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혁 "악역 전문 배우? 선한 연기를 더 많이 했어요" [MD인터뷰](종합)

[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악역도 배우 이준혁(36)이 하면 다르다. 섬뜩한 악행을 일삼지만 마냥 미워할 수만은 없는, 묘한 아우라가 느껴진다.

이준혁은 21일 오전 서울시 강남구 신사동 모처의 한 카페에서 전날 종영한 케이블채널 tvN 월화드라마 '60일, 지정생존자'(극본 김태희 연출 유종선) 종영 기념 인터뷰를 진행해 드라마 비화를 비롯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미국 드라마 '지정생존자'를 리메이크해 드라마 팬들의 설렘을 자아냈던 '60일, 지정생존자'는 갑작스러운 국회의사당 폭탄 테러로 대통령을 잃은 대한민국에서 환경부 장관 박무진(지진희)이 60일간의 대통령 권한 대행으로 지정되면서 테러의 배후를 찾아내고 가족과 나라를 지키며 성장하는 이야기를 담아냈다.

원작의 배경인 미국과 판이하게 다른 정치 제도, 외교적 환경, 국민 정서 등 한국 실정에 맞는 로컬화로 시청자들의 구미를 당겼던 '60일, 지정생존자'는 극중 'VIP' 정체에 대한 궁금증을 마지막까지 자아내며 자체 최고 시청률인 6.2%(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전국 기준)로 종영했다.

이 가운데, 이준혁은 테러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기적의 생존자, 해군 출신 국회의원 오영석을 연기했다. 타고난 리더십과 생존자라는 휴먼 스토리 덕에 최고의 정치 스타로 떠올랐던 오영석은 점차 내포하고 있던 서늘한 권력욕을 끄집어냈고, 추악한 끝을 향해 내달렸다. 전우를 잃은 슬픔으로 국가에 대한 원망을 지니고 테러에 공모했으나 결국 죽음이라는 최후를 맞이하며 14회에서 퇴장했다.

이와 관련해 이날 이준혁은 "더 빨리 죽었으면 어땠을까 싶다"라며 의외의 생각을 전했다. 그는 "오영석은 넓게 보면 박무진의 성장에 동력이 되는 캐릭터다. 박무진이 활동을 멈출 때 오영석이 강해졌고, 박무진이 성장했을 때는 오영석이 밀려나는 구도였다. 그 밸런스를 맞추려고 노력했다. 오영석은 사실 서사가 많이 그려진 인물이 아니었다. 박무진이 카리스마를 갖게 됐을 때, 오영석은 사라져도 되는 그림자 같은 인물로 느껴서 확 사라지길 원했다"라고 말했다.

"인물이 너무 정확하게 표현되는 건 좋아하지 않아요. 차이가 있겠지만, 오영석은 여백의 미가 있어야 했어요. 해전 등의 장면이 다 표현되면 오영석의 드라마지, 박무진의 드라마가 아니니까요. 그러면 시청자 분들이 오영석에 감정 이입을 하게 됐을 거예요. 다 따져 보면 누구나 사연이 있고, 좋은 인물이니까요. 만약 드라마가 길었다면 오영석도 깊게 설명할 수 있겠지만, 박무진의 성장기로 표현해야 했기 때문에 오영석의 정보를 많이 내보이기보다는 스피디하게 다루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강렬하고 섬뜩한 야심, 이를 뒷받침해주는 폭발적인 행동력, 그러나 이면에 깔린 불안함과 초조함까지. 섬세한 연기력으로 오영석의 캐릭터성을 극대화시킨 이준혁의 연기에 호평이 쏟아졌다. 2017년 작품인 케이블채널 tvN 드라마 '비밀의 숲'이 대표작이었던 그에게 인생 캐릭터 갱신이라는 기분 좋은 칭찬도 이어졌다.

"고맙습니다"라며 웃음을 짓던 이준혁은 "작품이 흥행하든, 안 하든 다시 올 수 없는 시간이다. 돌아보면 미흡했더라도 제일 소중한 시간이었다. 가장 최근 작품은 '60일, 지정생존자'이기 때문에 과거는 의미가 없다"라며 "저는 옛날 생각을 잘 안 한다. 휴대폰으로도 사진을 잘 안 찍는다. 가끔 찍고 옛날 사진을 보면 너무 슬프다. 그래서 뒤를 잘 안 돌아본다. 기억력도 안 좋은 것 같다. 언젠간 돌아볼 날이 오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꽃미남 정치 신인 캐릭터 설정에 걸맞게 말끔하고 수려한 외모를 자랑했던 이준혁. 그의 등장에 여심은 흔들렸다. 일각에서는 "그의 외모 때문에 미워할 수가 없다"라는 우스갯소리도 흘러나왔다. 이를 듣던 이준혁은 민망한 듯 웃음을 터뜨리더니 "외모라는 건 누가 어떻게 봐주냐에 따라 다르다. 멋있게 봐주시는 분들의 마음이 따뜻한 거다. 사실 외모는 트렌드처럼 돌고 도는 거다. 사람들이 나누는 취향도 세분화된 것 같다. 오히려 예전보다 다양해지고 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는 시기가 돼서 저도 사랑을 받는 게 아닌가 싶다"라며 부끄러워했다.

현장 분위기가 여느 때보다 최고였다며 만족감을 표현한 이준혁은 "사람들끼리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그래서 이 드라마에 애착이 간 것도 있다. 오영석은 자주 못 봐서 왕따 같았다.(웃음) 이런 자리에서 사람들을 많이 못 봐서 아쉽긴 하다. 그래도 좋은 분위기가 너무 중요했다. 사실 저는 '비밀의 숲' 때도 전화기와 연기를 많이 했었다. 이번엔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해서 제 상대 배우는 감독님이었다.(웃음) 오영석 캐릭터 자체가 외롭기 때문에 일부러라도 연락을 따로 하려고 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지진희 선배님은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깔끔하세요. 이렇게 말하면 웃길 것 같은데, 요즘 사람 같아요. 세련 됐고 편해요. 어떻게 보면 또 친구 같고 유쾌하시고 심플하시거든요. 박무진과 비슷한 것 같아요. 그래서 호흡이 더 잘 맞았던 것 같다. 물론 많이 못 뵈었지만. 저는 세 번 이상 뵌 배우들이 드물었던 거 같아요. 하하."

지난 2007년 단막극 '드라마시티-사랑이 우리를 움직이는 방식'으로 데뷔해 어느덧 데뷔 13년차가 된 이준혁은 쉼 없이 달렸다. 드라마 '조강지처 클럽', '그들이 사는 세상', '시티홀', '수상한 삼형제', '시티헌터', '적도의 남자', '파랑새의 집', '맨몸의 소방관', '비밀의 숲', '시를 잊은 그대에게', 영화 '신과함께' 시리즈, '언니'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다수의 작품에 출연하며 대중에게 두루 사랑 받는 배우가 됐다.

다만 '적도의 남자', '비밀의 숲'에서 새긴 인상이 강렬했던 탓에 '악역 전문 배우'라는 오해(?)도 받곤 했다. 이준혁은 "사실 저 악역 되게 적게 했다. 오히려 선한 역을 훨씬 많이 했다"라며 억울한 표정을 짓더니 "'적도의 남자'에서 이장일을 연기할 때도, 제가 김선우(엄태웅/이현우)의 뒤통수를 때리지 않았다. 임시완(이장일 아역) 씨가 친 거다"라며 농담했다.

"'비밀의 숲'의 서동재는 블랙 코미디 느낌의 현실 풍자형 캐릭터다. 오영석은 정반대의 위치에 있는, 현실에 밀착해있지 않은 캐릭터에요. 사실 서동재는 악역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오히려 마지막엔 친구 같았잖아요. 또 따지고 보면 영화 '신과 함께2'도 사연 있는 캐릭터에요.(웃음) 총은 원동연(도경수)이 쐈잖아요. 그 전까지 제 캐릭터는 열심히 잘 살고 있었거든요. 오히려 오영석이 제 캐릭터 중 가장 악역에 가까웠다고 생각해요. 대부분 주인공 캐릭터에 이입을 하기 때문에 이에 반하는 캐릭터를 하거나 대척점에 강하게 서면 악역으로 여길 뿐이죠."

여러 장르에 도전한 덕에 "해보지 않은 장르가 얼마 안 남았다"면서도 "로맨스를 해보고 싶긴 하다"라고 너스레를 떤 이준혁은 "로맨틱 코미디를 다시 해봐도 재미있을 것 같다. 제가 한번도 실장님 역할을 한 적이 없는데 한 줄 아시더라. 이왕 오해받을 거면 하는 게 낫지 않겠나"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저는 새로운 캐릭터들을 만날 때마다 새로운 친구를 만나는 느낌으로 연기해요. 같은 편에 서서 같이 가는 캐릭터도 있고, 제 생각과 캐릭터의 생각이 맞지 않아서 내면적으로 싸운 적도 많아요. 싸우다 보면 마지막엔 지치고 허무하기도 해요. 이후 그 친구를 떠나보내고 새로운 친구를 만나요."

연신 유쾌한 면모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주도한 이준혁은 인터뷰 말미 "최종회에서 자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해서 다행이다. 이렇게 현장이 좋을 수 있나 싶을 정도로 사람들과의 호흡이 너무 좋았다. '좋은 반응은 이러한 호흡에서 얻는구나'를 확신하게 됐다. 많은 분들이 우려했지만 귀 기울여서 공감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라며 다시 한번 시청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며 마무리했다.

한편, 이준혁은 휴식을 취한 뒤 차기작 준비에 돌입할 예정이다.

[사진 = 에이스팩토리 제공]

이예은 기자 9009055@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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