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소원의 프리즘] '82년생 김지영' 공감 반응, 왜 부정당해야 하나

[마이데일리 = 신소원 기자] 좋은 문화는 다양성을 존중하는 데서 나온다. 다양한 시각들을 마냥 덮어둔 채 존중하지 않을 때, 이는 폭력이 된다.

영화 '82년생 김지영'(감독 김도영 배급 롯데엔터테인먼트)의 원작, 영화화 과정, 개봉까지 일련의 과정을 지켜본 기자로선 매우 새로운 느낌이 든다. 하나의 작품을 통해 담론을 형성하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과정들이 꽤 건설적이다가도, 맹목적으로 비난하는 악플에 갸우뚱하게 된다.

그렇다. 나는 '여자'의 성별을 가진 기자다. 지난 수 년 간 굳이 '여기자'라고 밝힐 이유는 그 전의 어떤 기사에서도 없었지만, 이 기사에서는 댓글에 분명 '여기자'라는 말이 나올 것이므로 내가 먼저 밝힌다.

최근 '젠더(Gender) 이슈'의 바람을 타고 논란으로 번진 '82년생 김지영'은 배우 정유미, 공유가 캐스팅되고 영화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을 당시부터 큰 이슈로 더욱 불씨가 당겨졌다. 정유미의 SNS에는 "실망이다", "너도 페미였네" 등의 댓글이 도배를 이뤘고, 차마 글로 쓸 수 없는 욕설 댓글, 명예훼손적인 악플들이 가득찼다. 곳곳에는 정유미를 응원하는 글도 있었지만 강렬한 욕설 댓글이 이를 잠식했다.

우여곡절 끝에 제작보고회, 그리고 대망의 언론시사회를 통해 '82년생 김지영'은 처음 공개됐다. 기자로서 대부분의 영화를 무표정으로 팔짱을 끼고 영화를 봐야하는 자세를 취해야 할 터이지만 '82년생 김지영' 시사회에는 누구나 느끼고 있는 묘한 긴장감이 흘렀다. '어떻게 젠더 이슈를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그릴 수 있을 것인가', '너무 이상하게 나오지만 않았으면 좋겠다' 등의 반응 속에 공개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조남주 작가의 동명 소설 '82년생 김지영'과는 같지만 다르다. 김도영 감독에 의해 만들어진 영화 '82년생 김지영'은 좀 더 밝고, 그 안에서 극적 장치들을 곳곳에 뒀다. 그 장치가 바로 가족이다. 원작 소설에서는 김지영 1인칭 시점으로 어두운 면들이 그려졌다면, 상업영화로 만들어진 김지영은 가족들과의 관계성, 김지영의 여러 상황들을 곁에서 지켜보는 것처럼 그렸다.

'82년생 김지영'에서는 소위 말하는 '악역'이 없다. 극 중 유모차를 끌고 공원에 나온 지영(정유미)을 바라보는 직장인들이나, 대현(공유)의 직장 남자 동료들이 말하는 '육아맘' 발언들은 자신이 그 일을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들은 성별을 나눈 악역이라기보다는 모르기에 덮어두고 하는 말들이다. '82년생 김지영'이 성별을 나눈 영화가 아니라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장면은 이외의 곳에서 나온다.

영화 속에서 지영이 공원이나 카페에서 만난 직장인들 중 미혼 여성 직장인은 "나도 결혼이나 할까"라며 지영의 모습을 부러워한다. 단역 캐릭터로 그려진 직장인의 모습에서, 미혼 여성 직장인들이 한 번쯤 생각해봤을 이야기를 툭 던지는데 이또한 잘 모르고 하는 말이다. 점차 전개되는 상황 속에서 결국 터질 것이 터진다.

'맘충'

한 남성은 지영에게 '맘충'이라는 단어를 쓴다. 지영은 "내가 벌레예요?"라며 그를 향해 반문한다. 어쩌다 혐오하는 단어의 뒤에 자연스레 따라붙는 '~충'이라는 단어는 '혐오의 시대'를 굳이 말하지 않아도 체감하게 한다.

'82년생 김지영'은 어쩌면 나였거나 주변의 동생, 언니, 아내, 혹은 엄마의 이야기일 수 있다. "82년생들은 그렇게 살지 않았다. 62년생 엄마였다면 모를까"라고 주장하는 이들에게 묻는다.

영화 시사회를 본 기자들 중 그런 삶을 직접 살아온 기자가 있다. 그들의 삶은 왜 부정되어야 하는가.

영화는 이제 대중들에게도 개봉돼 많은 담론이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부디 성별을 막론하고, 다양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싸우기보다는 발전적인 방향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길 바라본다. 그것이 문화의 힘 아니던가.

[사진 = 롯데엔터인먼트 제공]

신소원 기자 hope-ssw@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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