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큰 행운이었다” 양동근이 마지막을 함께 하고 싶었던 동료

[마이데일리 = 최창환 기자] 울산 현대모비스 캡틴 양동근(39, 180cm)이 화려한 선수생활을 마무리했다.

현대모비스는 31일 “‘현대모비스의 심장’ 양동근이 2019-2020시즌을 마지막으로 17년간의 프로선수 생활에 마침표를 찍는다. 양동근은 리그 조기 종료 이후 구단 및 코칭스태프와 회의를 거쳐 이같은 결정을 내렸다”라고 공식 발표했다.

2019-2020 현대모비스 프로농구 정규리그가 막바지로 향할 때쯤, 양동근은 구단 측에 한 가지 건의사항을 전했다. 6라운드는 등번호 33번을 새기고 경기를 치르고 싶다는 게 양동근의 바람이었다. KBL 규정상 시즌 도중 선수가 번호를 바꾸는 것은 가능하다.

프로 입단 후 줄곧 6번을 사용했지만, 양동근에게는 33번도 매우 큰 의미를 지니는 등번호였다. 바로 프로 2년차 시즌부터 2시즌을 함께한 크리스 윌리엄스의 등번호가 33번이었다.

2004-2005시즌 신인상을 수상하며 프로무대에 데뷔한 양동근은 이후 단번에 현대모비스를 넘어 KBL을 대표하는 스타로 성장했다. 2005-2006시즌 현대모비스를 정규리그 1위로 이끌며 서장훈(당시 삼성)과 공동 MVP를 차지했고, 2006-2007시즌에는 현대모비스의 통합우승을 주도했다. 정규리그, 챔프전 MVP도 싹쓸이했다.

크리스 윌리엄스는 양동근의 성장세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외국선수였다. 2005-2006시즌 현대모비스에 합류한 크리스 윌리엄스는 다재다능했다. 비록 슈팅능력이 떨어진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이를 메우고도 남을 정도의 기량을 지녔다. 탁월한 경기운영으로 2년차에 불과했던 양동근이 성장하는데 도움을 줬고, 수비 로테이션을 잘 소화하는 등 수비력도 상당히 뛰어났다.

크리스 윌리엄스는 2006-2007시즌 통합우승 이후 한국에 남아 양동근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등 남다른 우정을 쌓았다. 현역에서 은퇴한 후에는 미국으로 양동근의 가족을 초청, 추억을 쌓기도 했다.

양동근은 크리스 윌리엄스에 대해 “워낙 장점이 많은 선수였다. 내가 성장하는 데에 큰 도움을 줬다. 아무 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외국선수들과 부딪쳤는데, 크리스 윌리엄스가 유럽리그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노하우를 많이 알려줬다. 그를 만난 것은 정말 큰 행운이었다고 생각한다”라고 회상했다.

2011-2012시즌 KBL로 컴백, 고양 오리온에서도 건재를 과시했던 크리스 윌리엄스는 지난 2017년 혈액이 응고돼 생긴 혈전에 따른 심장 이상으로 세상을 떠났다.

양동근은 커리어의 마지막 라운드를 크리스 윌리엄스의 등번호와 함께 장식하고 싶었다. 당초 2018-2019시즌 마지막 라운드 또는 2019-2020시즌 1라운드에 33번을 사용할 예정이었지만, 여의치 않은 상황이 반복돼 뜻을 이루지 못했다.

양동근은 우여곡절 끝에 6라운드를 앞둔 시점에 33번이 새겨진 유니폼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정규리그가 조기에 종료돼 끝내 ‘33번 양동근’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33번이 새겨진 유니폼은 양동근이 크리스 윌리엄스를 대하는 마음이 남달랐던 것만큼은 재차 확인할 수 있었던 유니폼으로 남게 되지 않을까.

[양동근. 사진 = KBL 제공, 양동근 인스타그램]

최창환 기자 maxwindow@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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