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럼의 마왕' 잠들다, 진저 베이커 타계[추모글]

[김성대의 음악노트]

"모든 록 드러머들은, 비록 자신이 깨닫지 못하고 있다 해도 어떤 식으로든 진저 베이커에게 영향을 받아왔다." - 닐 퍼트(러쉬)

"그는 위대한 드러머였고, 그 시절 우린 모두 크림의 팬이었다. ‘sunshine of your love’는 엄청난 곡이었다." - 브라이언 윌슨(비치 보이스)

10월 6일, 진저 베이커가 사망했다. ‘드럼의 마왕’으로 불렸던 그. 진저는 화제작 <조커>에 삽입돼 화제가 된 ‘White Room’을 남긴 록 트리오 크림(Cream)의 드러머였다. 한땐 나이지리아의 영웅 펠라 쿠티와 아프로 비트를 탐닉했고, 진저 스스로는 언제나 재즈 드러밍에 심취했다.

진저 베이커는 단순한 록 드러머가 아니었다. 세간이 그를 ‘최초의 슈퍼스타 록 드러머’라 부른 건 그가 록 밴드에 몸담고 있어서였지 그의 드러밍이 록을 지향했기 때문은 아니다. 진저의 드럼은 언제나 스윙을 머금고 있었고 비밥과 하드밥 사이를 또 아슬아슬 넘나들었다. 그는 게리 무어를 불러 또 다른 크림을 만들 줄도 알았지만 빌 프리셀, 찰리 헤이든 같은 재즈 뮤지션들과도 기탄없이 어울릴 수 있는 드러머였다. 진저는 에릭 클랩튼과 잭 브루스가 아니어도 웨스 몽고메리, 폴 챔버스와 함께 블루노트에서 팀을 꾸려도 됐을 만큼 재즈를 알았다. 진저가 살아서 그의 드럼 독학에 약간의 여백을 만들어준 필 시멘을 비롯해 아트 블래키, 맥스 로치, 엘빈 존스, 필리 조 존스, 베이비 돗즈 등을 영향 받은 드러머들로 언급한 이유도 다 그래서였다. 록과 재즈, 그리고 아프로 비트. 혹자의 말처럼 진저는 때문에 어떤 장르로부터도 자유로운 ‘저스트 드러머’였을지 모른다.

귀신같은 날(生) 드러밍을 들려준 존 본햄(레드 제플린)의 ‘Moby Dick’보다 3년 앞서 록 드럼을 부검한 ‘Toad’는 진저 베이커 하면 반드시 소환되는 곡이다. 그리고 이 곡은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의 플리가 진저를 추모하며 왜 ‘자유와 야성’을 언급했는지에 대한 가장 합당한 근거다. 그것은 고작 네 살 때 [Wheels Of Fire]를 들은 데이브 롬바르도(슬레이어)가 태어나 처음으로 접한 더블 베이스 드러밍의 첫 사례였다. 치밀하고 혁신적인 리듬의 서사를 바람 같은 폴리리듬에 실어 조직적인 콤비네이션 필인에 모조리 쏟아 넣은 그 연주 앞에서 무참했을 이는 롬바르도 외 스튜어트 코프랜드(폴리스), 빌 브루포드(킹 크림슨), 닉 메이슨(핑크 플로이드)이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사람들은 진저 베이커의 플레이에 ‘Wild’라는 수식어를 즐겨 쓴다. 실제 그렇다. 진저의 드러밍엔 야성이 넘치고 그의 꼼꼼한 터치는 한 결 같이 거칠다. 동시대 진저에게 필적할 만한 드러머는 지미 헨드릭스의 친구 미치 미첼 정도 말곤 없었다. 그래서 나는 ‘드럼의 마왕’보단 ‘드럼의 야생마’라고 그를 부르고 싶다. 만성 폐쇄성 폐 질환과 관절염을 앓아오다 2016년 심장 절개 수술까지 겪은 끝에 끝내 눈을 감은 위대한 드러머. 20일 뒤 다섯 번째 기일을 맞는 우리네 마왕이 자신의 영웅이었을 진짜 마왕을 저 세상에서 영접할 상상을 하니 한 편으론 흐뭇하고 한 편으론 서글프다. 세계 드럼계에 큰 별이 졌다.

*이 글은 본사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미디어팜에도 실렸습니다.

필자약력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마이데일리 고정필진

웹진 음악취향Y 필진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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