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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디 맥베스', 여자는 왜 신화가 되었나 [이승록의 나침반]
20-03-1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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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마이데일리 = 이승록 기자] 영화 '레이디 맥베스'는 어쩌면 '하나의 신화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89분의 러닝타임이 끝나자, 마치 플로렌스 퓨를 소재로 삼은 거대한 회화전(繪畫展)을 감상하고 빠져나온듯한 착각에 놓였다.

윌리엄 올드로이드 감독의 극도로 정적인 카메라가 만든 시선과 구도 탓이었다. 장면마다 일부러 배치한 일순간의 '정지 상태'는 마치 감독이 '이 그림을 잠시 감상해보라'고 권유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게다가 냉소와 흥분을 오가는 플로렌스 퓨의 연기는 차분하고 묵직하면서도, 그 표정의 변화가 무척이나 섬세하고 미묘해서, 굉장히 예민한 그림을 마주했을 때 같은 긴장감까지 일으켰다.

평면에 흐르는 이야기는 꽤 잔혹했다. 욕망에 사로잡힌 여인 캐서린(플로렌스 퓨)이 결국 광기에게도 사로잡혀 스스로 파멸한다는 내용이었다.

다만 이 영화가 본질과 다르게 일종의 회화처럼 보이듯, 사실 이 영화의 이야기 역시 그 본질과 다르게, 어쩌면 '하나의 신화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캐서린은 일종의 '신화 속 혁명가'였던 것이다. 남성의 권력이 절대적이고 남성에게 복종해야만 하는 세계에서 여성의 자유와 기회는 소멸 상태였다. 애초에 주어진 적도 없으니 박탈된 것도 아니었다.

그 세계에서 캐서린은 인간이자 여성 내면의 당연한 본능을 꺼냄으로써, 여성도 누릴 수 있는 자유와 기회를 획득하고자 했다. 집밖으로 나가 마음껏 바람을 맞으며 뛰어다닐 수 있는 권리, 먹고 싶은 대로 먹고, 자고 싶은 대로 잘 수 있는 자유, 그리고 그게 누구든 사랑하고 싶은 만큼 사랑할 수 있는 영광을 말이다.

그래서 캐서린이 남편 알렉산더와 시아버지 보리스를 죽인 행위는 신화적 측면에서 보면 여성에게 내려져 있던 '구속'과 '억압'의 제거이며, 동시에 여성의 '자유'와 '기회'의 성취로 읽혀진다.


반면 캐서린과 상극에 자리한 하녀 안나는 '순응하는 자'였다.

신분을 차치해놓고 봤을 때, 안나는 철저히 남성의 권력에 기대고 남성의 명령에 따르는 여성이었다. 캐서린을 은근히 무시하는 안나의 태도나 캐서린의 비밀을 밀고하는 안나의 행위는 남성의 권력에 순응함으로써, 안나 자신이 마치 그 권력인양 동일시했기 때문이었다.

안나가 결정적인 순간 진실을 말하지 못한 것도 권력에 저항할 줄 모르는 '순응하는 자'였던 이유에서다. 남성의 권력을 제거한 캐서린이 안나에겐 새롭게 순응해야 할, 결코 거역할 용기를 품을 수 없는 또 다른 권력자였을 뿐이다.


하지만 '레이디 맥베스'란 신화는 캐서린의 파멸로 결말 난다. 모든 신화가 그러하듯 금기를 어긴 까닭이다. 두 가지 금기였다. '죄악을 범하지 말고, 사랑을 의심하지 말라.'

'죄악을 범했다.'

캐서린이 죽인 두 명의 남성은 '구속'과 '억압'의 제거로 여성의 '해방'을 상징했으나, 마지막에 남자아이를 죽인 행위는 욕망에 매몰돼 저지른 '죄악'이었다. 자유에도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선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망각한 채 본능적 욕망에만 빠져 돌이킬 수 없는 죄악을 범한 캐서린이다.

'사랑을 의심했다.'

파멸은 캐서린의 예언이기도 했다. 그녀가 세바스찬에게 "날 사랑해? 날 사모해? 나 없이 살 수 있어?" 물으며 "내 마음을 의심했다간 가만 두지 않을 거야"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이는 '파멸의 예언이자 저주'였다.

그러나 캐서린이 이 같은 질문을 세바스찬에게 던짐으로 인해 역설적이게 '사랑을 의심한' 건 캐서린 자신이 되었고, 그녀가 내뱉은 말처럼 파멸의 예언과 저주는 화살을 캐서린에게 돌리고 말았다.


마침내 다다르는 '레이디 맥베스' 회화전의 마지막 전시는 캐서린이 홀로 소파에 누운 채 침묵하는 그림이다. 소설에선 이후의 이야기가 그려지지만, 윌리엄 올드로이드 감독은 홀로 남은 캐서린을 영화에 그려 넣은 채 신화를 마무리한다.

거기에는 잔혹하고 아름다운 신화가 된 여자의 그림이 있다.

본능적으로 자유를 갈망해 권력을 살해하고 혁명가가 되었으나, 욕망에 잠식되어 사랑까지 파멸시킨 고독한 여자의 초상화다. 그러나 어쩌면 이 그림은 사랑을 잃고 영혼마저 전소된, 한때 신화였던 여자의 정물화(靜物畫)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사진 = '레이디 맥베스' 포스터, 스틸]
이승록 기자 roku@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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