릿’의 사라는 다시 앤 여왕의 총애를 받을 것이라고 자신했다가 예기치 않은 결과와 마주한다.

란티모스 감독의 영화에서 게임의 규칙은 논리를 넘어선다. 우리네 인생처럼.

[사진 = 20세기폭스, 오드]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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