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생충'→'벌새'…승자독식 없이 빛난 한국영화 [이예은의 안테나]

[마이데일리 = 이예은 기자]큰 영화, 작은 영화 구분 없이 가치를 인정받은, 진정한 축제였다.

5일 오후 경기도 고양시 일산 킨텍스에서 제56회 백상예술대상이 열렸다. 올 상반기, 영화계는 영예와 고통 속에 웃고 울었다. 한국 영화 최초로 '기생충'(감독 봉준호)이 칸 황금종려상과 4관왕을 차지하며 2020년을 힘차게 열었으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면서 극장가에 급제동이 걸렸다. 수많은 작품들이 개봉을 연기했고, 극장은 연일 최저관객수를 찍었다. 여느 때보다 힘들었던 시기고, 여전히 신음하고 있으나 조금씩 기지개를 켜는 한국영화다. 이 가운데, 지난 2019년 4월 1일부터 2020년 4월 30일까지 대중 앞에 공개된 다양한 영화들을 백상예술대상이 되짚으며 작은 위로를 건넸다.

10개 부문, 12개 후보로 최다 노미네이트됐던 '기생충'은 3관왕의 주인공이 됐다. 세계 영화제서 대기록을 세웠던 영화인만큼, 마지막까지 그 자존심을 지켰다. 봉준호 감독은 아쉽게 불참했으나 최고상 격인 영화 대상을 수상했고, "리스펙!"이란 임팩트 있는 한 단어로 관객들의 소름을 유발했던 박명훈이 46살의 나이로 신인연기상을 수상했다. 작품상 역시 '기생충'의 차지였다.

그러나 '기생충'만의 잔치는 아니었다. 국내외 유수영화제에서 52관왕에 오르며 작품성을 입증 받은 '벌새'는 이날 2관왕을 차지하며 작은 영화의, 작지 않은 위대한 힘을 과시했다. 박지후와 뜨거운 호흡을 맞췄던 김새벽은 조연상을 거머쥐었다. 무엇보다 김보라 감독은 '기생충'의 봉준호, '남산의 부장들'의 우민호, '생일'의 이종언, '블랙머니'의 정지영이라는 쟁쟁한 남자 감독들 사이에 오른 유일한 여성 후보로, 트로피까지 거머쥐며 찬란한 여정을 이어갔다.

2만 6천명(영화관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 기준)의 관객을 동원했던 독립영화 '찬실이는 복도 많지'는 강말금의 신인상 수상으로 트로피를 챙겼다. 과거 보통의 회사원이었던 강말금은 오로지 연기에 대한 갈망 하나로 연극 무대에 진출, 독립 영화로 활동 영역을 넓힌 43살의 신인 배우다. 대중에겐 익숙한 얼굴이 아니다. 그러나 오로지 연기력으로만 승부, 자신의 가치를 제대로 증명했다.

개봉 전부터 불필요한 논란으로 몸살을 앓아야 했던 '82년생 김지영'은 김도영 감독의 신인감독상 수상으로 온전한 축하를 받았다. 현 사회, 여성들이 마주하고 있는 일상적인 고충을 현실감 있게 그려내며 대한민국의 수많은 김지영들로부터 공감과 응원을 받았던 김도영 감독의 이견 없는 수상이었다. 김지영을 연기했던 정유미도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규모, 흥행 중심으로 주어지는 트로피가 아니었다. 관객들이 미처 살피지 못한 틈까지 비춰 작은 영화인들의 노력과 가치를 조금이나마 세상에 알렸다. 벌써부터 2관왕 '벌새' 호평의 이유를 찾고, 강말금이라는 생소한 배우에 궁금증을 갖는 이들이 많다. 작은 영화를 향한 관심으로 이어질 수 있는, 또 다른 움직임이다.

[사진 = 백상예술대상사무국 제공]

이예은 기자 9009055@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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