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가자’, 존재하면서 부재하는[곽명동의 씨네톡]

[마이데일리 = 곽명동 기자]‘바다로 가자’는 아버지의 삶을 역추적하면서 실향민 2세,3세대들의 솔직한 인터뷰와 증언을 담은 다큐멘터리다. 김량 감독의 아버지는 1932년 함경남도 단천군 여해진 바닷가 마을에서 태어나 18살에 국군에 입대했다. 한국전쟁이 터졌고, 분단은 고착화됐다. 가족 중 홀로 내려와 부산에 터를 잡고 세 아이를 낳은 아버지는 막내딸을 부산 서면의 대한극장에 데려갔다. 그 딸은 커서 다큐멘터리 감독이 됐다. 김량 감독은 2013년 남방한계선 밑에 사는 철원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경계에서 꿈꾸는 집’, 2015년 아제르바이젠과 냉전 중인 아르메니아 접경 지역에 관한 생생한 기록 ‘영원한 거주자’에 이어 분단의 비극 속에서 실향민의 고통을 다룬 ‘바다로 가자’를 내놓았다. 이른바 ‘경계 3부작’이다. ‘바다로 가자’는 그가 ‘경계의 감독’으로 평생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화두’가 담겼다.

아버지는 70년 가까이 고향에 가지 못했다. 몸은 부산에 있었지만, 마음은 고향에 있었다. 육체와 정신이 분리됐다고 할까. 김량 감독은 아버지가 “존재하면서 부재하는 듯 보였다”고 말했다. 분단은 한반도의 허리만 끊은 것이 아니라, 실향민들의 몸과 마음까지 분리시켰다. 또 다른 실향민의 아들 홍근진 씨는 아버지 세대를 ‘성격파괴자’라고 했다. 한국전쟁의 지옥 같은 상황을 체험하고, 가족과 평생 생이별을 겪어야했던 실향민들은 자신의 처지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자식들과 마찰을 겪으며 ‘불화’했다. 홍근진 씨의 아들 홍성민 씨는 할아버지에 대해 “치유가 필요하지만, 치유할 수 없는”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존재하면서 부재하는 듯 보였다”는 김량 감독의 말과 같은 맥락이다. 소중한 가족을 잃은 실향민은 회복불가능한 아픔을 온 몸으로 앓았다. 그렇게 늙어갔다.

실향민은 대표적인 디아스포라(이산민족)이다. 뿌리 뽑힌 사람들이다. 일제의 억압과 수탈을 피해 살길을 찾아 떠나야했던 재일조선인, 고려인, 재중동포를 비롯해 이주노동, 입양, 이민 등으로 세계 각지에 흩어진 한민족 디아스포라는 약 750만명에 달한다. 중국, 이탈리아, 이스라엘, 인도에 이어 세계 5위 규모다. 인구 대비로 따지면 이스라엘에 이어 2위다. 북한에 고향을 둔 디아스포라의 아픔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한국은 올 수 있지만, 북한은 갈 수 없다. 영원한 단절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고(故) 임은조의 생애를 중심으로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쿠바의 한인 역사를 담은 다큐멘터리 ‘헤로니모’에서 어느 유대인 랍비는 “디아스포라의 핵심은 고통”이라고 정의했다. 존재의 뿌리가 뽑힌 채, 낯선 타국 또는 다른 지역에 이식해야 하는 아픔은 당사자가 아니라면 짐작할 수 없을게다.

인류학자 김현경은 탁월한 저서 ‘사람 장소 환대’에서 장소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우리는 환대에 의해 사회 안에 들어가며 사람이 된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장소를 갖는다는 것이다. 환대는 자리를 주는 행위이다.” 어떤 상황에서 특정한 공간을 벗어나는 순간, 사람의 지위를 상실할 수 있다는 것. 실향민의 처지가 그렇지 않을까. 분단으로 가족의 생사조차 알 수 없는 그들은 고향이라는 ‘장소’를 상실한 아픔 속에서 ‘존재-부재’ ‘치유-치유불능’의 절망에 빠져든다. 그들에게 ‘자리를 주는 행위’인 환대는 사회 공동체의 몫이다. 궁극적으로는 통일이 되겠지만, 우선 민간의 남북교류 활성화가 시급히 해결해야할 과제다. 김량 감독은 부산과 함경남도 단천군이 이어진 바다를 통해 “금지된 고향으로 가고 싶다”고 했다.

그렇게, 바다로 가자.

[사진 제공 = 존 필름]

곽명동 기자 entheos@my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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