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고 있습니까' 이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MD리뷰]

[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 달콤이라고는 없는, 그저 살벌한 멜로다.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하지 못해 괜히 여자애 머리를 잡아당기고 치마를 들춰내 골탕 먹이는 남자애들이 있었다. 이 행위들이 어린 시절의 귀여운 치기로 받아들여졌던 때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2020년이다. 어린 아이들의 행동도 주의를 요망하고 있는 현 시기에, 2000년대 초반에나 먹힐 법한 방법으로 로맨스를 그려내니 불쾌하기 그지없다. 좋아한다면서 소리만 바락바락 질러댄다. 오는 25일 개봉하는 영화 '사랑하고 있습니까'(감독 김정권)는 어느 시대로까지 역행할 작정일까.

스토리는 간단하다. 치매를 앓고 있는 홀어머니(고 전미선)를 모시고 힘겹게 삶을 살아가고 있는 소정(김소은)은 승재(성훈)가 운영하고 있는 카페 아르바이트생이다. 파티쉐를 꿈꾸며 케이크 개발에 집중하는데, 승재는 괜히 시비만 걸어대고 모멸적인 인신공격을 쏟아 붓는다. 소정은 황당해하면서도 승재를 짝사랑하고 있어 마음이 아프기만 하다.

이 때, 기묘한 할머니가 하나의 책을 선물하고 떠난다. 질문을 생각하면, 그에 맞는 대답을 내놓는다는 마법의 책이었다. 소정은 어떻게 행동해야할지 모를 때마다 책에 물었고 책은 가이드라인을 제시한다. 그 순간부터 소정과 승재 사이에 관계 변화가 생긴다.

남녀주인공의 로맨스와 청년의 팍팍한 삶까지 아우르겠다는 '판타지 힐링 로맨스'인데, 이 간단한 서사에 수많은 성희롱 및 성차별적인 언행들이 오고가 당혹스럽다. 모태솔로인 소정에게 캐릭터들은 "좀 꾸미고 다녀라", "스커트도 입고 하이힐을 좀 신어라", "여성스럽지가 않다"라고 말하는가 하면, "남자들은 소녀 같으면서도 섹시한 여자를 좋아한다" 등의 말을 농담이랍시고 내뱉는다.

'나쁜 남자' 설정인 승재가 사실은 소정을 좋아하고 있다는 전개를 그려내기 위해 무리수 장면을 연달아 넣었다. 윽박을 지르며 언어폭력을 가하는 것은 물론, 자는 소정의 모습을 '귀엽다는 듯' 몰래 촬영하고, 새벽 2시 40분에 집으로 찾아가 문을 쾅쾅 두드리며 술주정을 부린다. 또 소정이 남성 캐릭터들에게 공격을 당하자 "네가 잘못해서 그런 거 아니냐"라며 화살을 소정에게 돌린다. 이 모든 만행은 차가운 외형 속 따뜻한 '진심'으로 포장된다.

도무지 소정이 승재를 왜 좋아하는지 공감도, 이해도 할 수 없는 장면만 가득하다. 로맨스에 몰입을 할 수 없으니 영화 자체가 붕 뜬다. 책이라는 매개체를 활용한 판타지도 개연성이 없다. 책을 선물한 할머니의 정체도 나름의 반전 요소로 배치했지만 의문밖에 남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책이 등장한 뒤, 소정은 주체성을 완전히 잃고 책에만 의지해 미련한 여주인공에 그치고 만다. 사랑과 자기연민에 매몰된 소정은 직장에서도 실수 연발이다. '민폐 캐릭터'로 전락된 소정을 위해 승재가 영웅처럼 등장해 구해낸다. 과거 로코물에서나 볼 법한 구조다.

시대착오적인 이 영화는 지난 2017년 크랭크업했다. 뒤늦은 개봉 탓에 시류와 맞지 않다는 변명도 통할 수 없단 이야기다. 우리 사회는 데이트폭력, 성추행, 불법촬영 등 만연한 범죄를 타파하기 위해 부단히 애쓰고 있다. 성평등에 대한 인식도 지난 날과는 다르다. 달라진 세상에선 과오를 바로잡기 위해 열심히 자성의 목소리를 외치고 있는데, '사랑하고 있습니다'는 아직도 범죄를 사랑으로 착각하고 있다.

이것은 사랑이 아니다.

[사진 = 강철필름 제공]

이예은 기자 9009055@mydaily.co.kr
- ⓒ마이데일리(www.mydaily.co.kr). 무단전재&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