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 타란티노 감독의 통쾌한 펄프적 감성[곽명동의 씨네톡]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이 과거 할리우드 영화에 바치는 러브레터다. 먼저, 제목부터 세르지오 레오네 감독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더 웨스트’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떠올리게 만든다. 몰락해가는 서부영화의 카우보이 릭 달튼(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이 이탈리아에서 성공하는 이야기 역시 당시 유행했던 ‘스파게티 웨스턴’의 영향력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타란티노 감독은 러브레터에 영화 역사에서 사라지고 잊혀진 영화인들에 뜨거운 헌사를 담았다. 서부영화에서 주로 악역을 연기하는 릭 달튼은 점차 퇴물로 취급받는 인물이다. 그의 단짝 친구로 일하는 스턴트맨 클리프 부스(브래드 피트) 역시 브루스 리(마이크 모)와 결투를 벌였다가 해고 통보를 받는다. 할리우드에서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 이들은 등을 떠밀려가며 이탈리아로 떠났다가 6개월 뒤인 1969년 8월 8일 귀국한다.

릭 달튼의 옆집에는 로만 폴란스키 감독과 여배우 샤론 테이트(마고 로비) 부부가 살고 있었다. 임신 8개월이었던 샤론 테이트는 이날 광신도 집단 찰스 맨슨 패밀리에게 무참히 살해 당했다. 타란티노 감독은 그의 장기인 ‘펄프적 감성’을 살려 역사적 현실과 영화적 상상을 절묘하게 결합시켜 짜릿한 쾌감을 폭발시킨다. 그는 1969년의 실제 시간에 ‘평행우주론’을 끌어 들여 또 다른 ‘영화적 현실’을 통쾌하게 구현했다.

세 명의 주인공(릭 달튼, 클리프 부스, 샤론 테이트)과 찰스 맨슨 패밀리가 대중문화를 대하는 태도는 이 영화의 지향점을 선명하게 드러낸다. 릭 달튼은 알코울 중독에 빠진 한물 간 액션스타이긴 하지만, 좋은 연기를 갈망하는 인물이다. 예고편에도 나왔듯, 어떤 소녀 배우에게 최고의 연기라는 칭찬을 받고 그는 눈물을 흘린다. 이탈리아에서 싸구려 영화를 찍는다며 투덜투덜 하면서도 정작 현지에선 스파게티 웨스턴을 즐기고, 가정도 꾸린다.

클리프 부스는 이 영화가 추구하는 방향을 뚜렷하게 드러내는 캐릭터다. ‘펄프(Pulp)’의 사전적 의미는 ‘(특히 부드럽게 으깨어서 만든) 걸쭉한 것’을 뜻한다. 그가 반려견에게 주는 음식은 펄프의 형태로 이뤄졌다. 클리프 부스는 펄프를 먹여 키우는 반려견과 환상의 호흡을 맞춘다. 이탈리아의 질 낮은 영화에 반감을 갖고 있던 릭 달튼과 달리, 새로운 도전이라고 반기는 클리프 부스는 싸구려로 취급받는 대중문화를 즐겁게 받아 들인다.

샤론 테이트는 역사적 실존 인물이지만, 이 영화에선 사실과 허구 양쪽에 걸쳐 있다. 그는 LA의 한 극장에서 자신이 출연한 영화를 관람한다. 시커먼 발바닥을 앞좌석에 올린 채 자신의 우스꽝스러운 연기에 혼자 웃음을 터뜨리고, 함께 웃는 관객들을 둘러보며 기뻐한다. 그러니까 릭 달튼, 클리프 부스, 샤론 테이트는 당시 미국 대중문화의 근간을 이룬 ‘펄프 픽션(선정적인 소재를 전형적으로 다루는 싸구려 대중소설)’ 세계를 즐기는 인물들이다.

반면 찰스 맨슨 패밀리는 이들과 정반대의 입장을 취한다. 그저 허구로 받아들이고 재미를 느끼면 될 대중문화를 심각하게 받아들여 현실과 혼돈을 일으킨다(실제로도 이들은 찰스 맨슨 음악을 비판했던 프로듀서 테리 멜처를 살해하려 했으나, 엉뚱하게 샤론 테이트의 목숨을 앗아갔다). 영화에서 그들이 응징하고 싶어하는 대상을 고르는 이유도 궤변에 가깝다. 타란티노 감독은 ‘가벼움의 세계’를 ‘무거움의 세계’로 받아들인 찰스 맨슨 패밀리를 ‘영화적으로’ 단죄한다.

2019년은 ‘펄프픽션’이 칸 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지 25주년인 동시에 역사상 최악의 폭력을 저지른 나치를 응징했던 영화 ‘바스터즈:거친 녀석들’이 개봉한지 10주년이 되는 해이다. 타란티노 감독의 9번째 작품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는 ‘펄프픽션’의 감각으로 ‘바스터즈:거친 녀석들’의 분노를 재료로 삼아 영화인을 폄훼하는 세력에게 ‘영화적 복수’를 실행하는 작품이다. 그가 은퇴작이라고 예고했던 10번째 영화는 어떤 모습으로 찾아올까.

타란티노 감독의 ‘펄프적 감성’은 더욱 뜨거워질 것이다.

[사진 = 소니픽처스]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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