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아는 비밀’, 나의 불행이 타인을 구원한다[곽명동의 씨네톡]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동생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아이들과 함께 고향을 찾는 라우라(페넬로페 크루즈). 떠들썩한 결혼식 피로연을 즐기던 중 사랑하는 딸이 감쪽같이 사라진다. 거액의 몸값을 요구하는 메시지를 받은 그는 과거 연인이었던 파코(하비에르 바르뎀)에게 도움을 청한다. 납치와 협박이 가족을 잘 아는 주변인의 소행일 것이라는 의심이 커지면서 모두가 숨겨온 과거의 비밀이 서서히 드러난다.

아쉬가르 파라디 감독의 ‘누구나 아는 비밀’은 교회종탑 시계의 내부를 보여주면서 시작한다. 먼지가 잔뜩 끼어있는 톱니바퀴, 구멍이 뚫려 있는 시계, 구멍을 통해 종탑의 안과 밖을 자유롭게 오가는 비둘기. 영화의 모든 내용을 모두 담아놓은 듯한 오프닝이다. 시간의 더께를 털어내면 작은 틈 사이로 진실이 드러난다는 것. 누구나 그 틈을 알고 있고, 드나들 수 있다는 것. 그러나 정작 비밀의 당사자만 까맣게 모른다.

납치되기 전에 라우라의 딸은 종탑에 올라가 어떤 남자와 장난을 치다가 갑작스럽게 종을 친다. 그 종소리는 지난 16년간 지켜졌던 비밀의 침묵이 곧 깨질 것이라는 암시다. 납치극이 본격적으로 진행됐을 때, 카메라는 종탑시계의 정면을 비춘다. 저마다 쉬쉬했던 과거의 비밀은 이제 당사자도 알게 될 것이다. 도덕적인 책임감을 갖고 있는 그는 납치극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으로 떠오른다.

이 인물의 불행은 무엇일까. 자신만 ‘진실’을 모른 채 살아왔다는 것. 진실을 아는 사람들이 ‘아무 것도 모르는’ 남자를 이용할 것이다. 엉뚱하게도, 이 남자는 신의 위치까지 오른다. 라우라의 남편 알레한드로(리카도 다린)는 당신 덕분에 결혼 초기 알코울 중독에 빠져 살았던 자신이 살수 있었고, 그것은 신의 계시라고 말한다. 납치극도 신이 해결해줄 것이라고 믿는다. 그 남자는 이제 ‘신’이 되어 사건을 해결해야하는 상황에 처한다.

무엇이 남았는가. 아무 것도 몰랐던 남자는 모든 것을 잃었다. 알레한드로와 라우라는 내내 걱정만 했을 뿐,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목적을 달성하고 유유히 마을을 떠난다. 자신의 불행으로 타인이 구원받은 셈이다. 이것은 과연 이 남자만의 문제인가. 또 다른 누군가도 이같은 역설에 빠질 수 있지 않을까.

감독의 말처럼, 우리는 “복잡한 상황에 휘말린 단순한 존재”일 뿐이다.

[사진 제공 = 오드]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