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스터데이’, 비틀즈의 ‘렛 잇 비’는 왜 불려지지 않았나[곽명동의 씨네톡]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대니 보일 감독의 ‘예스터데이’는 어느날 갑자기 전 세계 사람들이 ‘비틀즈’를 모르게 되고, 오직 무명가수 잭(히메쉬 파텔)만이 비틀즈를 기억하면서 벌어지는 로맨틱 코미디입니다. 잭은 비틀즈 노래를 불러 일약 스타덤에 오르지만, 자신을 헌신적으로 도와준 여자친구 엘리(릴리 제임스)와는 멀어지게 됩니다. 사랑과 우정 사이에서 흔들리는 잭은 과연 엘리와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어바웃 타임’의 리처드 커티스가 각본을 쓰고, ‘워킹 타이틀’이 제작한 이 영화는 ‘비틀즈가 로맨틱 코미디를 만났을 때’ 벌어질 법한 이야기를 시종 흥미진진하게 그려냅니다. 잭이 ‘예스터데이’를 감미롭게 부르자, 친구들이 이렇게 멋진 곡을 언제 만들었냐고 감동하는 장면은 웃음을 자아냅니다. 비틀즈의 가사를 최대한 기억해 내려고 애쓰는 잭의 모습도 인상적이죠. 워킹 타이틀 영화에 늘 등장하는 장난기 많은 친구들도 웃음을 짓게 합니다.

‘비틀즈에게 보내는 러브레터’라고 할 수 있는 이 영화엔 숱한 명곡이 흘러 나옵니다. 한 영화에서 이렇게 많은 비틀즈 노래를 듣는 건 영화사상 최초입니다. 잭은 ‘예스터데이’를 시작으로 ‘인 마이 라이프’ ‘쉬 러브즈 유’ ‘헤이 쥬드’ ‘올 유 니드 이즈 러브’ ‘헬프’ 등 무려 15곡을 부릅니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밴드의 음악을 이토록 유쾌하고 사랑스러운 로맨틱 코미디로 감상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렛 잇 비’가 불려지지 않았다는 겁니다(물론, 제작진이 비틀즈 측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이 노래를 포함시키지 않았을 수도 있습니다). 잭이 부모님 앞에서 부르다가 몇 차례 중단되죠. 이 장면 역시 워킹 타이틀 영화 특유의 코미디가 숨쉬고 있습니다. 잭이 레오나르도 다 빈치가 ‘모나리자’를 그리는 순간과 맞먹는 위대한 노래를 부르는데, 주변 인물들은 자꾸 흐름을 끊고, 지연시킵니다.

When I find myself in times of trouble

내가 곤경에 처했다는 걸 깨달을 때면

Mother Mary comes to me

나의 어머니 메리가 나에게 다가와

Speaking words of wisdom

지혜의 말들을 들려주곤 해

Let it be

순리에 맡겨보라고

‘어바웃 타임’에서도 알 수 있듯, 리차드 커티스는 예기치 않은 능력이 생긴 사람이 순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다 갈등을 겪거나 위험에 빠지는 이야기를 다룹니다. ‘어바웃 타임’의 모태솔로 팀(돔놀 글리슨)은 시간을 되돌리는 능력을 자주 사용하면서 사랑에 균열이 일어나게 되죠. 잭 역시 비틀즈 노래를 혼자만 부를 수 있다는 특별한 능력을 과도하게 즐기다 엘리와의 관계에 금이 가기 시작합니다.

잭이 부모님과 지인들의 방해로 ‘렛 잇 비’를 부르지 못하는 건, 그가 노래 제목처럼 순리대로 살지 않기 때문이겠죠. 비틀즈의 명곡을 자신이 작곡했다고 대중을 속이는 일은 누가 보더라도 부도덕한 일이니까요. 그가 위기를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렛 잇 비’의 가사를 실천하는 거겠죠. “흐르는 대로 놔둔다면, 그들이 비록 헤어지게 된다 해도 여전히 그들에겐 다시 만날 기회가 있어.”

잭이 외롭고 쓸쓸한 여성의 죽음을 노래한 ‘일리노어 릭비’의 가사를 끝내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사랑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리차드 커티스 영화의 특성을 감안하면 이해되는 설정이죠. 그런 의미에서 ‘올 유 니드 이즈 러브’가 중요한 대목에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흐름입니다. 리차드 커티스의 ‘러브 액츄얼리’에서도 이 노래는 영화의 메시지로도 사용됐죠.

비틀즈가 옳았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사랑 뿐입니다.

[사진 제공 = UPI]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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