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설리에게, 너무 늦게 진리에게…미안해 [이승록의 나침반]

[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어떤 글도 위선 같고, 모든 말이 변명 같다. 썼다 지웠다 반복만 했다. 무슨 말을 해도, 이미 모든 게 늦었고 달라질 게 아무 것도 없단 현실이 참담하다. 그런데도 위선 가득한 변명을 기어코 늘어놓기로 한 건, 침묵이 지금 가장 비겁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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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보이길 바랐다. 직접 기사를 쓰면서도 차라리 '오보 기자'가 되길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기사가 사실과 어긋나지 않았단 사실은 너무나도 절망적이었다.

진리이자 설리는 아픈 손가락 같은 연예인이었다.

f(x) 활동 막바지엔 열심히 춤추지도 않았고 사생활로 이슈를 만들어 팬들을 속상하게 했다. 그래도 탈퇴 전만 해도 설리가 f(x)에서 어떤 상징인지 알기에, 어린 나이에 연예인이 돼 자유로운 생활을 얼마나 갈망했을지 알기에, 무대에서 최선 다하지 않아도 이해하고 감싸려 했다.

하지만 설리는 결국 작별 인사도 않고 f(x)를 떠났고, 논란은 신경도 안 쓴다는 듯 SNS 활동은 더 자유분방해졌다. '그래, 이제 그렇게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잘 살아라' 하는 마음, '어쩜 그래도 f(x) 팬들에게 한마디 말도 없나' 하는 애증, '그렇게 자유롭게 살더라도 시간 지나 나중에 꼭 오해 풀고 f(x) 팬들과 화해했으면' 하는 바람이 설리를 보며 맴돌았다.

그래서 잘 사는 줄 알았다. 잘 살 줄 알았다. 주변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대로 마음껏 신나게 뛰노는 줄 알았다. 내 교만이었다.

돌이켜 보면 설리가 외롭고 힘들다고 여러 번 호소했는데, 다 놓쳤다. 웃는 얼굴로 '내 편이 되어 달라'고 말할 때, 도리어 지난 날 들추며 꾸짖기만 했다. 밝은 미소 뒤에 속은 얼마나 힘들고 지쳤을지, 공감할 마음조차 못 냈다.

후회만 남는다. 나 역시 잘못을 하고 실수도 하고 다른 이들에게 상처도 주는데, 뭐 그리 잘났다고 그 어린 아이의 고통을 알아채지도 못한 채 함부로 글을 써댔는지 후회뿐이다.

혼자 많이 힘들었을 텐데 '괜찮다'고, '그래도 세상에는 행복한 일 투성이'라고, '널 사랑하는 사람 무척이나 많다'고, '싫어하는 사람들 마음에 굳이 들어갈 필요 없다'고, 글로 안아주지 못해 너무 미안하다. f(x)가 팬들에게 소중한 그룹이 될 수 있었던 데에 설리의 역할이 컸다는 거 잘 알고 있음에도, 칭찬 한번 안해주고 모른 채 외면했던 게 미안하다.

설리보다 어른으로서, f(x)의 푸른 시기를 봤던 기자로서, 지난 날은 잊고 앞으로 서로의 길에서 각자 잘 살아가자고 다독여줄 걸, 모든 게 늦어버려 공허한 이 글자들에게서 아무 가치도 의미도 느껴지지 않는다.

f(x) 시절, 음악방송 대기실 인터뷰를 갔다가 본 설리가 기억난다. 리더 빅토리아는 컴백 날이라 정신 없었고, 엠버와 루나는 웃으며 반겼으며, 크리스탈은 표정은 시크해도 눈빛은 달가워하며 아는 체했다.

그리고 그때 설리는 구석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설리답다. 아직 너무 어렸고, 더 살갑게 돌봐줄 필요가 있던 아이. 인터뷰하겠다며 툭툭 건드려 깨워서 인사를 건네자, 설리는 특유의 미소로 환하게 웃으며 "안녕하세요" 했다.

두고두고 미안해서 못 잊을 미소. 나도, 우리도 오래오래 지켜주지 못한 미소. 이제 와 누구를 탓해도 돌아오지 않을 설리의 미소. 들리진 않겠지만, 부디 그곳에선 아프지 말고 환히 웃기만을 염원한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사진 = 마이데일리 사진DB]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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