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양동근 “꿈만 같은 시간들이었다” (일문일답)

[마이데일리 = 최창환 기자] 울산 현대모비스의 캡틴이자 한국 농구를 대표하는 레전드 양동근(39, 180cm)이 기자회견을 통해 은퇴를 결심한 배경에 대해 전했다.

양동근은 1일 KBL 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을 통해 선수 생활을 정리하는 한편, 향후 계획에 대해 전했다. 현장에는 박병훈 현대모비스 단장을 비롯해 유재학 현대모비스 감독, 함지훈(현대모비스), 조성민(LG) 등도 참석해 꽃다발을 전달했다.

현대모비스는 지난달 31일 보도자료를 통해 양동근의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2019-2020시즌 조기 종료 후 구단, 코칭스태프와 논의 끝에 내린 결정”이라는 게 현대모비스 측의 설명이었다.

양동근은 두 말할 나위 없는 한국 농구의 상징이다. 용산고-한양대 출신 양동근은 2004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로 현대모비스에 지명됐다. 지명권은 전주 KCC가 행사했지만, 양 팀이 R.F.바셋이 포함된 트레이드를 진행하는 과정서 지명권이 양도됐다.

양동근은 현대모비스 입단 후 간판스타로 자리매김했다. 2004-2005시즌 신인상을 수상한 양동근은 2019-2020시즌까지 줄곧 현대모비스에서 활약, 대단한 업적을 남겼다. KBL 역대 최다인 정규리그 MVP 4회 선정을 비롯해 챔프전 우승 6회 등 금자탑을 쌓았다. 모두 KBL 역대 최다 기록이었다.

대표팀에서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양동근은 2006 도하아시안게임을 시작으로 3회 연속 아시안게임에 출전했고, 아시아컵과 월드컵 등 다양한 국제대회에서도 대표팀의 주장으로 활약했다. 특히 2014 인천아시안게임에서는 한국이 12년만의 금메달을 획득하는 데에 기여했다. 당시 결승전에서 김종규가 성공시킨 위닝샷을 어시스트한 선수가 바로 양동근이었다.

뿐만 아니라 경기를 대하는 자세, 성실한 자기관리 등 코트 안팎에서도 동료들의 귀감이 되는 선수였다. “KBL 이사회의 시즌 조기 종료 발표 직전까지도 흠뻑 젖은 연습복을 입고 있었다”라는 게 현대모비스 측의 설명이었다. 양동근이 ‘현대모비스의 심장’, ‘농구계의 유재석’이라 불린 이유이기도 했다.

양동근은 정규리그 통산 665경기(6위)에 출전해 7,875득점(8위) 3점슛 990개(8위) 1,912리바운드(29위) 3,344어시스트(3위) 981스틸(2위)을 기록했다. 2019-2020시즌에도 경쟁력을 보여줬지만, 계약이 만료돼 현대모비스와 논의를 거쳐 은퇴했다.

양동근은 “꿈만 같은 시간들이 지나갔다”라고 말하는 한편, 지도자로서의 포부에 대해서도 전했다.

-은퇴 전문을 전한다면?

“코로나19 때문에 많이 힘든 시기에 발표하게 돼 죄송스럽다. 어려운 시기에 많이 와주셔서 감사드린다. 좋은 환경에서 농구에 전념할 수 있게 만들어준 현대모비스 단장님을 비롯한 국장님, 프런트, 응원해준 임직원 어려분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17년간 몸 담은 현대모비스에서 운동하는 동안 힘써준 전 구단주, 단장님, 국장님들 등 모든 분들에게도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선수를 위해 안 보이는 곳에서 힘써주시는 지원 스태프, 아주머니들께도 감사드린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중고등학교, 대학교 때 지도해준 선생님들께도 감사드린다. 팬들이 가장 아쉬워할 것이다. 나도 이렇게 마무리하게 돼 아쉽긴 하다. SNS를 본 분들은 알겠지만, 33번이라는 등번호를 달고 뛰고 싶었는데 그게 안 돼 아쉽다. 울산동천체육관에서 팬들 앞에서 인사드리고 싶었는데, 그렇게 하지 못해 죄송한 마음이다. 원정경기를 가도 울산 팬들은 홈 관중보다 더 큰 소리를 질러주셨다. 당연히 울산 홈에서는 그보다 컸다. 그 함성을 들을 수 있어서 행복했다. 앞으로 선수는 아니지만 다른 모습으로 돌아와서도 함성을 잊지 않고 많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하겠다. 팬들에게도 진심을 다해 감사 인사를 전한다. 저는 운이 좋은 선수라고 생각한다. 정말 좋은 환경에서 좋은 선수들, 좋은 감독님, 코치님 밑에서 너무도 행복하게 생활했다. 남들 못지않게 우승도 많이 했다. 아껴준 동료들이 없었다면 이와 같은 일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너무 감사드린다. 33번을 달고 싶게 했던 그 친구(크리스 윌리엄스)도 잊을 수 없다. 하늘에서 많이 응원해줄 거라 믿는다. 어렸을 때 부모님 말씀을 많이 안 들었다. 공부도 안 하고, 학원도 안 다녔다. 농구 시켜달라고 엄청 졸랐다. 반대를 많이 하셨는데 결국 해보라고 하셨다. 부모님의 희생이 없었다면 나도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부모님께 사랑하고, 고맙다는 말씀 전하고 싶다. 항상 기도해준 장모님, 미국에 있는 누나에게도 감사드린다. 철모르고 겁 없던 시절에 나를 만나 예쁜 가정을 꾸린 와이프가 시즌 때는 아빠 역할까지 다한다. 모든 농구선수들이 그렇겠지만, 집에 잘해야 한다. 나는 잘 못했다. 쉬는 동안 그간 못했던 부분을 해줄 생각이다. 내가 무득점을 해도 아들은 잘했다고 박수를 쳐준다. 너무나 힘이 많이 되고, 내가 집에 오는 날만 기다린다. 그 힘이 마흔살까지 버틸 수 있었던 원동력이다. 정말 큰 희생을 해주신 부모님, 와이프, 아이들에게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농구를 하면서 가장 많이 했던 말이 쏘리, 땡큐였다. 외국선수들에게 패스를 못해줘도 이해해달라고 한다. 그 친구들이 넣어주면 땡큐라고 하고, 슈터들에게도 나는 패스를 잘하는 가드가 아니니까 너희들이 다부지게 던지라고 말한다. 그 친구들이 그래도 이해를 해줬다. 또 믿어줘서 고맙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고 말할 순 없을 것 같다. 하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했고, 노력했다고 생각한다. 항상 은퇴라는 단어를 마음속에 두고 경기를 뛰었다. 군대에 있을 때 발목수술을 하며 은퇴에 대해 생각했고, 그게 전환점이 됐다. 나는 은퇴할 때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뭔가 미련이나 아쉬움이 남기 전에 오늘 열심히 하자는 마음이었다. 오늘 다쳐서 내일 경기를 못 뛰게 되더라도 미련 없이 은퇴해서 어제, 오늘 열심히 한 것에 만족하자는 마음으로 뛰어왔다. 은퇴에 대한 아쉬움은 크지 않은 것 같다. 선수로서는 코트에 설 수 없겠지만, 저에게 주셨던 응원과 사랑, 보고 배웠던 부분들을 나도 많이 공부하겠다. 그리고 코트로 돌아오도록 하겠다. 정말 좋은, 긴 꿀잠을 잔 것 같은, 너무도 꿈만 같았던 시간들이 지나갔다. 그 꿈은 내가 말씀드린 분들이 있기 때문에 꿀 수 있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린다.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그 사랑을 잊지 않고, 보답할 수 있는 방법을 찾겠다. 이렇게 많은 카메라 앞에서 얘기하는 날이 올 줄 몰랐다. 선수들에게도 한마디 한다면, 본인들의 선택에 후회가 남지 않는 결정을 했으면 한다. 그 결정은 본인이 책임질 수 있어야 하고, 본인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에 대해서도 생각한 후 내려야 한다. 올 시즌은 조기에 마감됐지만, 앞으로 선수들이 부상 없이 목표를 위해 단계를 밟아나가길 바란다.”

-프로 입단 후 기억에 남는 순간이 많을 텐데,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을 하나만 꼽는다면?

“첫 번째 통합우승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아시안게임 금메달이다. 모든 순간이 다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성적이 안 좋았던 시즌도, 좋았던 시즌도 다 내가 소속된 팀에서 치른 시간이다. 이 순간이 오니 모든 순간이 소중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끼게 된다. 어제 전화와 메시지를 많이 받았다. 당황스러운 지라 답변을 못 드렸다. 정말 죄송하다. 선배들, 후배들, 친구들에게도 연락이 정말 많이 왔다. 문자온 순서대로 답장하겠다. 어제는 나도 힘들어서 그랬던 거니 이해해주셨으면 한다. 차단한 게 아니다(웃음).”

-유재학 감독은 어떤 존재인가?

“어렸을 땐 굉장히 냉정한 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냉정함보단 정이 많은 분이라는 걸 느꼈다. 준비를 워낙 철저히 하신다. 미팅을 하면 꼭 우리가 준비를 못한 부분을 물어보신다. 선수라서 그런지 안 보이는 부분이 있는데 그 부분을 다시 잡아주신다. ‘아, 이래서 감독님이 잡아주셨구나’라는 것을 느낀다. 제가 이 자리에 있기까지 만들어준 분이다.”

-충분히 더 뛸 수 있는 기량인데 은퇴를 결정한 배경은?

“은퇴는 FA가 될 때마다 생각해왔다. 올해 결정했지만, 사실 작년에 은퇴했어도 나쁜 결정은 아니었을 거라 생각한다. 항상 말씀드린 대로 다른 팀 가드들, 선수들과 경쟁해서 자리를 차지해야 한다. 내가 지금까지 해온 것만으로 경기를 뛰어선 안 된다. 이제 나도 경쟁력이 떨어질 시기라고 생각해 은퇴 결정을 내렸다. 특별하게 큰 의미를 둔 건 없다.”

-아이들에게 자랑하고 싶은 경기가 있다면?

“우리 아들이 더 잘 알 것이다. 나보다 더 농구를 많이 본다. NBA도 많이 보면서 선수를 알려준다. 무득점해도 잘했다고 하니 모든 경기를 자랑스러워하지 않을까.”

-가족과 상의했을 텐데 아내를 비롯한 가족들은 어떤 반응이었는지?

“은퇴를 입에 달고 살았다. 집에서는 더 많이 얘기하지 않았겠나. ‘계약 안 해주면 어떡하지?’, ‘뭐 먹고 살지?’ 등등…. 은퇴 결정을 미리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항상 준비해왔던 일이라 당황하진 않았을 것 같다. 다만, 이렇게 시즌이 끝난 것에 대한 아쉬움은 있을 것이다. 집에서는 언제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얘기를 많이 했다.”

-많은 선수들과 뛰어봤는데, 1경기를 마지막으로 뛸 수 있다면 누구와 팀을 이루고 싶나?

“학창시절에 함께 했던 선수들과 뛰어보는 게 제일 재밌을 것 같다. 고등학교 때는 워낙 좋은 선수가 많아 나도 경기를 못 뛰었다 첫 번째로 꼽으면 (김)도수다. 초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고, 나 때문에 농구를 시작한 친구이기도 하다. 대학 때는 (조)성민이다. 여기 와있어서 뽑은 건은 아니다(웃음). 항상 마음속에 있는 동생이다. 그리고 크리스 윌리엄스. (함)지훈이는 너무 많이 뛰었기 때문에 지겨워서 빼겠다(웃음). 그리고 (이)종현이. 종현이는 부상 때문에 시간이 많이 필요하게 된 선수여서….”

-맞대결해본 선수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상대가 있다면?

“너무다 많다. 1명을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신인 때 대결한 형님들은 다 스타일이 달랐다. 비디오를 많이 봐도 막기 힘들었다. 가장 까다로운 선수 1명을 꼽는 건 힘들다. 다 어렵고, 다른 스타일의 가드였다. 덕분에 나도 많이 늘었다고 생각한다.”

-지도자를 계획하고 있는데, 향후 일정과 목표는?

“원래 계획은 공부를 많이 하는 것이었다. 아직 구체적으로 잡힌 건 없다. 코로나19 때문에 많이 힘든 상황이어서 결정된 게 없다. 감독님이 어떻게 지도하고, 선수들을 이해시켰는지 지금도 배우고 있다. 어떤 지도자가 될 거란 건 아직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이다. 많이 배워야 한다. 나만의 색깔을 갖고 있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역대 최고의 선수라는 평가에 대해선?

“내가 지금 최고라는 얘기를 한 번도 한 적이 없고, 생각도 안 해봤다. 그런 기사가 많이 올라와 욕을 많이 들었다. 나는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없어서 그런 반응을 보면 속상하다. 선수들이 뭘 하든 덜 미워했으면 한다. 내가 최고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들보다 한 발 더 뛰고, 열심히 하려고 했던 선수다.”

-훗날 어떤 선수로 기억되고 싶나?

“팬들에겐 ‘믿음이 가는 선수, 이기든 지든 1경기라도 더 뛰고 싶은 선수, 열심히 뛰었던 선수’라는 기억으로 남고 싶다. 선수들이 ‘양동근과 뛰었을 때가 좋았구나’라는 생각만 하게 되면 성공한 선수 인생이지 않을까 싶다.”

-등번호 6번이 영구결번됐다. 6번을 달게 된 사연이나 의미가 있다면?

“신인 때 3번, 6번이 남아있었는데 감독님이 6번을 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달았다. 그런데 알고 보니 감독님이 현역 때 달았던 번호가 6번이었다. 겉으로 내색은 안 하셨지만, 그래서 6번을 주신 거라고 생각했다.”

-은퇴투어를 꿈꿨던 적은 없나?

“꿈은 꿨다. 하지만 마음 속으로 ‘올 시즌까지만 한다’라는 생각을 계속 해왔다. 은퇴투어는 내가 받아야 할 대우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형님들이 하시기도 했고…. 은퇴를 정하고 뛰는 것도 생각해봤지만, 그렇게 되면 동기부여가 안 될 것 같았다.”

-미국 연수 중인 이범호(전 KIA)와 절친한 사이인데 연락을 주고받았는지?

“시차가 안 맞아서 아직 연락을 못하고 있다. 코로나19 때문에 아이들이 등교문제 등 힘든 상황이라고 들었다.”

[양동근. 사진 = 송일섭 기자 andlyu@mydaily.co.kr]

최창환 기자 maxwindow@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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