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예은의 안테나] 이지은의 전력이 만든 '호텔 델루나' 장만월

[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이지은(아이유)이 펼쳐낸 판타지가 아름답다.

케이블채널 tvN 토일드라마 '호텔 델루나'에서 이지은은 천 년도 넘게 묵은 노파가 속에 들어앉은 듯 쭈글쭈글하게 못난 성격을 지닌 장만월을 연기한다. 화려한 의상의 향연, 빛나는 메이크업, 파산 직전의 호텔 경제에도 줄지 않는 물욕 덕에 껍데기는 달처럼 고고하고 아름답다.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지만, 빤히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마음 한 켠이 시리다. 뾰족하게 눈을 치켜뜨다가도 문득 보면 그 안에 물기가 가득해 쓸쓸하다.

이처럼 장만월은 한 마디로 정의 가능한 캐릭터가 아니다. 눈에 보이는 면만 꼽자면, 안하무인에 괴팍한 성격인 데다 고약하고 심술궂다. 하지만 연기자는 이를 표독스럽고, 얄망궂게 그려내서는 안 된다. 주인공이라는 위치, 더불어 이면에 상처를 가진 인물이니 그러한 결점들마저도 감싸 안아주고픈 분위기를 자아내야 한다.

미라(박유나)를 향해 끔찍한 저주를 퍼붓던 순간에도 시청자들이 차마 장만월에 등을 돌리지 못한 것처럼 이지은은 이 미션을 완벽하게 수행, 시청자들을 제 편으로 만들었다. 앳된 외모, 가녀린 몸은 천 년을 산 무시무시한 객주 설정에 균열을 가하며 아이러니한 매력을 선사한다.

자칫 오그라들 수도 있는 과한 문장들은 이지은의 입을 통해서 적정한 온도를 유지한다. 덕분에 일상에서는 잘 쓰이지 않는 언어들이 담백하면서도 귀에 쏙 박히는 흥미로운 지점이 됐다. "내 마음에 쏙 들어"처럼 한번쯤은 따라해 보고 싶은, 리듬감 넘치는 억양은 덤이다. "뭬야?"와 같은 패러디 대사도 능청스레 곧잘 소화해 드라마 장르의 범위를 단숨에 확장시킨다.

무엇보다 장만월의 과거 서사는 현 시점의 통통 튀는 드라마 분위기와 완전히 대비되는데, 괴리감이 없다. 천 년이 흘러 사치스럽고 고약한 성질이 더해졌지만 이지은이 눈에 머금은 물기만큼은 그 때나 지금이나 동일하게 처연하다.

화려한 치장 뒤에 숨겨놓은 말간 얼굴로 "난 좀 슬퍼졌어. 아까 보던 바다보다 지금 보는 바다가 더 예뻐서"라고 말하니 비극이 극대화된다. 저도 모르게 침투해 위안의 존재가 된 구찬성(여진구)을 바라볼 땐 그 얼굴과 눈빛이 더욱 빛을 발한다.

막무가내이나 끝내 사랑스러워지는 드라마 '프로듀사'의 신디와 애달픔 속 모든 걸 놓아버린 '달의 연인-보보경심 려' 속 해수를 성공적으로 병합시킨 결과다. 여러 장르의 네 편의 단편 영화를 엮은 '페르소나'의 축소판 같기도 하다.

힘차게 '좋은 날'을 부르고 새침하게 '삐삐'로 선을 긋던 무대 위 아이유의 얼굴은 어느새 옅어지고, 본연으로 돌아간 이지은이 됐다. 어떻게 보면, 인생 캐릭터라 호평 받은 ‘나의 아저씨’의 이지안보다 난제다. 회색빛으로 일정하게 유지돼 하나의 톤을 이어나가면 되는 이지안과 달리 장만월의 분위기는 이리저리 날뛴다.

하지만 태연하게 새로운 도화지를 펼친 이지은은 호텔 사장으로서 화려한 색의 물감으로 붓질을 해대다가, 금방 연필로 도구를 바꿔 투박하지만 가장 솔직한 도적단의 일원, 한 남자를 마음에 품었던 여자로 유연하게 넘어갈 수 있는 성장에 이르렀다.

[사진 = tvN 제공]

이예은 기자 9009055@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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